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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Jul 29. 2024

파리올림픽에 관심없는 이유(feat. 한국이달라졌어요)



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메달 중간 순위 집계표. 당시 TV 뉴스에서는 올림픽 내내 이 순위의 등락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달랐다.


딱 달라붙은 옷을 입고 빙판 위를 달리는 쇼트트랙 경기

제 키만 한 활시위를 들고 과녁판 앞에 서 카메라 렌즈를 깨먹는 양궁 시합


TV앞에서 옹기종기 고함을 쳤다가 옆에 앉은 언니오빠 등짝을 두드렸다가

엄마가 차려 준 밤참을 맛있게 먹기도 했던

신이 나고 흥분되는 올림픽 시즌.


올림픽은 나에게 손꼽아 기다리던

거대하고 위대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몇 해가 흐르고  뒤의

이천이십사 년도의 프랑스 파리 올림픽은

언제 시작했는지 어떤 종목이 있는지도 모른 채

무관심 속에 개막식을 했고

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을 너머 머나먼

저 멀리 다양성과 예술과 톨레랑스의 나라에서

아주 조용히 아주 진지하고 멋지게

우리 선수들만 땀 흘리며 경기에 임하는 중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를 북한으로 소개하고,

펜싱 남자 선수 이름을 잘못 호명하는 등의

사상초유의 무례를 범하고 있는 프랑스 올림픽 조직위 덕분에 분노의 관심을 받긴 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도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를 나는 어제오늘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


일상에 치이는 마흔, 나이 때문이겠거니.

모든지 심드렁해지는, 또 나이 때문이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Korea is known for its competitive and results-oriented culture, so I think you may have a greater interest in the Olympics."


그런 내 생각의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건

다음 달에 있을 해외 팝업 스토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마크였다.

그는 한창 한국의 화장품 내수 시장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나에게 올림픽 이야기를 꺼내고서는 '지극히 경쟁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한국인의 표본인 네가 왜 파리 올림픽에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경기 스케줄을 다 꿰고 있었는데. 지금은 뉴스에 나오는 기사만 챙겨보는 정도니까."


"다른 사람들도?"


"아마도? 예전만큼 사람들이 금메달을 땄다느니 누가 잘한다느니 그런 얘길 안 하는 거 같아."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어렸을 적 옆집에 한국인 가족이 살았단 말이야. 그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일본보다 순위가 앞이네 뒤네 하면서 올림픽 시즌 내내 흥분했었다고. 얌전하던 사람들이 그땐 정말 얼마나 소리를 질러대던지."


"맞아.... for a very long time, we were obsessed about the ranking of medal count. But there was a lot of criticism toward focusing too much on the gold medal and only thinking about the ranking...."(한동안 우리 한국 사회가 금메달 수와 랭킹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많이 있었고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왔다는 얘기.)"


"그럼 그때 이후에 한국 사람들이 더 이상 랭킹을 안 따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히 재미가 없어져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걸까?"


"글쎄..."


생각해 봤다.

그땐 왜 내가 그토록 열광했을까.

그리고 지금은 왜 이토록 열정이 사라진 걸까.



"옛날에는 메달 순위 말고는 우리나라를 내세울 만한 게 없었어. 한국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랄까. 해외에 나가면 백이면 백, 모두 '북한에서 왔냐 남한에서 왔냐' 물어봤지. 지금 난 그런 질문을 하는 외국인을 보면 비웃듯이 말해. Are you serious? 너 학교는 제대로 다닌 거 맞아? 어떻게 그런 걸 물어볼 수 있어? 무식하기 짝이 없군! 식으로 상대를 오히려 부끄럽게 만들 수준이 되었다는 거지."


"맞아. 나도 한국에 간다고 하면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해. 한국 음악, 한국 드라마, 한국 연예인에 대해 아는 사람들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심지어 김밥? 불닭면? 많이들 알아."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올림픽에 관심이 없는 건 굳이 올림픽이 아니어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한국을 알릴 수 있거나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절실함이 사라져서라고도 볼 수 있겠다.  더 이상 일본보다 중국보다 잘해야 해,  아시아에서 운동을 제일 잘해야 해 이런 마음과 생각이 필요 없어졌다고나 할까. 내가 나서서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혹시 이런 표현은 어때? thymos?"


