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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y 31. 2023

#7. 결국, 나는 그에게 나쁜 상사가 되었구나.

#7. <I형 인간의 팀장생활>



제 5화, 첫 보고


“어, 팀장 새로 왔네요.”


최 실장이 방에 들어가는 길에 알은체를 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진서연입니다.”


“그래요. 이 팀장한테 인수인계 받은 거 있죠? 그거 한 4시쯤 봅시다.”


“네. 찾아뵙겠습니다.”


떨렸다.


차장과 과장일 때 팀장을 따라 보고 자리에 참석을 한 적은 있었지만 홀로 상사의 방에 들어가 대면 보고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긴장이 많이 됐다.


그의 방에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나의 장에도 불이 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 부글거리는 속을 다 비워냈다.


4시 5분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3시 58분, 최실장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그의 목소리와 함께 피곤한 듯한 그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최 실장. 그는 올해 초 정부 기관에서 내려온 일명 '낙하산'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각종 국가 기념일 행사 이벤트를 주도해 실력을 인정받았고, 여러 차례 언론에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


정권이 바뀌고, 야인으로 살다가 대표이사의 인맥으로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10층에 모여있는 소비자분석팀과 기획팀, 전략팀을 총괄하는 기획실장으로 발령받아 1년 째 근무 중이었다.


나는 그 앞에 의자를 빼면서 속으로 다시 되새겼다.


‘짧고 굵게’, ‘두괄식으로’,


보고의 정석, 보고 방법과 같은 책에 나온 공식이었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실장님.”


침묵. 여기에서 더 어떤 말을 한단 말인가.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소비자 동향 보고서를 특별히 지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DM산업에 대한 여론의 추이를 보면, 보시다시피 긍정어보다 부정어가 2배 이상 높게 관찰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핸드크림 알루미늄 용기가 자꾸 터지는 이슈가 있었구요. 관련해서 소비자들의 반응과 여론을 정리했습니다."


"음. 그래요. "


최 실장은 보고서를 눈으로 쭉 훑더니 입을 뗐다.


"소비자들은 그렇고 진 팀장 생각은 어때요?"


"네?"


"소비자들 생각은 알겠는데, 진 팀장 생각은 어떠냐고. 실제로 핸드크림 용기가 잘 터지던가요?"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핸드크림이라니.


나는 손이 끈적이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핸드크림을 바르면 손으로 만진 키보드와 가방까지 번들거리는 것이 싫었다.


 향은 또 얼마나 인위적인지 사무실 전체에 퍼져있는 목욕탕 스킨 냄새 수준으로 강하고 싸구려틱한 인공향의 DM산업 핸드크림을 난 단 한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지금 최 실장이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모를 때는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서 팀장이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 솔직하게 말한다는 건, "제가 우리 회사 제품을 안 써 봤습니다." 혹은 "좋아하지 않습니다."가 되어야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최 실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음.. 그럼 소비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니라.”


동향 보고서는 소비자의 동향을 적는 게 맞아요. 그런데 소비자들이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실제로 소비자들의 말이 맞는지 직접 경험 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소분팀의 보고서는 그런 시각에서 써줬으면 좋겠어요.”


“예......”


부끄러웠다.


소비자분석팀장이라면서, 소비자를 분석하겠다면서 소비자의 의견을 정리하면서도 왜 나도 소비자란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남의 말을 하듯 적는 보고서가 잘 된 보고서일리 없다는 건 신입도 아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시키는 대로 영혼 없이 타이핑하고 출력하는 과차장이 더 이상은 아니지 않은가.


소분팀이 있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지는 않을까.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창피함에 얼굴이 후끈거렸다.


나의 자리가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


나의 고민을 누군가가 나눠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뭐해요?’


나는 나의 멘토이자 인생 선배인 서 팀장에게 구원의 카톡을 날렸다.






“역시 최 실장님답네.”


“어떤 분인데요?”


“다들 낙하산이네 뭐네 하면서 욕하는데 내가 들은 건 달라. 언젠가 여의도에 있는 분이랑 술 자리가 있었는데, 그 사람말론 정부 요직에 가고 싶으면 최 실장님을 통해라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숨은 권력자랬어. 그만큼 인맥도 상당하고 두루두루 신임이 높다는 거지. 그래서 왜 그런 대단한 분이 여기에 와 계시냐 했더니 그건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개인적인 뜻이 있는 건지 아니면 우리 회사 대표랑 인연이 있는지는. 무튼 그런 대단한 사람이니 아마 너한테도 좀 다른 말씀을 하신 게 아닌가 싶어. 일반적인 상사랑은 느낌부터 다르지 않디? 난 뭐랄까 실장님 눈을 보고 있으면 내 속이 다 들키는 기분이야.”


“어머 저도 그랬어요. 영혼 없이 쓴 건 맞거든요. 어떻게 아셨지 싶더라구요. 하아 큰일이네요 선배. 실장님의 눈높이에 제가 과연 맞출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보고서에 진심을 담으라 이건데.. 사실 말이 쉽지 뭘 하라는 건지 도통.”




“팀원들하고는 얘기해봤어?”


“팀원들요? 아 맞다. 선배. 내가 신입한테 표 하나 만들어오라고 시켰거든요. 와 근데...”


“왜?”


“이거 봐요.”


나는 신 사원이 보내온 파일을 열어 확대해 서 팀장 눈앞에 들이댔다.


“어머 어머. 푸하하하”


“이거 이래놓고 뭐라는 줄 알아요? 붙여서 쓴다고 해서 안 다듬었대요. 아무리 그래도 상사한테 보고하는 건데 성의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 나 엿 먹이는 거 맞죠? 그것도 저한테 처음 주는 보고서였거든요. 근데 이래요. 이건 어디까지 괜찮나 보자 하면서 기 싸움하는 거겠죠?”


