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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21. 2024

국회 청소부 양말숙(70)의 이야기_1





끙.


몇 백 년 된 나무로 만들었다던 육중한 문은 온몸으로 밀어도 매번 힘에 부쳤다.

말숙은 문을 있는 힘껏 밀어 열고 고정 발걸이를 걸어놓았다.  휘하고 둘러보니 밤새 앉아 끙끙댔을 야근자들의 숨 내가 콧 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본관 247호.


이곳은 정당 사무실이다. 국회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얻은 의석 수를 따져 방을 배정했다. 거대 양당이 제일 큰 사무실 몇 개를 선점하면 소수 정당이 나머지를 작은 방 몇 개를  가져가는 식이다.


지난 총선 이후 이 방주인은 바뀌었다. 책상의 구조와 컴퓨터는 그대로였지만 실내에 장식되어 있던 간판과 홍보물들의 색깔이 바뀌었다. 국회 밖에서는 늘 한 쪽이 괴물, 한 쪽은 선자로 그려지지만 말숙이 보기에 국회 직원들은 어느 정당 상관없이 다들 순하고 평범했다.


말숙은 그래서 이 곳 국회에서 아주 오래도록 일하고 싶었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직원들이 따뜻하게 인사를 건넬 때마다, 냉장고에서 두유를 꺼내 주거나 자신이 먹는 홍삼 진액을 슬쩍 주머니에 넣어주는 직원들을 마주할 때 마다.

밀숙이 직원들에게서 아들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처럼 직원들도 말숙에게서 자신들의 엄마를 떠올렸다.


새벽 5시 출근, 3시 퇴근.

다람쥐 쳇바퀴 같은 근무 시간도 말숙은 편했다. 처음에는 물론 죄수복 같은 퍼런 청소복과 모자, 토시가 너무도 싫었다.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칠순의 노인에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시작은 종로에 위치한 건물 청소였다. 여고 동창의 추천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대학까지 나온 내가 무슨 청소일인가 싶어 거절했다. 하지만 화장실과 사무실 몇 개만 돌면 월 백은 가져올 수 있다는 말, 무엇보다 새벽에 일을 시작하니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 민망할 일도 없다는 말에 끌렸다.


그러다 일주일만에 말숙은 사직서를 썼다. 입던 앞치마를 끊이질 듯 내팽개쳤다. 용역 업체 대표가 부모 뻘인 청소부들을 상대로 막말을 퍼붓고 얼굴에 서류를 집어던지는 꼴을 말숙은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은 절대 이런 대접받지 마. 나 혼자만도 충분 해."


동갑인 말숙 남편이 나이 육십에 한 아파트 경비로 일하면서

나이 서른의 입주민에게 발길질을 당한 후 한 말을 말숙은 기억하고 있었다.  


말숙은 남편의 당부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후회했다. 당장 하루 삼 세끼 사 먹을 돈조차 넉넉하지 않은 때였다. 이러다 덜컥 큰 병이라도 나면 골방에서 굶어 죽을 것 같았다.


궁하면 구해진다 했던가. 요행히 딸에게서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10개월 후면, 출산 휴가가 끝나는 13개월 후부터  아이를 대신 봐달라는 딸의 말에 말숙은 이제 살았다 싶었다. 딸은 말숙에게 월 150을 챙겨주었다. 딸이 참 고마웠다.  


손녀딸 지유는 말숙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럭무럭 커갔다. 딸 생각을 하며 밤낮으로 열심히 아이를 돌봤다. 자식을 키울 때는 잘 몰랐던 것들이 손녀를 키우면서는 눈에 들어왔다. 가끔 산책길에 만난 젊은 엄마들에게서 요즘 유행하는 이유식 만드는 법, 싸고 예쁜 옷을 살 수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 재미있었다. 가끔 무릎이 시큰거리고 손목이 아파 잠을 자다가도 깨긴 했지만, 청소 일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에 입학할 때쯤 되자 손녀는 말숙의 손을 타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침 9시에 유치원 등원을 시키고 딸이 시키는 대로 학원에 데려다 주기만 하면 하루가 금세 갔다. 아이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 건물 청소 자리를 소개해 준 친구에게서 또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국회 청소부 일이라고 했다. 


"다른 데도 아닌 국회잖아. 보는 눈이 많아서 아무한테나 함부로 안해. 전부 배운 사람들이라 양반이야."


