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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21. 2024

국회 청소부 양말숙(70)의 이야기_2


"왜, 무슨 일 있어?"


말숙은 전화를 받자마자 묻는다.


"엄마, 지유가 유치원에서 토하고 열도 40도 라는데. 엄마가 좀 가볼 수 있어?"
"어,, 어? 나 아직 퇴근하려면 멀었는데."
"나도 애 아빠도 지금 못 가는 상황인데, 선생이 빨리 애 데리고 병원에 가봐야 할 거 같다고 해서."
"오늘 회의도 있고.. 빨리 가는 건 미리 얘기를 해야....."
"알았지? 빨리 가봐."


딸의 전화는 뚝 끊겼다. 말숙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망부석이 되어 멍하니 서있었다.


"알았죠? 어머니, 저녁에 회의 끝나고 한 번 더 둘러봐주세요."


국장은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할 말만 하고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말숙은 난감했다. 회의 때마다 빠지는 것도 한 두번이지. 동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 괴롭기만 하다.


매번 이런 식이네. 말숙은 딸은 원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해본 적 없다. 딸의 일이고, 손녀의 일이다. 평생을 딸을 위해 희생해 온 말숙이다.


 말숙은 지원실에 무료하게 앉아있는 팀장을 찾아갔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달에도 지유는 기침을 하다가 선생의 호출을 받고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러 갔었다. 그때 팀장의 표정을 떠올리며 말숙은 고개를 저었다.


젊은 팀장 앞에서 서자 말숙의 머릿속에 지난 일이 스쳤다. 삿대질, 발길질, 욕설을 하던 빌딩 청소 업체 팀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말숙  자신은 그때 그 언니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는 달라. 나한테 소리를 지르거나 삿대질이라도 하면 당장 싸대기를 날리고 그만둬 버릴 것이야!


"저기 팀장님."

"안 돼요."

"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안된다고..."

"손자인지 손녀인지 보러 가신다는 거 아니에요? 며느리나 따님이 전화하셨을 테고. 안된다고요. 여기가 무슨 보육자 양성소야 뭐야."


말숙은 그만할 말을 잃어버렸다.

팀장은 말숙이 오기 전 의원회관 담당자인 정자 언니가 손주 병원을 이유로 오후 근무는 못하겠다고 했다며 짜증을 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말숙의 마음속에 초시계가 켜졌다. 지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가 아프다.


'엄마 지유 열이 40도가 올랐어.'


딸의 말도 떠올랐다.


"팀장님 어찌 좀 안될까요."


말숙은 어느새 팀장에게 고개 숙여 조아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애가 아프다는데 안 가 볼 수도 없고요. 애 경기하거나 그러면 어째요."

"아 답답하시네. 의원님들이 어머님들 위한다고 위탁고용하던 거 무기계약직으로 계약하고 휴가까지 챙겨주는 거 그거 어머님들이 잘해서 그런 줄 알아요? 다른 데서 왜 국회 아줌마들만 잘해주냐고 누구  있어야 여기 들어올 수 있는 거냐고  하는 거, 내가 정말 억울해도 입 꾹 다물고 있는데 이러면 진짜 나도 나한테 떡고물이라도 떨어지는 아줌마 쓰지."

"미안해요 팀장님. 이번만 봐줘요 좀."

"애는 애 엄마가 키워야지 매번 친정엄마 불러재끼는 그 딸내미도 정상은 아니지."


팀장의 말에 말숙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아니 왜 엄한 남의 딸 욕을 하고 그래요."

"못 키울 거면 낳지를 말아야 해. 오늘 뭐 육아휴직 늘려주는 법 통과시켜 달라고 애엄마들 단체로 시위 왔다며? 휴직 늘려주면 뭐 해. 애를 2년 키우고 말 거야? 유치원, 초등학교 다 그거 지들 할머니 손 빌릴 거면서. 다 필요 없다니까 그래봤자 사람 굴리는 사장들만 골치 아프지."

"몰라, 자르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나 영희 언니한테 인수인계했으니까 좀 가볼게요."


