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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21. 2024

의회경호담당관실 경위 김진영(35)의 이야기_1





진영은 평소보다 이른 새벽 5시에 위아래 까만 정장을 꺼내 입었다. 옷장에는 블랙, 네이비 두 가지의 정장이 서 너개 걸려있었다. 매일 정장을 입는 진영에게 빳빳한 셔츠와 목을 조이는 타이, 손목과 발목에  떨어지는 밑단은 피부처럼 편안했다.


진영은 왁스로 헤어를 고정하고  '이른 새벽의 향'이라는 향수를 손목에 뿌렸다. 향수병에는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삼촌 파이팅.' 삐뚤삐뚤하게 쓴 아이 글씨다. 진영은 기분 좋게 픽하고 웃는다.

올해 아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진영은 어제 사다 놓은 아이 가방 선물을 떠올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미국 대사관에서 북한 주민 인권 협약을 위해 방문한다. 국회 규율에 따르면 VIP급 경호 사항이다.


의회경호담당관실은 아침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해 보이는 진영이지만 일할 때만큼은 무섭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185의 키, 떡 벌어진 어깨, 조막만 한 얼굴로 국회 복도를 지나가면 직원들이 한 번씩 흘끔거렸다.


"5층 이상 완료."

"화장실 체크하고 위원장실에서 동선 받아놨으니까 확인해보고."

"예."

귀에 꽂은 인이어에서 팀장의 지시가 흘러나왔다.


"진영, 너 오늘 누구랑 움직여?"


인이어에서 주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환은 4년 전 9급 국회 경위직에 합격해 같은 해에 들어온 동기였다. 동기는 남자 둘, 여자 한 명, 총 3명. 국어, 영어에 한국사, 행정법을 공부했고 체력테스트를 통과했다. 국회직은 워낙 뽑는 사람 수가 적고 경쟁률은 높아 통과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주환과 진영은 동갑에, 운동 좋아하는 성향까지 비슷해 자주 어울렸고 쉽게 가까워졌다.


"나? 박 선배."

"혼자 뺑이치겠네."

"큭. 나도 적당히할 거야."

"오늘 점심은 구내식당? 나랑 한강 가서 햄버거 먹고 공원서 농구 한 판 어때?"

"안 돼."

"왜?"

"오늘 국회에 중요한 손님 와."

"설마 너 여자 생겼냐?"

"어 여자다. 큭큭."

"야, 너 배신이야."



"경위님, 혹시 비상계단 쪽에 있는 쇼핑백 확인해 보셨어요?"


한창 주환과 대화 중인 진영에게 초조한 얼굴을 한 여자가 다가와 물었다.


"아까 없었는데?"

"확인 좀 부탁드려요. 대사관 사람들 워낙 예민해서 저희가 다 더블 체크 중이거든요."


진영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최근 대학생 단체가 반미 집회를 하면서 국회 안으로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 방문 접수실에서 의원실 허락 여부를 확인하고 신분증 수거까지 마친 상태였다. 학생들은 국방부 장관이 현안 질의로 국회에 들러 복귀하는 길을 노렸다. 그들 품에서 현수막과 구겨진 홍보물이 쏟아져 나왔다. 마침 진영이 그 곁을 지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경호과 직원 전체가 시말서를 써야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자. 진영은 필사적으로 대학생들을 막았다. 20대의 젊음은 매우 거칠었다. 30대의 진영이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었다.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방호팀이 다가와 대학생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사고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의도를 갖고 국회에 잠입한 민간인을 통제하지 못한 것은 업무적 과실이었으므로  한동안 진영과 경위들은 윗 사람들의 질책을 견뎌야 했다.

 

진영은 여자가 말한 비상계단 쪽을 살폈다. 입구가 오므라진 까만 쇼핑백이 보였다.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테러에 대한 공포심이 매우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작년 의원들 앞으로 정체불명의 가루가 배달되고 최근에는 북한이 공중으로 오물 풍선을 보내면서 국회 내 보안도 삼엄해졌다.


진영은 조심스레 쇼핑백 근처로 다가갔다.

맨 손으로 만져도 될까 진영은 잠시 주춤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10분 후면 미국 대사 접견을 위해 국회 정문에 대기해야 했다.


