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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Aug 13. 2024

코풀기에 관대한 외국인 vs. 재채기에 관대한 한국인

코로나는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걸린 냉방병 증세라고 했다.

하루종일 머리가 욱신거리고 연신 흘러내리는 코를 닦아 내야 하는 여름 감기 같기도 했다.


훌쩍훌쩍


마크를 마주 보고 한창 사업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우리 둘 앞에는 뜨겁고 매운 닭볶음탕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열기와 매콤함에 코 안 세포는 팽창되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습기 가득했던 코는 더 많은 수분을 머금으면서 한껏 부풀어 올랐다.



훌쩍훌쩍

킁킁



나는 자칫 콧물이 인중 위로 흘러내려 영구가 되지나 않을까 조건반사적으로 연신 코를 들이마셨고, 찰나의 실수로 낚아채지 못한 콧물이 적나라하게 마크에게 보일까 싶어 연신 인중을 닦아내던 중이었다.


"Hey! blow your nose!!! so disgusting!!!!! 진촤 더러워."

"디스거스팅?! 역겹다니 너무 하네 증말."

"플리즈.  풀어줘. 티슈 줄까?"

"사람들 다 밥 먹고 있잖아. 어떻게 여기서 휑하고 더럽게 코를 풀어."

"@@ 그게 무슨 말이야?!"

"코 푸는 소리 역겹잖아. 마치 가래 뱉는 소리 같고 그 풀어버린 코가 밥에 섞이는 거 같고...."

"야! 네가 코 먹는 소리가 더 역겁거든. 네가 그 코를 목으로 넘겨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으웩."

"뭘 그렇게까지 상상을 하냐."

"그러니까 상상하게 하지 말고 풀라니까?!"

"알았어. 그럼 좀 기다려.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엥?! 앉아서 풀어, 롸잇 나우!"

"안된다니까. 사람들 욕해."

"코 훌쩍이는 건 괜찮고 코 푸는 건 안돼?"

"어 안돼."

"오 마이.."


가슴팍에 소주병이 그려진 네이비 앞치마를 입은 채 서둘러 자리를 뜨는 나를 마크는 세상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오우 왜 코를 안 풀어? 그냥 킁하고 풀면 깔끔한 걸!"


그러거나 말거나 여긴 한국이다.

식당에서 코를 풀다니.

사람들이 얼마나 째려보고 수군대겠어?!!!














나와 마크는 지하철 안에서 한창 새로 출시된 린넨워터(섬유향수)를 추석 선물 세트에 포함할지 말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선물 세트의 구성에 따라 다음 달에 있을 일본 팝업 스토어의 물품 구성도 달라지기 때문에 빠른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본품 말고 미니어처를 넣는 건 어때?"

"25밀리짜리?"

"응. 그건 가격에 포함 말고 선물로 껴 주는 거야."

"It's unnecessary."

"내 생각엔 necessary. 제품 홍보에 분명 도움이 될걸."

"미니어처는 선물 세트와는 어울리지 않아. 선물 받는 사람과 구매자는 다르잖아. 미니어처의 소구 대상은 우리 로즐린을 아직 모르는 비기너들이라고."

"흠.. 난 모든 제품에 미니어처를 껴주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사람은 공짜를 좋아하잖아."

"놉. 너무 흔한 공짜는 매력 없는 쓰레기가 될 뿐이야."

"아닌데,, 그 유튜버는 무조건 박리다매! 저가의 원료로 만들어 뿌리는 게 사업이라고 했는데.."

"야 그게 무슨 사업이야 사기지."



그때였다.

마크 옆에 선 한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더니


췌!


재채기를 했다.

나는 깜짝 놀랐고

마크는 놀라다 못해 벼락 맞은 강아지마냥 옆으로 튀어 오르기까지 했다.


"오우 마이.."

"괜찮아?!"

"so nasty!! germs! infection! I need protection from external factors!!!! 아니 그 사람은 왜 재채기를 안 참아?"

"재채기를 어떻게 참냐? 한국에 이런 말이 있어. Three things a person cannot hide. poverty, sneezing, and love."

"놉. 재채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어. 나는 공공장소에서 재채기가 나올 거 같으면 코와 입을 쥐고 입술을 꾹 다물어서 참아. 그런데도 재채기가 올라온다?! 그럼 소리가 나지 않게 입을 최대한 닫고 하면 안에서 꿀럭거리다 멈춘다구! 우리는 다 그렇게 해! everyone can do it!!!"


"입을 가리거나 마스크 안에서 재채기를 하면 되지. 그걸 굳이 참아? 나오는 걸 어떻게?"

" 참아야지! 참는 게 기본 매너야. 공공장소잖아. 아무리 막고 가린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마스크 사이로 세균들이 나올 수도 있어."

"I didn't know your acceptable level of hygiene was that high."(네가 그렇게 위생에 신경 쓰는지 몰랐네.)

" It's just common courtesy. 그 아저씨는 excuse me 라도 했어야 했어."

"누구한테? 그 침은 사방팔방 다 튀었을텐데."

"모두에게! Everyone who was in that subway!"

"어떻게?"

"큰 소리로!! 익.스.큐.즈.미!"

"오우 이런..."












몸과 마음을 갈아 만든 스타트업 <로즐린>이
벤처인증 이후 올리브영의 K-BOX 브랜드로 선정되면서 사업 차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덕분에 향 원료와 제품 제조, 마케팅 등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중인데 일 말고도 외국인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또 다른 기회이자 도전이 되었다. 특히  이곳, 한국의 맨얼굴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일은 많은 고민거리를 가져온다.

나에게는 일상이어서 익숙했던 것들이 그들의 관점과 시선에서는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문화인류학 박사처럼 혹은 한국 문화 전문가 마냥 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하며 나 또한 새로운 깨달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지금 한국은,
'인류애 상실'이라는 단어가 만연하고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불쾌한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가 겪고 느낀 바로는
한국만큼 안전하고 인정 많고 효율적이고 편리한 곳은 단연코 없다.

물론 복잡하고 스트레스 많고 경쟁적이고 때로는 너무 빨라서 그 속도를 따라기가 벅찰 때도 있다. 나도 한 때는 '한국이 싫어서', '한국은 최악이야', '이래서 한국은 안돼.' 라며 자조하는 투덜이 스머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스스로 지옥이라고 명명하면 결국 지옥이 되는 법.

이 브런치를 통해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해하며
좀 더 긍정적으로 나와 주변을 바라보는 기록이자 기회가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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