"맞아. 인정욕구(thymos). 어떻게 해서든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갈망과 욕망이 예전에 비해 조금은 약해진 상태라는 것. 이게 이유가 될 순 있겠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BTS 지민. 출처 : 글로벌 팬덤 플랫폼 ‘유픽(UPICK)’



- 참고- <thymos>


1. 위키피디아

-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Thumos, also spelled Thymos (Greek: θυμός), is the Ancient Greek concept of 'spiritedness' (as in "a spirited stallion" or "spirited debate"). The word indicates a physical association with breath or blood and is also used to express the human desire for recognition. It is not a somatic feeling, as nausea and dizziness are.


2.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윤리학 / 이창우, 김재홍, 강상진 옮김, 이제이북스(2006), p464.'

- 티모스 : 분노, 격정, 충동, 기개. [기존 번역어: 노여움, 분격]

원어 ‘튀모스’는...(중략)... 욕구 밑에는 자긍심과 긍지라는 감정상태가 깔려 있기 때문에 ‘기개’라고 번역할 수 있고,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에는 ‘분노’의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튀모스’는 ‘기개’ 혹은 ‘분노’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저항을 뚫고 목표 대상에 돌진하는 이 감정상태의 도전적인 특성 때문에 ‘격정’ 혹은 ‘충동’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3. 티모스 실종 사건 / 우종민

“플라톤이 생각한 티모스를 간단히 정리하면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야. 여기서 ‘인정’은 단순히 남에게 칭찬받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치와 존재에 대한 인정까지 포함하는 고차원적 인정이야. 이건 현대에도 적용되지. 정당한 인정을 받아야 일에 대한 기백과 용기가 생기지 않겠어? 조직의 일원으로 살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발휘하는 열정과 생명력, 성취욕, 용기가 다 티모스야. 티모스를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는 영어 단어는 애스퍼뤠이션(aspiration)이지. 발음 괜찮았어? 이거 아주아주 중요한 거야. 중요하니까 계속 강조하는 거라고.”


 




 


"나 또 궁금한 거 하나 또 있어. 한국인은 일본이나 중국이랑 달리 유난히 양궁과 펜싱 같은 '싸움 기술(?)'같은 것에 소질이 많은 거 같은데 그 이유를 알아?"


"그건 모르겠다. 내가 알기론 양궁 같은 종목은 아주 큰 대기업에서 빵빵하게 후원을 해줘. 그래서 그 경쟁력을 유지하는 거 같아."


"글쎄. 양궁을 잘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대."


"뭐?"


"여기에 이런 기사가 있어.  I think since Koreans use chopsticks a lot we do have special hand skills. So, that has helped.....(중략)... China's and other Asian countries' chopsticks, being longer and wooden, tend to be a bit easier to use. Korean chopsticks are thinner, made of steel and can be very hard to come to grips with for the untrained. / 출처 : 로이터 통신

(한국은 젓가락, 특히 스틸 젓가락을 쓰는데 사용하기가 매우 어려움. 따라서 이걸 어렸을 적부터 써온 한국인들이 손재주가 좋고 집중력이 뛰어나서 양궁도 잘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사)


"No~ it's ridiculous"







몸과 마음을 갈아 만든 스타트업 <로즐린>이
벤처인증 이후 올리브영의 K-BOX 브랜드로 선정되면서 사업 차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덕분에 향 원료와 제품 제조, 마케팅 등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중인데 일 말고도 외국인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또 다른 기회이자 도전이 되었다. 특히  이곳, 한국의 맨얼굴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일은 많은 고민거리를 가져온다.

나에게는 일상이어서 익숙했던 것들이 그들의 관점과 시선에서는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문화인류학 박사처럼 혹은 한국 문화 전문가 마냥 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하며 나 또한 새로운 깨달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지금 한국은,
'인류애 상실'이라는 단어가 만연하고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불쾌한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가 겪고 느낀 바로는
한국만큼 안전하고 인정 많고 효율적이고 편리한 곳은 단연코 없다.

물론 복잡하고 스트레스 많고 경쟁적이고 때로는 너무 빨라서 그 속도를 따라기가 벅찰 때도 있다. 나도 한 때는 '한국은 싫어', '한국이 최악이야', '이래서 한국은 안돼.' 라며 자조하는 투덜이 스머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스스로 지옥이라고 명명하면 결국 지옥이 되는 법.

이 브런치를 통해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해하며
좀 더 긍정적으로 나와 주변을 바라보는 기록이자 기회가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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