손을 뻗었다. 지켜보던 여자도 침을 꿀꺽 삼켰다.


"잉? 냅둬. 그게 내 거야."


갑자기 등장한 목소리에 진영이 고개를 돌렸다.


"그거 내 점심 도시락 통인데, 방문이 잠겨서 여기에 잠깐 뒀어. "


푸른 청소복을 입은 말숙이 진영을 보며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야, 너 체력 테스트 통과한 거 맞아? 신림동 학원 족보대로 야매 통과한 거 아냐?"


박 선배는 오늘도 사무실 귀퉁이에서 후배를 벽에 세워두고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약력 테스트 모두 기준점 위로 통과했습니다."


저런, 진영은 후배의 겁먹은 대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 선배는 너에게 정답을 물은 게 아니야,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답하면 되는 질문이었다고.


진영은 후배가 들어오기 전 자신이 박 선배에게 당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직장 내 괴롭힘은 위계와 보수적인 조직에서 늘 있어왔던 일이었다. 군대에서, 이전 경호업체에서 진영은 아무 이유 없이 어깨를 치고 얼차려를 시키는 선배들 밑에서 여러 번 상처를 받았다.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단순한 진리였다.


맞서지 마라. 그리고 원하는 대답과 원하는 행동을 보여줘라. 내가 옳다, 잘했다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민간인한테 밀린다고? 옛날에 선진화법이 없을 땐 말이야 우리 몸이 방패였어. 세상 좋아진 줄 알아. 그때 같으면 너 뼈도 못 추렸어.”


지겨운 레퍼토리, '라테는'이 시작되자 진영은 남은 서류 업무를 서둘러 정리했다.

조금 있으면 진영이 기다리는 '여자'가 온다.

진영은 쇼핑백과 식권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두 달만의 만남이다. 매일매일 보고 싶었지만 진영은 늘 그 마음을 사진을 보며 달랬다.

평생 곁에 두고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삼촌!!!!"


저 멀리서 그녀가 달려온다.

예쁜 꽃분홍치마에 빨간 구두, 머리는 양갈래로 묶었다.

김아진, 진영의 하나밖에 없는 조카였다.






"아진아!!!!"



아진이 진영의 넓은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아진에게서 어린아이의 포근한 살 냄새가 훅 하고 들어왔다.

진영은 그 품에서 오래도록 있고 싶었다.


"잘지냈져요?!!!"


등치 큰 남자의 혀 짧은 소리에 지나가던 국회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진영은 아랑곳 않고 좋아 죽겠다는 듯 아진의 통통한 볼을 비벼댔다.


"꺅. 삼촌 가려워!!!"

"바쁜 거 아니니? 괜히 아진이 보고싶다고 해서 오긴 왔다만."

"이렇게라도 봐야지, 안 그러면 언제 봐요. 오늘 국회 어린이 박물관도 가고, 맛있는 밥도 사주고, 구경도 시켜줄 거야."


아진의 뒤에 선 진영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다.


"그럼 삼촌, 나 오늘 분홍카 타는 거야? 삼촌이 먹는 그 은색 판에 밥도 받아먹고?"

"어~ 분홍카 타고 여기 구경하고 식판 밥은 맛없는데 그래도 먹을 거야? 아니면 삼촌이 나가서 더 맛있는 거 사줄게."

"아냐. 나 삼촌이 먹는 거 먹고 싶어. 오늘 할머니랑 시금치랑 된장국도 먹기로 약속했어!"


신이 난 아진의 표정에 진영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진영은 사람이 몰리기 전 아진과 어머니를 데리고 직원 식당에 갈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신분증을 가지고 방문증을 받은 뒤 입장했다. 입구 보안실에서 진영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경위님 가족들 방문하시나 봐요. 참관하세요?"

"아뇨. 아이가 어려서 밥 먹고 경내 구경하고 박물관이나 갈까 하고요."

"박물관 가면 꼭 기념품 받아 가세요. 우리 애도 데리고 왔었는데 좋아하더라고요."

"예. 감사합니다."

"결혼하신 줄 몰랐네."


진영은 보안실 직원의 마지막 말에 다른 말 없이 돌아섰다.

저 멀리서 진영의 쇼핑백 안을 들여다본 아진이 제자리에서 폴짝 뛰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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