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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21. 2024

국회 미용실 디자이너 최필립(54)의 이야기_1





아직 불도 채 켜지지 않은 국회 복도 위로 이발소 바버스 폴(Barber's pole)이 깜박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필립은 염색약 잔냄새가 남은 공기가 코를 간질이자 창문을 열고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커팅 손님을 받고 나면 바로 바닥을 쓸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도 일러두고 본인도 부지런히 빗자루 질을 해댔지만, 인간의 몸에서 떨어진 기다란 털들은 먼지처럼 똬리를 틀고 있어 필립의 신경을 긁어댔다.


새벽 5시 30분.


바깥으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경호담당관실 직원들이 출근한 모양이었다. 바닥 청소 후 믹스 커피 한 잔. 필립에게는 매일의 루틴이 있었다. 설탕과 식물성 경화 유지가 건조한 필립의 속을 타고 흘렀다.


아, 좋다.


필립이 얕은 신음을 내며 목의 뭉친 근육을 풀었다.


‘6시 김장문 의원 이발’

‘6시 30분 이병자 의원 메이크업’

‘7시 최덕순 의원 헤어 드라이.’


휴.

예약자 명단을 들여다본 필립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은 본회의가 있는 날이다. 본회의란 300명 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관련 분야 회의를 거친 법을 탁상에 올려 통과를 시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절차다. 대표 발의자가 앞에 나와 법안을 설명하고, 의원들이 앉아 찬성 또는 반대 버튼을 누르고, 이후 국회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면 법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지역에만 골몰하던 의원도, 조용히 연구논문만 들여다보던 비례 의원들 모두 카메라에 서는 날이다.

카메라용 헤어, 메이크업을 할 줄 아는 필립에게는 한 마디로 '대목' 날인 것이다.


"안녕하세요."


직원 영숙이 피곤한 얼굴로 인사했다.

그녀는 올해까지만 일하고 내년에는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했다. 시내 미용실보다 진상 손님이 덜하고 어려운 파마 기술이나 가위질을 요하지 않아 편한 국회 미용실을 떠나는 그녀의 이유는 분명했다. 답답하다. 그리고 어둡다.

영숙은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밝은 데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국회 미용실 조명 얘기가 아니었다.

국회에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다.



"6시부터야. 알지?"

"예. 오늘 그날이잖아요."


스스로 극강 F라던 영숙도 필립만큼이나 신경이 날카로운 모양이었다. 필립이 TV를 켰다.


국회 미용실의 TV는 언제나 뉴스 채널에, 그것도 여야 없이 중립적으로 뉴스를 다룬다는 채널에 고정되어 있어야 했다. 방송국의 단독 보도로 대통령이 바뀐 한국이다. 한 방송국의 보도로 대통령 지지율이 급감하는 한국이다. 이를 몰랐던 영숙은 점심을 먹고 TV채널을 돌리다 손님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손님이 소리를 질렀다. 국회 미용실에서 감히 정치 편향 행위를 하냐고 했다.

억울했던 영숙이 울며 말했다. 정치가 뭔지 편향이 뭔지 알지 못한다고. 자신은 뉴스도 안 보는 무지렁이라고.  CF 나온 남자 배우 얼굴을 보다가 좋아서 채널을 안 바꾼 것뿐이라고. 하지만 손님의 목소리는 작아지지 않았다. 영숙에게 삿대질을 하며 온 나라가 언론사 장난에 놀아나고 있다고 소리를 쳤다. 그날 이후 필립은 아예 리모컨 채널에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채널 이동 금지'



"안녕하십니까."


첫 손님이 왔다.


지역에 과수원 밭만 몇 십만 평이 있다는 군수 출신 김장문 의원이었다. 의원은 이른 이슬 냄새와 함께 중년 남성들이 많이 쓰는 스킨 냄새를 풍기며 입장했다.  


"사우나 다녀오셨나 봐요."

"이야 어찌 알았대. 사장님 개코네."

"본회의 있는 날 사우나 가서 땀 쫙 빼고 오시는 의원들이 많거든요."

"그렇지 오늘 같은 날 나 같은 촌놈은 목욕재계를 해야 얼굴도 그럴듯하게 나온다고. 알지? 본회의 때 카메라에 잘 잡혀야 당원들한테 뿌리고 홍보할 사진이 그럴듯하게 나오는 거."