서 팀장은 그러고도 한 참 동안 배를 잡고 깔깔댔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애하고 보고서의 진심 어쩌고 하면서 상의하고 얘기하라고요? 차라리 그냥 혼자 하고 말죠.”


서 팀장의 큰 웃음소리에 지나가던 직원들이 모였다.


“뭔데? 같이 웃자.”


나는 폰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봐요. 이거 우리 팀 신입이 만든 표인데. 너무 웃기지 않아요? 글자체가 다 달라. 심지어 이 문장은 쓰다 말았어.”


“허허.. 맹랑한 녀석이네.”


“헐.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죠? 이렇게 만들었다고요? 대박.”


그렇게 서너 명의 사람들과 한참을 떠드는데 서 팀장이 내 폰을 닫으며 말했다.


“자 이제 그만. 신입 놀리는 거 그만하고. 나 근데 궁금한 게 있어. 서연아, 혹시 표 작성하기 전에 꼼꼼하게 설명해줬어? 아님 샘플이라도 보여주던가.”


“아니요. 그래도 표의 기본이란 게 있잖아요. 가운데 정렬하고 구분하고 뭐...”


기본은 너한테나 기본이지 신입한테는 기본이 아닐 수 있잖아.”


“...”


“가르쳐 줘. 천천히. 시간 없는 거 알아. 해야 하는 거 많은 것도 알거든? 근데 바쁘다고 안하면 그것도 팀장 직무유기야. 초반에 힘들더라도 여유를 가져야 해. 기다려 줘야지.”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벌써 퇴근 시간은 가까워져있었다.


그래, 보고서고 뭐고 내일 하자.


워라밸은 팀장이어도 지키고 싶은 룰이었다.





집에 와 욕조에 물을 받았다.


언제 받은 지도 모르는 우리 회사의 배스밤을 뜯어 욕조에 풀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굳었던 근육들이 기지개를 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팀원이었을 때는 나만 잘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팀원을 잘하게 해야 했다.


그래야 나도, 나의 팀도 잘할 수 있었다.


직장인에게 보고서 작성 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렇다면 선배 직장인, 특히 팀장 직장인이라면 후배 팀원에게 보고서 작성을 시키고, 작성된 보고서를 검토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맞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 팀원을 데리고 있는 팀장이라면 그 기본을 가르쳐야 한다.


왜 가르치지도 않고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떠드는가.


귀찮아서? 혹은 내가 아니니까?


‘서연, 혹시 그 신입 보고서 갖고 갈궜음?’


서 팀장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뇨. 왜요.’


‘너네 신입. 지금 완전 꽐라.’


‘엥?’


‘아까 네가 보여준 보고서 그거 누가 신입한테 얘기했나봐. 네가 신입 보고서 갖고 놀렸다고. 그래서인 듯?’


‘헐. 미치겠네.’


‘우리 신입이랑 같이 술 먹는 다는데, 상처를 좀 세게 받은 거 같다야’


순간 나는 퇴근 길 눈치를 보던 신 사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입장을 바꿔봐, 효자손이 네 보고서를 돌려보면서 킬킬댔다고 생각해 보라고. 싫었다.


그가 받았을 상처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했을까.


‘선배, 저 실수한 거죠.’


‘나도 미안해지네. 나 신입일 때는 더 심했는데. 그거 알아? 나 신문 스크랩 해오라는 거 인터넷으로 긁으면 되는 걸 진짜 신문을 오려서 파일 만들어 갔다.’


‘헐. ㅋㅋㅋ'


‘나는 그때 내가 맞다고 생각했다니까. 아마 신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러게요. 하아... 어찌할까요.’


이럴 땐 정공법이야. 미안하다고 해. 좋은 말 있잖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사과요?’


‘사과는 바로바로해야 깔끔해. 하루 이틀 같이 있을 것도 아니잖아.’







침대에 누워 떠올렸다.


사과는 말 한마디면 된다. 쉽다.


하지만 기초 레벨의 팀원을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향상시키는 건 고난위도의 문제다.


머리로는 쉽지만 현실에서는 어렵고 귀찮고 힘든 일이다.


시뮬레이션이라도 해본다면, 뭐 이런 그림이겠지.


"여러분도 제가 궁금하겠지만 저도 여러분이 궁금합니다. 여러분들을 알기 위해 하나의 과제를 내주겠어요. 주제는 '기획안 쓰기'입니다."


팀장이 된 내가 팀원들을 앉혀놓고 주제가 적힌 종이를 좌르륵 펴면서 말한다.


그러면 팀원들은 과거시험을 치는 유생들처럼 앉아 심각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나는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시간이 다되었음을 알린다.

 

뭐.. 이런 그림



이후 결과물을 출력해 빨간 펜으로 평가.


이 후배는 아이디어가 뛰어나니 기획 업무에 맞겠군,


이 후배는 문서 작성 능력은 떨어지나 평소 외향적이고 협조적이므로 대외협력 업무,


또 이 후배는 꼼꼼하고 디테일하니 수치를 정리하고 숫자를 확인하는 업무를 주면 되겠어.


드라마 쓰듯 쓰윽 쓱 배경을 그리고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도 상상해 본다.


표 사원의 표정, 신 사원의 반응.


눈을 감았다. 몸에서 배스밤의 향이 훅 하고 올라왔다.


복숭아향이라더니 이건 아이들이 먹는 싸구려 젤리 향이네.


역시 우리 회사 제품은 나랑 안 맞아.


나는 머릿 속에 떠오르는 불안한 상상들을 억지로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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