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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Aug 02. 2024

한국은 베이글을 박물관에 줄 서서 먹는다며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했다. 비웃었다.

그 이유는 크게 몇 가지로 요약됐다.


"런던 베이글?! 푸학! 베이글은 뉴욕이지. 런던에서는 베이글을 잘 먹지도 않아!"

"헐 엘리자베스 여왕 얼굴 하나 박고서 머그컵을 삼만팔천 원에 파네? 이거 초상권 허락은 받은 거야?"

"거기 화장실 가봤어? 영어 스펠링 다 틀렸어. 심지어 한글 맞춤법도 틀렸더라. 아이가 휘갈겨 쓴 컨셉이라는데 번역기만도 못한 수준의 말도 안 되는 문장이야!"

"세상에 계산대에는 팁바구니가 있어! 우리나라는 엄연히 불법인데! 심지어 영국에서는 팁을 받지도 않아!"


공수치네 완전.

그놈의 갬성 갬성.

영어라면, 서양문화면 환장하는 사대주의 같으니라고.


하지만

시끄러우면 궁금하고 이상하다면 다시 보고 싶어 지는 게 인간 심리.

말 많고 탈 많던 정체성 모호하고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괴상한 조합, 한국식 런던베이글 가게는 현재 웨이팅 맛집 1위로 선정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비판하고 비난하며 삿대질하던 글들 위로

지방에서 일부러 방문했다는 방문샷과

웨이팅 3시간 만에 빵을 먹었다는 인증샷이 덮이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


심지어 타국의 인스타그램과 한국 소개 글들에는

그곳을 서울에 방문하면 꼭 가봐야 하는 유명하고 멋진 곳으로 소개했다.


영국인들은 즐겨 먹지도 않는 베이글이 '런던'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고대 유물이나 예술 작품 대신 머그컵, 티셔츠를 파는 빵집이 '뮤지엄'이란 이름의 간판을 걸고

메뉴판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모두 '영국스러운' 것들로 치장되어 있는 , 주인공인 베이글 또한 이름만 베이글이지 마치 한국 떡처럼 쫄깃하고 찐덕거리는 텍스처인 그 곳은


언젠가부터 외국 관광객과 방문객들이 궁금해 찾는 '한국스러운(Koreaish)' 곳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Damn it! "


마크는 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어깨에 맨 가방을 거칠게 내려놓더니 엄청나게 긴 영어문장을 쏟아냈다.


"I researched their open time which was 8:00 a.m. so naturally I thought I'll just be there by 7:30ish and I'll be the first person to meet there. But! to my surprise I'm not even joking they're like people already in line and I was as like the 100th person in line!"

(8시에 문 연다고 해서 7:30쯤에 가면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겠지 해서 갔는데,, 이미 100명이 넘는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결국 실패했다는 거야?"

"엉! 임박해 미팅이 있어서 5분도 지체할 수 없었거든. 바이어한테 나 빵 사느라 늦으니 좀 기다려줘 할 순 없잖아!!"

"나같으면 트래픽잼에 걸렸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했을 걸."

"오 그럴 수 없었어. 내가 한국 지하철을 애용하고 차도 없는 걸 그는 알고 있단 말이지. 그래서 내일 또 가보려고. 가서 줄 서 있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하고 인터뷰라도 좀 해야겠어."


마크와 나는 올해 말 일본 백화점에 있을 로즐린 해외 팝업 스토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었다.

일본에서는 상품 DP나 홍보 등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일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업무차 관광차 자주 방문했던 일본이지만 무언가를 팔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사는 건 쉬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우리가 만든 물건을 판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마크는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마켓을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 점령해 보겠다는 입장이었다.

온라인은 이미 물량도 플랫폼도 충분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시장은 또 다른 문제였다.


