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관인 Kotra와 대기업이 큰 그림을 그리는 사업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품만 보내고 뒷짐 지고 구경만 하겠네 싶지만 아니었다.
클릭 한 번이면 모든 것이 통하는 시대, 접근은 쉽지만 그만큼 그 수만, 수천만 가지의 상품의 원오브 뎀이 되기도 쉬웠다.
그래서 플랫폼이 중요했다. 소비자에게 제품의 이름을 알리는 것은 광활한 벌판에서 내 이름을 외쳐 모두에게 들리게 하는 것만큼이나 막연했다. 여기에자체 플랫폼, 자체 광고회사, 자체 소매상을 둔 대기업과 싸워야 했다. 항상 갈증이 났고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차에 이번 기회가 온 것이었다.
한류 스타 콘서트까지 같이 진행된단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의 한류는 욘사마로 상징되는 중년 일본 여성들의올드패션이었지만 지금 한류의 중심은 20-30대 여성들이다. 이들은 우리 사업의 타깃 소비층과도 정확히 일치했다.
이들은 한국어, 한국인, 한국 문화에 '세련됨', '독특함', '젠지함'을 동일시했다. 특히 드라마와 영화 등 콘텐츠 분야의 대대적인 성공은 큰 의미를 가져왔다. 영상에 나오는 배우들의 피부, 스타일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바로 새로운 'K-뷰티' 시장이 열린 것이다.
예전에 한국의 화장품은 일본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 소비자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에 열광한다.
작년 유라쿠초 마루이 백화점에 우리 핸드워시를 전시할 때 일본 벤더사 대표가 업장 한 켠을 모두 한국 제품을 깔 것이라 공언하면서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한국어가 쓰여있어야, 한국 제품임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팔려요.
"So busy but I'm so excited!"
마크는 다크서클(eye bags)이 잔뜩 내려온 얼굴로 커피숍에 들어오며 말했다.
그는 그 얼굴을 하고서도 장장 2시간 넘게 한류 박람회의 상품 부스에대해 쉬지 않고떠들어댔다. 마크는흥분하면 영어 발음이 뭉개지고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안 그래도 나의 짧은 영어 실력을 무시하고 복잡한 용어까지 섞어 말하는 마크의 태도가 언짢아 태도를 구겼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그렇게 걱정되면 말만 하지 말고 직접 가보든지."
그러자 마크는 나의 농담을 진심으로 받으며 대꾸했다.
"현장? 당연히 가야지. 아무리 거기 사람들이 베테랑이지만 우리랑 마음이 같을까? 직접 챙겨야 해."
"진짜 직접 간다고?"
"당연하지. 미리 가서 자리도 찜해두고 현지 분위기도 점검할 거야."
"맙소사! 너 다음 주에 태국 벤더사랑 미팅 있지 않아?"
"글쎄 그 건은 좀 미루면 되지 않을까?"
"너 이렇게 즉흥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어?"
"어차피 줌으로 회의하는 거라 괜찮아. 그리고 태국 대표는 언제든 일정 변경 생기면 연락하라고 했다고."
그렇게 나와 마크가 티격 대고 있는데 회의실 문이 살짝 열렸다.
"저희 들어가 보겠습니다."
직원들이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다.
"어서들가요."
그러자 문이 더 활짝 열리며 뒤에 선 직원들 서넛이 인사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십시오."
문이 닫히고 직원들이 나가자
마크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
"What's that mean, 고생? Why didn't they say, 'see you later', 'bye'?"(왜 바이바이 인사를 안 하고 고생하라는 말을 했냐며)
"아무 뜻 없어. 고생하셨습니다는 한국에 있는 모든 직장인들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쓰는 말이야. 그러려니 하면 돼."
"고생을 더 하란 말이야? 일을 더 하란 말인가."
"그런 의미 있는 말이 아니라 그냥 말(phrase)이라니까. 의례적으로 쓰는."
"고생했다'는 말이 그냥 인사말이라고? It's like Korean.(역시 한국인다워)."
"여기서 왜 또 한국인답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다들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고생스러운 인생이라고 생각하니까 서로고생한다 고생해라 이런 말이 의례어가 된 걸 거 아냐."
"음.. 그런가.."
그렇긴 하다. 역시 마크와 있으면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이 된다.
"Korea is more competitive and more stressful society. I think Korean like to feel that they are having hardship. So Korean people constantly use 고생"
(한국이 경쟁이 심하고 스트레스가 많은사회라 한국인들이 기본적으로 평소에도 고생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는 얘기)
"그러네. 마크 네 말 듣고 보니 나도 참 우리나라 사람들 힘들 게 산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거 같다."
"한국의 많은 것들이 '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가 많아서', '바빠서'라는 이유로 설명된다는 게 정말 슬프다. 그렇지?"
"맞아. 모든 것이 빠르고 효율적이고 체계적이긴 하지만 그 틀에 맞추려다 보니 나나 한국인 모두가 달리기만 하는 느낌이야."
"Language shape the way we think. 너 이 말 알아?"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알지. 많이 들어봤어. 무지개가 실제로는 7색이 아닌데 7색으로 불러서 7색이 되었다라든가, 한국인은 옐로를 노르스름하다 노리끼리하다 샛노랗다 같은 표현 언어가 많아서 영어 쓰는 사람들보다 색채 감수성이 더 풍부하다든가..."
"맞아. 그래서 말인데, 한국 사람들이 수고했다 고생했다 이런 말 하는 거 말을 너무 자주 해서 더 세상살이가 힘들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라는생각도 해."
"그럴 수도..... 있겠어."
역시 마크는 하버드생답다.
"고생하세요~ 이 말 말고 다른 말을 해야 해 한국인들은."
"뭐가 좋을까추천해 봐."
"글쎄. 난 한국어를 잘 모르니까 네가 생각해야지."
"아니, 난 여기만 살아서 늘 갇힌 생각만 하니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마크 네가 추천을 좀 해봐."
"행복하세요~어때? 퇴근하면서 행복하세요 하면 다들 즐겁게 퇴근하지 않을까."
"어... 회사원이 퇴근하면서 행복하세요 하면..."
"행복하지?"
"아니. 난 남아서 일하는데 퇴근하는 놈이 행복하세요 하면 놀리는 거 같은데? 욕 한 바가지 해주고 싶다! 셧업!! 그러면서."
"..."
참고
※ 나는 윗사람과 메신저에서 대화를 하다 말을 끝맺을 때, 대면하고 자리를 떠나는 상황에서는 늘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인사한다. 아주 오래전에는'수고하셨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수고'란 단어가 윗사람에게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는 '고생하셨습니다'로 대체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