말숙은 흔들렸다. 게다가 건물 청소부와는 다르게 용역 업체에 소속되어 하청 직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 사무처와 직접 계약하는 형태라고 했다. 그래서 휴가도 주고 보너스도 준단다. 말숙은 용역업체 대표에게 갑질을 당하는 꼴을 볼 일이 없겠네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다.

올해로 5년째, 말숙은 이대로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할 생각이었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회의가 있었던지 쓰레기통마다 커피컵과 각종 음식물 껍질들이 그득히 쌓여있었다.


말숙은 바퀴 달린 큰 통을 한 발로 툭툭 밀며 왼쪽 가장자리 책상부터 쓰레기통을 비우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우르르 쏟아붓지 않는다. 사무실 쓰레기 더미 사이에는 먹다 남은 액체가 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위에 쌓여있는 비닐, 종이류를 걷어내면 역시, 안에 막다 남은 커피, 음료가 있다. 음료는 말숙이  큰 통에 고무줄로 엮어 놓은 작은 통에 쏟아부으면 되는 것이다.


쓰레기통 5개를 비웠는데 액체통은 금방 차버렸다. 아이스 커피 플라스틱 통은 쓰레기통마다 하나씩 있다. 뉴스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10명 중 8명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는다더니 젊은 사람들은 건강도 하네. 말숙은 생각했다.  


오른손으로 통을 들고 왼손으로 쌓인 쓰레기를 훑고, 액체가 없는 것을 확인 후, 오른손으로 뒤집어 왼손으로 쓰레기통 바닥을 다시 한번 훑는 과정이 마무리다. 가끔은 쓰레기통을 모아다가 화장실에서 씻어 주어야 한다. 쓰레기통 바닥에는 정체 모를 끈적이는 것들이 붙어있어 시간이 지나면 악취를 내뿜는다. 말숙은 이면지를 모아다가 쓰레기통 바닥에 깔았다. 나름의 노하우였다. 직원들도 말숙의 꼼꼼함을 좋아했다.


쓰레기통을 다 비우고 나면 바닥을 쓸고 닦을 차례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사람, 흙을 묻혀 오는 사람, 파쇄 종이 가루가 쌓인 사람 등 자리의 주인마다 바닥 쓰레기도 특징이 있다.


책상 가득 보고서를 쌓아두고 검토하는 직원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었다. 긴 머리를 얼마나 뜯고 만졌는지 빗자루 사이로 묻어 나오는 머리카락이 빛 자루 몇 번에 몇 가닥이다.


흙투성이 자리의 주인공은 늘 슬리퍼를 신고 국회 앞 잔디밭을 돌아다녀서다. 그는 늘 구두 대신 슬리퍼를 신고 밖을 쏘다닌다. 사무실에 거의 앉지 않는 듯 책상 위 흔적은 잘 바뀌지 않는다. 펜은 빨강, 파랑 2개가 전부이며,  어디에서 받은 지 모르는 명함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담배를 태우는지 곳곳에서 니코틴 냄새도 배어 나온다.


파쇄 종이가 가득한 책상 주인은 막내일 것이다. 매일 몇 천 장의 종이를 가는 지 그녀의 호흡기가 걱정될 정도다. 그 외의 시간엔 선배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듯하다. 슬리퍼보다는 구두를 신을 일이 많아서인지 슬리퍼가 가장 깨끗하다. 대신 전화기의 수화기는 가장 때가 많이 묻었고, 컴퓨터 모니터 앞엔 무슨 기억해야 할 것이 그리 많은지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온갖 식당 팸플릿이 어지럽게 붙어있다.  


‘전화 끊기 전에 꼭 메모 남기기’
‘국장님 5911, 팀장님 5912 , 차장님 5913, 과장님 5914, 나 5915’
‘꽃집…., 서점, 미용실, ’
‘당번 표 짜기, …’

“안녕하세요.”


말숙은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자리 주인, 막내다. 청소 아줌마가 자기 자리에 적힌 메모를 읽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했을 터였다.

"에구머니나, 그 그게."

말숙은 괜히 고개를 연신 숙여가며 변명을 찾느라 안절부절이다. 하지만 막내는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의자 위로 털썩 앉는다.

“일찍 오셨네요 오늘.”

막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 척에 가까운 표정으로 무심히 인사를 건넨다.