마크는 일본 시장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인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베이글집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나 먹겠다고 한국에 와서 한나절을 길거리에서 버리고 있는 한국 방문 일본인들의 '한국 문화 사랑'의 근본(root)을 알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이라서 사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략해야 해. MADE IN KOREA에 끌리는 건 이유가 있어서 일거야. 이미 한국 화장품 OEM은 세계 최고 수준이잖아. 해외 유명 화장품 원료 모두 다 한국에서 만들고 표지랑 이름만 바꾼다는 업계 사람들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오늘도 K뷰티 대박 났다는 기사만 수두룩 하던데."


"그거랑 베이글이랑 무슨 상관이야?!"


"나도 처음에는 베이글이 베이글이지 했는데. 거긴 그냥 빵집이 아닌 거 같아. 한국인이 새롭게 만들어 낸 문화 같다랄까. 특히 k 드라마나 영화!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같은 것들 있잖아. 사람들이 아시안에서 기대하는 것, 고정관념을 살짝 비튼 것 같은 거. 기존의 것을 괴상하게 비틀거나 새로운 걸 창조한 것. 새로운 맛! 독특한 멋!  vibes!  sort of next level!"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베이글집이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겠다. 한국이 만들어 낸 독특한 느낌, 공간 같은 게 있단 말이잖아."


"맞아. 이제 방문객들에게 경복궁, 남산타워, 이태원은 지겹고 시시해한다구."








 


"나 오늘은 두바이 초콜릿을 먹어보려고."


마크는 어제 드디어 베이글 맛보기에는 성공했고 오늘은 편의점을 돌고 있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왜 그걸 다 해보겠다는 거야? 안 바빠?"

"바쁘지. 바쁜데 안 하면 안 될 거 같거든."

"한국인 다 됐네. 허니버터칩, 먹태깡, 다 그렇게 광풍이 몰아쳤었는데."

 "다 먹어봐야겠다. 먹어야 될 거 같아. 알지? must have."

"마크 네가 느끼는 그 불안감, 그걸 가리키는 말이 있던데. 뭐더라. 남이 하는 걸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거. 무슨 아이돌 그룹 노래 제목이었는데."

"음.. 내가 제일 잘 나가?!"

"아냐!"

"치얼업?!"

"놉."

"..."

"아! Ditto!!!"





디토(Ditto) 소비

디토 소비는 ‘마찬가지’를 뜻하는 영단어 ‘ditto’에서 유래된 용어로, 특정 인물이나 콘텐츠의 제안에 따라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 트렌드를 말한다. 자신의 취향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맹목적으로 따라한 과거 모방 소비와 달리 자신과 외향이나 취향이 비슷한 대상의 소비를 추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3년도에 발매된 아이돌 그룹 뉴진스 노래 제목인 ‘Ditto’와 동일한 단어이다. (출처 : 소비자평가)











몸과 마음을 갈아 만든 스타트업 <로즐린>이
벤처인증 이후 올리브영의 K-BOX 브랜드로 선정되면서 사업 차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덕분에 향 원료와 제품 제조, 마케팅 등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중인데 일 말고도 외국인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또 다른 기회이자 도전이 되었다. 특히  이곳, 한국의 맨얼굴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일은 많은 고민거리를 가져온다.

나에게는 일상이어서 익숙했던 것들이 그들의 관점과 시선에서는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문화인류학 박사처럼 혹은 한국 문화 전문가 마냥 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하며 나 또한 새로운 깨달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지금 한국은,
'인류애 상실'이라는 단어가 만연하고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불쾌한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가 겪고 느낀 바로는
한국만큼 안전하고 인정 많고 효율적이고 편리한 곳은 단연코 없다.

물론 복잡하고 스트레스 많고 경쟁적이고 때로는 너무 빨라서 그 속도를 따라기가 벅찰 때도 있다. 나도 한 때는 '한국은 싫어', '한국이 최악이야', '이래서 한국은 안돼.' 라며 자조하는 투덜이 스머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스스로 지옥이라고 명명하면 결국 지옥이 되는 법.

이 브런치를 통해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해하며
좀 더 긍정적으로 나와 주변을 바라보는 기록이자 기회가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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