필립은 김 의원 옆에 서 있던 남자를 흘깃 쳐다봤다.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다듬으러 오는 송보좌관이었다.

오랜만에 상경한 시골 청년처럼 들떠있는 의원과 다르게 송보좌관은 이른 새벽부터 의원 수발에 힘이 들었는지 지친 행색이 역력했다.


필립이 의원에게 가운을 두르고 가위질을 시작하자 김 의원은 그새 잠에 빠져들었다. 필립은 고개가 떨어지는 의원을 확인하자마자 뒤에 정승처럼 서 있는 보좌관에게 작은 소리로 알은체를 했다.


"아침부터 고생하셨겠어요."

"예, 뭐 늘 그렇죠."

"사우나 정도는 혼자 다녀오면 안 되나. 또 직원들 끌고 아침 댓바람부터 움직이셨대요?"

"하루 이틀인가요 뭐."

"잠깐 휴게실 올라가서 쉬다 오세요. 지금 시작하면 그래도 30분은 걸려요."

"괜찮습니다."

"오늘 보고드릴 것도 좀 봐야 해서. 소파에 앉아 있을게요."


필립은 머리를 자르는 내내 거울에 비친 보좌관을 흘끗거리며 쳐다봤다. 평생 햇볕 한 번 안 받아본 것 같은 잡티 없는 허연 얼굴, 푸석한 머릿결과 흐트러진 셔츠 단추. 단정하게 갖춰 입은 의원과 대조적으로 보좌관은 모든 짐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지쳐 있었고 헝클어져 있었다.


"어이, 나 뒷 머리 좀 잘라줘."


누가 예고도 없이 미용실을 불쑥 들어왔다. 박형식 의원이었다. 필립과 영숙의 눈이 마주쳤다.


"예약 안하셨...죠?"


영숙이 조심스레 묻자 미간에 깊게 주름 잡혀 있던 삼지창이 더 깊게 파였다.


"예약? 그런 걸 내가 언제 해! 뒷 머리만 자르면 돼. 빨리 해줘."


박 의원은 영숙과 필립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하며 빈 의자에 자리 잡아 앉았다. 영숙이 어쩌죠 하는 눈으로 필립을 쳐다봤다. 필립이 눈으로 말했다. 그냥 해줘.


영숙은 빠른 손놀림으로 박 의원의 어깨에 가운을 올리고 카트를 끌고 와 가위질을 시작했다. 10분 내로 이발을 끝내야 했다. 6시 30분에 오는 이병자 의원이 들어와 예약을 했는데 준비가 왜 안 됐느니 왜 기다려야 하냐니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을 이렇게 버려서 쓰겠냐는 식의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영숙은 알았다.






필립은 얕은 숨을 내쉬며 가위질을 계속했다. 김 의원은 필립의 가위질 소리를 자장가 삼아 고개를 주억이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필립은 그의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수평을 맞췄다.  



"보좌관님, 말씀하신 구두 챙겨 왔습니다."


미용실 문 앞으로 젊은 남자가 다가와  송보좌관 앞에 섰다. 그는 보좌관과 달리 갖춰진 맞춤 정장에 머리에는 포마드를 바른 단정하고 기운에 찬 모습이었다.

필립은 그 젊은 남자가 의원실에 온 지 얼마 안 된 비서이며, 의원들 뒤를 쫓아다니는 수행비서라 짐작했다. 그의 손에 든 의원 가방과 행색이 그러했다.


"의원님 일어나시면 신발 바꿔드리고 바로 사전 회의 따라 올라가."

"예."

"어제 좋은 시간 보냈어?"

"예, 배려해 주신 덕분에 부모님께 식사 대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 그리고 집안에 행사 있을 땐 부담 갖지 말고 말해. 보좌진 생활하다 이혼당하는 사람 많아 알지?"

"예, 감사합니다."

"어젠 그래서 영감이 혼자 운전하고 왔단 거지?  기사님 말은."

"예. 자정 넘어 자리가 끝나서  기사님은 그전에 퇴근하셨다고 했습니다."

"술.. 을 안 드셨으니 운전대를 잡으신 거겠지?"

"그, 그게.."

"설마. 어제 경찰.. 쪽에 특별한 동향은 없었지?"

