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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21. 2024

국회 미용실 디자이너 최필립(54)의 이야기_2


보좌관은 무심히 툭 내뱉는 김 의원의 말에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좌진 생활 15년차다.

모신 의원만 4명이다. 김장문 의원은 그가 보필한 의원들 중 가장 다루기 쉬었다. 나쁘게 말하면 단순한 사람, 좋게 말하면 머리를 굴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혹시.. 의원님 어제 약주하셨습니까?"

"당연히 했지."



송보좌관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영감 앞에서는 표정 관리를 업무의 기본 태도로 여긴 송 보좌관이다. 눈치 하나는 빠른 김 의원이 화가 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왜 문제있나?거기가 어떤 자린데. 원장 노인네 나 때문에 말년에 횡재했지. 그걸로 한 턱 쏜다는 데 한 잔 해야지."

"그럼... 귀가는 어찌하셨습니까. 황기사가 모임 파하기 전에 퇴근했다고 들어서요."

"그게 왜."

"혹시 운전대 잡으신 게 아닌가 해서..."

"아! 거기서 집까지 얼마 안 되잖아. 길도 훤한데."

"....."

"왜! 왜 또 똥 씹은 표정인가."

"음주운.."

"뭐라는 건가. 사고 안 났잖아. 뭘 그리 넘겨짚다. 가만 보면 보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그러니까 매사에 그렇게 피곤해하지. 적당히 해. 적당히 융통성 있게 하라고."


그 놈의 융통성. 적당히 하라는 말.

김 의원은 늘 샛길 인생을 살았다. 외고는 뒷돈을 써서, 대학은 잔디를 깔아줘서, 취업은 광고를 대줘는 식이었다.

잘난 부모는 아들 김장문이 의원 뱃지를 달 수 있도록 임야 만 평을 팔았다. 하지만 아들은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노력과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융통성이란 말은 늘 변명과 구실이 되었다.

김 의원에게 어제의 운전은 또 하나의 융통성이었다.


송보좌관이 곤란한 눈빛을 했다. 필립은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필립은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보좌관은 찰나의 순간에 필립의 눈에서 매우 강한 서늘함을 느꼈다.

평소와는 다른 감정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느껴 본 감정이다. 그래, 지난달 전 재산을 잃고 가족도 자신을 다 떠났다며 울분을 토하던 민원인에게서 받은 것이다.


"내가 다시는 여기에 안 찾아옵니다. 김 의원을 찍을 일도 없을 겁니다. 평생 당신 네들을 증오하며 살겠습니다."


민원인은 의원실에서 보좌진들의 만류에도 4시간을 내리 기다리더니 결국 김 의원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김 의원 동생이 의원의 이름으로 임야를 팔았다고 했다. 동생은 이 땅 가운데로 도로가 뚫릴 계획을 미리 입수했으며, 그 계획은 국회 국토부 소속인 김 의원의 정보라고 했단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거짓이었고 민원인이 산 땅은  오히려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이 되었다. 나라에서 보상은 요원했고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민원인이 투자한 금액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다.


문제는 김 의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 의원은 민원인 명단을 확인하자마자 다른 외부 일정을 잡았다. 일부러 피한 것이다. 송 보좌관은 민원인을 대신 만났다. 하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민원인의 마음은 회복되지 않는 듯했다. 늦은 밤 슈퍼문이라는 큰 달이 뜬 날, 송보좌관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 나중에는 없는 번호라는 안내를 받았다.

송보좌관은 그가 그저 자신과 의원 하고만 연결을 끊은 것이기를 바랐다. 세상과 인연을 끊기에는 그는 잘못이 없었다.



"사전 회의 5분 전입니다."


수행비서가 보좌관을 재촉했다.

의원은 서둘러 미용실을 떴다.  보좌관은 필립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필립에게도 느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예, 보좌관님도 고생하셨어요."



보좌관과 필립은 서로 말을 아끼며 등을 돌렸다. 필립도, 보좌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둘은 알았다.












본회의가 시작됐다.


논란이 없는 법안들이 빠르게 통과되었다.  관련된 기사들은 단독, 속보 등의 타이틀을 달며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달궜다.


 중 가장 주목을 받는 타이틀은 총리 일가에 대한 특검의 통과 여부였다. 여당은 법안을 반대했고 야당은 찬성했다. 예상한 대로였다.

뻔한 시나리오에 기자들은 맥이 빠졌다. 불합격 성적표를 들고 귀가하는 학생처럼 기자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사무실로 돌아가 국장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때, 속보 하나가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떴다.


'김장문 의원, 음주운전 현장 포착'


기사에는 김 의원이 비싸기로 유명한 한정식 앞에서 등산 점퍼를 입은 무리들과 포옹하는 사진, 그리고 비틀거리는 사진,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오르는 사진 등이 실렸다.

 

기자들은 퇴근길에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모두들 열심히 의원 이름 세 글자를 검색했다. 누구는 보좌관과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창호법 공동 발의자였던 국회의원의 이중인격'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국회의원의 음주운전, 이대로 좋은가'


후속 기사들도 쏟아졌다.



그 시간, 필립은 본회의 지원으로 밤을 새웠다던 국회 사무처 직원의 머리에 뿌리 염색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TV 화면에는 까만 스타렉스 차와 같이 찍힌 김 의원 사진이 도배가 되었다.


'음주운전 의혹 김 의원,  운전은 보좌관이 했다고 증언.'

'김 의원, 음주 운전 경력만 3번째.'

'윤창호법 시행 6년째,  음주운전 적발 건 수 작년만 13만 150건.'


필립 어깨너머로 뉴스 타이틀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영숙은 손님 머리를 만지다 말고 필립을 쳐다봤다.

하지만 필립은 어쩐지 아무 표정 없이 손에 까만 염색약만 바르고 있었다.


얕은 숨이 새어 나왔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일명 윤창호법)


군 복무 중이던 윤창호 씨가 2018년 9월 휴가를 나왔다가 부산 해운대구 거리에서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숨졌다. 이후 위험운전치사상죄의 법정형을 상향조정하는 특정범죄가중법과 도로교통법이 연이어 개정·강화됐다. 기존 ‘3회 이상 음주운전을 한 경우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처벌’하던 내용을 개정, ‘음주운전 등을 2회 이상 한 자에 대해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강화했다. 이 법은 그해 12월 시행됐다.


그러나 헌재가 2021년과 2022년 이에 대해 거듭 위헌 결정을 내려 현재는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윤창호법 제정 당시 국회가 3개월 만에 특별법을 만들면서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헌재는 이 조항이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아 사안에 따라 가중 처벌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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