“목요일 아침엔 30분 더 일찍 나와요. 수요일에 다들 야근들 하니 제일 쓰레기가 많이 나오거든.”
아, 그렇겠네요. 국회 스케줄에 빠삭하시네요.”
“반복하니까요. 하다 보면 몸에 익고 손에 익고 뭐…”
"고생 많으시죠..."


말을 길게 빼는 막내의 태도에 말숙은 왜 자기 자리를 훔쳐보냐고 따져 물을까 얼른 바닥을 닦는다. 출근하기 전에 끝냈어야 하는 일이다. 청소부가 직원들에게 발을 들어달라 요청하며 바닥을 닦는 것만큼 업무 태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말숙이다.

"일찍 오신 거지요? 내가 평소랑 다름없이 청소하는 건데."

"예, 오늘 아침에 할 일이 있어 일찍 나왔어요."

"빨리 하고 갈게요."


말숙이 서두르자 막내는 몸을 돌려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바닥을 보다 말숙은 막내의 발꿈치 부분에 양말이 해져 살이 보이는 걸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막내 자리에서는 희미한  아기 분유 냄새가 난다. 어린아이 엄마다. 순간 말숙은 막내를 등 뒤에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 방 최고참이다. 국장. 국장이 등장했다. 말숙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유 오늘 다들 일찍 오시네. 얼른 끝내고 가볼게요."


말숙은 빗자루와 걸레대를 주섬주섬 잡고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 본회의 있는 거 아시죠? 내가 거기 팀장님께 말씀드리긴 했는데 오후에 회의 끝나고 청소 한 번 더 해주세요. 얼마 전에 언론에 난리났잖아요."


국장이 말한 기사를 말숙도 알고 있었다. 기자들은 국회 회의 이후 회의 준비자, 참석자, 출장자들이 흘리고 혹은 버리고 간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를 사진 찍어 대문짝만 하게 보도했다.


'일회용품 줄이기 법 시행하면서

국회에서는 마구 쓰는 일회용품'


 기사는 일주일 내내 국회 관계자들을 괴롭혔다. 의원들은 보좌진과 국회 사무처에게, 그리고 그 폭탄은 마지막에 청소부들에게로 떨어졌다.


회의가 있는 날에는 추가 청소 업무 의무화.




말숙과 나머지 청소부들은 각종 감사와 회의가 몰려있을 때마다 저녁 6,7시를 넘겨 퇴근해야했다.  


그런데 오늘 또 회의란다. 어제도 말숙 대신 영희 언니가 남았다. 3시에는 국회를 나서야 유치원에서  손녀 픽업이 가능했다. 딸에게 뭐라고 해야하지? 잔무가 있어서 지유 유치원에 못간다고?그럼 딸이 가야한다.

고작 청소를 한답시고 내 월급의 몇 배나 버는 딸보고 일 제치고 나오라고 하는 소리다. 고작 청소를 한답시고 귀한 손녀 픽업을 못한다고 해야한다. 고작. 고작. 청소부가 뭐라고.



"오늘 회의는 몇 시에나 끝날까요?"
"글쎄요, 의사진행발언을 짧게 한다고 해도 표결까지는.. "
"3시 전에는 안 끝나겠지요?"
"3시는 어렵고 빨리 끝나봤자 5시? 근데 오늘 더 걸릴 거예요."
"왜요?"
"오늘 시끄러운 법안들이 몇 개 있거든요. 오전에 사람들 몰려와서 정론관(기자회견장) 앞에  섰던데, 못 보셨어요? "
"바로 이리로 오느라.. 아침에는 정신도 없고..."
"오늘 모성보호법이 있어요. 그것도 사람들 관심 사안이고. 작년에 통과됐어야 하는데 쟁점 법안 때문에 발 묵여서 통과 못했지."

이때 말숙의 폰이 울렸다. 딸이다.

딸이란 글자 옆에 빨간 하트 두 개가 동동 뜨자 동시에 말숙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시간에 전화를?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계속-




*모성보호 3 법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기간을 확대하고 관련 급여를 늘리기 위한 3개 법률.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맞벌이부부 육아휴직 인당 1년→1년 6개월 확대

근로시간 단축제도 대상 자녀 연령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12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

난임치료휴가 年3일→6일, 유급휴가 최초 1일→2일 등으로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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