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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Jul 09. 2024

한국에 커피숍이 많은 이유

언제부터였을까.

2009년에 첫 직장을 다녔을 때

그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이, 어쩌면 중독된 것처럼

밥을 먹고 나면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커피숍으로 향한다.


저렴하고 커다란

빅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있는

저렴이 커피숍 혹은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달콤한 디저트가 있는 고급스러운 커피숍

밥을 먹으며 나눴던 주제를 바꿔 다른 얘기를 하든,

이어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든

테이크아웃을 하든, 매장에서 먹든

직장인들 모두 피숍을 간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대체들 얼마나 마시는 걸까.


대한민국 성인 1인당 1년의 커피 소비량이 367잔이란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마시는 수준이다.


쌉쌀하고 독한 에스프레소를 스트레이트로 먹는다는 이탈리아보다도 많이 마신다.

세계 2위, 프랑스에 이은 커피 강국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629019300030?input=1195m


https://www.yna.co.kr/view/AKR20240209030900030?site=mapping_related







자주 가는 건물 1층에는 커피숍만 무려 10여 개가 있다.

그래서 주변 직장인들은 매일마다

다른 원두 맛을 골라 마시는 풍요로운 선택권을 누린다.

처음에는 이곳이 모두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되는 모양이다.


내가 그리 생각하기 된 것은 다름 아닌 초밥집 때문이다.

어느 날 건물 구석에 젊은이 둘이서 호기롭게 창업한   '이색 초밥집'이 생겼다.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던지 가게 구석구석 주인의 고민과 간절함이 그대로 드러나보였는데

안타깝게도 그곳은 1년도 채 안되어 폐업을 했다.


빼곡히 들어선 커피숍들 사이에서 그 가게만 유난히 튀어 보였는데, 소비자들의 취향에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거다. 놀라운 것은 초밥집 바로 그 자리에  또! 다시 커피숍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창업자들은 돈냄새를 쫓아간다. 같은 건물에 커피숍이 20개 가까이 생기는 것은 그렇게 해도 돈이 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꿈과 패기 등이 곳곳에 묻어났던 이곳은 바로 화려하지만 지루한 커피숍으로 변해버렸다.




짧은 회의를 마치고

때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마크와 밥을 먹기로 했다.


마크는 한국에 있는 동안 매 끼를  한국 음식으로 해결했다.

그날의 선택은 삼계탕이었다.


나는 걸쭉하고 구수하기로 유명한 삼계탕 집을 찾아내는 성의를 그에게 베풀었다. 그리고 그는 그 보답으로 식사값을 계산하기로 했다.  우리는 베스트셀러! 원픽!이라고 적힌 들깨 삼계탕을 시켰다. 가스불이 없는데도 눈앞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삼계탕 그릇을 보며 마크는 연신 엉덩이를 들썩였다. (마크를 안 지 20여 년. 그의 반응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도 새롭지도 않다.)

각자에게 할당된 그릇에 집중하며 맛있게 먹고 있는데 마크가 내게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먹어?"

"사람들 기다리잖아. 눈치 보여."

"아하 그래서 다들 이렇게 빨리 먹고 나가는구나. 저 사람들 우리보다 늦게 왔는데 벌써 나간다."

"우리도 빨리 나가자."


나의 재촉에 양이 부족하다는 듯 까만 돌솥 바닥을 숟가락으로 연신 긁고 있던 마크가 몸을 일으키며 투덜댔다.


"할 얘기가 더 남았는데."

"커피 마시면서 하면 되지."

"커피? 맞네. 한국은 빅커피랜드지!"


마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좁다란 골목에 수많은 커피숍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피숍 정말 많다. 모두 다 팬시해! 모든 가게에 사람이 꽉 차있어."

"WoW! there's so many cafes here. I think every Korean in Korea drinks an Americano every day!."


그리고 그는 마치 한국인처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다. 하지만 이내 시원하기만 하고 맛이 없다며 중얼거렸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숍을 오는 거야?"


"좋아하지."


"혹시 한국인들은 다들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건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서 다들 바빠 보여."


"그 이유도 있지만. 유난히 커피숍이 많은 건 다른 이유 같아. 내가 볼 땐 대화를 하고 싶어도 마땅히 할 만한 곳이 없어서? 아까 봤잖아. 식당, 특히 맛있는 식당은 오래 앉아 음미하는 곳이 아니라 맛봤으면 빨리 다음 사람을 위해 비켜줘야 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커피숍은 다르지. 거긴 먹는 장소보다는 대화하는 장소니까."


"아하! 그래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구나! 말을 많이 하면 목이 마르잖아. 그러니까 시원한 거를 마시는 거지"


"재미있는 생각이다. 내 생각엔 한국은 '피로사회'라서가 아닐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시원하고 조금이라도 더 목 넘김이 쉽고 조금이라도 싸고 편안한 음료를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어때?"


"Oh~ that's a good point!"











몸과 마음을 갈아 만든 스타트업 <로즐린>이
벤처인증 이후 올리브영의 K-BOX 브랜드로 선정되면서 사업 차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덕분에 향 원료와 제품 제조, 마케팅 등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중인데 일 말고도 외국인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또 다른 기회이자 도전이 되었다. 특히  이곳, 한국의 맨얼굴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일은 많은 고민거리를 가져온다.

나에게는 일상이어서 익숙했던 것들이 그들의 관점과 시선에서는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문화인류학 박사처럼 혹은 한국 문화 전문가 마냥 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하며 나 또한 새로운 깨달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지금 한국은, 
'인류애 상실'이라는 단어가 만연하고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불쾌한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가 겪고 느낀 바로는
한국만큼 안전하고 인정 많고 효율적이고 편리한 곳은 단연코 없다.

물론 복잡하고 스트레스 많고 경쟁적이고 때로는 너무 빨라서 그 속도를 따라기가 벅찰 때도 있다.나도 한 때는 '한국은 싫어', '한국이 최악이야', '이래서 한국은 안돼.' 라며 자조하는 투덜이 스머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스스로 지옥이라고 명명하면 결국 지옥이 되는 법.

이 브런치를 통해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해하며
좀 더 긍정적으로 나와 주변을 바라보는 기록이자 기회가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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