"예. 없었고 의원님도 무사 귀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필립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김 의원 입에서 풍겨 나오는 술 냄새에 또 한 번 얕은 숨을 내쉬었다.


우웽


필립은 의원을 깨울 욕심으로 드라이기를 켰다. 시끄러운 기계음 소리에 김 의원이 눈을 번쩍 떴다.


"다 됐어요 의원님. 드라이만 좀 해드릴게요."

"그럼 나 얼굴에 분칠도 좀 해줘. 저번에 카메라에 나만 촌놈같이 시커멓게 나와갖고 민망해죽는 줄 알았다니까."

"어.. 메이크업이요?"


필립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다음 손님을 받으려면 5분이 남았다. 그 안에 끝낼 수 있을까.


"응, 그 왜 남자들 잘 바르는 거 있잖아. 저번에 연예인이 국회 왔을 때 보니까 그 피부 좋게 하는 거 발랐다고 하던데. 그런 거 없어?"

"비비 크림 좀 발라드릴게요."

"뭐든 좀 발라봐."

 

필립은 재빨리 자신의 개인 사물함에서 비비크림을 꺼냈다. 남자는 여자처럼 잡티를 가리는 목적으로 피부 화장을 했다가는 얼굴만 동동 수 있었다. 번들거리는 기름기를 잡아주는 것, 나이 많은 남자 의원에게 화장은 그 정도면 되었다.


"의원님 가셔야 합니다."


보좌관이 일어나 의원을 재촉했다.


"그래? 벌써?"


의원은 앞에 놓인 거울에서 좌우로 자신의 외모를 살피더니 만족한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신발은?"


의원의 말에 수행비서가 손에 든 구두를 가져와 의원 앞에 놓았다. 새것처럼 반짝이는 명품 구두 안에는 족히 봐도 5센티는 넘어 보이는 깔창이 덧대어 있었다. 김 의원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고 구두에 발을 넣자마자 비서는 주머니에서 접이식 구둣주걱을 꺼내 의원에게 건넸다.


 필립은 10년째 어깨너머 본 광경이지만 그런 주종의 관계가 여전히 불편했다.  그런 필립의 마음이 느껴졌는지 의원이 곁눈을 두며 필립에게 말했다.


"사장님도 이거 한 번 신어봐.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온 디자이너가 만든 수제화인데 돈값하더라니까."

"예, 저는 다리가 불편해서."


필립이 민망한 듯 말을 흐리자 김 의원이 눈을 내리깔아 필립의 다리를 봤다. 필립의 왼쪽 다리에는 철제 보조기구가 바지 위로 칭칭 감겨 있었다.  순간 어색한 침묵이 미용실 가득히 퍼져갔다. 영숙은 의도적이지 아닌지 드라이기를 켰다. 시끄러운 소리가 미용실의 정적을 깼다.


필립은 손에 묻은 화장품을 닦을 핑계로 세면대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불편한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다리는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바람에 김 의원의 눈에는 필립의 다리가 유난히도 도드라져 보였다.


"어쩌다 저리 된 거야?"


김 의원이 보좌관에게 고개를 돌려 묻자 보좌관은 티 나지 않게 인상을 구겼다. 당사자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을 김 의원은 거침없이 해댔다. 송보좌관은 목소리를 낮춰 필립이 듣지 않도록 김 의원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교통사고요."

"무슨 교통사고?"

"음주 운전이었대요. 스무 살짜리 애가 술 마시고 쳐서 근 1년 간을 병원에 계셨던 모양이던데."

"보는 그걸 어찌 잘 알아?"

"윤창호법. 기억 안 나세요? 그때 의원님도 같이 공동 발의하셨잖아요."

"그렇지. 그때도 나도 참 열심히 했지."

"근데 그 법 위헌 판결 나서 필립 사장 저렇게 만든 가해자는 집유(집행유예) 2년 받았어요 고작. 심지어 동종 전과가 있었는데도요."

"아 그랬나. 위헌 판결이 났나."

"그래서 당시 필립 사장님 소식 듣고 여러 의원실에서 음주운전 양형을 높이는 법안을 많이들 준비했었는데 이래저래 정치적 상황 때문에 흐지부지됐죠."

 "그래? 기억이 잘 안나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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