말숙은 팀장의 말을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 입고 있던 압치마를 둘둘 말아 옷가지를 챙겼다.

말숙의 뒤통수에 대고 팀장은 한 참을 궁시렁댔다. 다음부터는 애 안 보는 남자들로만 뽑아야겠다는 둥, 딸보다는 아들이 있는 엄마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둥 하는 소리에 말숙은 그만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유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모습에 말숙은 팀장이 자신을 자르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역시 내 새끼 내가 보는 게 맞지. 이 참에 청소부 생활 때려칠까. 그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내가 자존심을 세웠을까. 그래도 국회인데. 나름 국회인데. 좋은 직장이긴하지. 자존심 부릴만 하지 뭐. 다들 여기 들어오려고 난리인데.


지유는 말숙이 차려 준 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말숙 자신이 키울 때 통통했던 지유가 딸에게 간 이후로 스팸 햄과 인스턴트 미역국만 먹어 살이 빠져버린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지유에게 놀잇감을 주고 TV 앞에 앉은 말숙은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모성보호법이 통과돼 맞벌이 부부의 부담이 줄고 출산율 상승이 기대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딸은 밤 10시가 되어야 퇴근했다.


말숙은 딸에게 국회 모성보호법 통과가 되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이렇게 훌륭하고 위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은근슬쩍 자랑하고 싶었다.


"딸, 오늘 국회에서 말이야..."

"지유 지금은 괜찮아?"


딸은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겉옷도 벗지 않고 소파에 벌러덩 누워서는 말숙에게 물었다.


"옷 좀 벗지 왜."

"아니, 지유 좀 괜찮냐고."

"휴... 엄마 찾다 잠들었지."

"고생했어. 나 오늘 점심도 못 먹었다?"


딸의 말에 말숙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모성보호법이 통과됐으니 너도 좀 여유가 있지 않겠냐고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국회 법안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도 넓고 길었다.


"무슨 일을 하길래 밥도 못 먹었어... 어서 식탁으로 와. 지유 먹이려고 소고기뭇국 끓인 거 좀 남았어. 오늘 밥도 새로 했고."

"입맛 없어..."

"억지로라도 먹어. 몸 상하면 다 소용없어."


딸은 식탁에 앉아 국을 몇 술 뜨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지유보다 딸의 손목이 더 가늘고 말라 보였다. 얘가 이렇게 삐쩍 골았었나, 말숙은 딸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한숨을 쉬었다.


"일 좀 줄일 수 없는 거야? 아님 일이 적은 부서에 가던가."

"그런 부서는 금방 잘려. 그리고 나 여기서 이사급까지는 진급하고 싶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엄마 나 대학까지 뒷바라지한 거 안 아까워? 대학 동기들 다 잘 나가고 같이 입사한 회사 동기들 다 팀장 달았어. 난 육아휴직 고작 몇 개월 쓴 거 때문에 밀린 거라고. 엄만 엄마 회사 그만둔 거 후회 안 해? 난 여자라서, 애 엄마라서 포기하기는 싫어."


두 살 터울의 오빠보다 딸은 매사 혼자 스스로 하는 아이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 손을 늘 필요로 했다. 딸은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하더니 6학년이 되던 해 학생 회장이 되었다.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회장 어린이의 학부모로서 신경 써야 할 일에 대해 들었다. 환경 미화, 체육 대회, 장학사 점심 대접까지. 말숙은 그날 20년 넘게 일하던 화장품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딸의 미래 커리어를 선택하기로 했다. 딸만큼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그 어떤 제약도 없는 인생을 살았으면 싶었다.


그리고 말숙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딸은 딸은 외고를 거쳐 명문대를 수석으로 입학하더니 교환학생, 장학생 선발로 이름을 날리고  최우등 졸업장을 따자마자 굴지의 대기업에 들어갔다. 결혼 전까지는 사내 선발로 해외 출장도 자주 갔다.

그런 딸에게 모성이라니 휴직이라니 딸의 인생에 한계를 짓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걸 말숙은 깨달았다.


"오늘 국회에서 법 하나가 통과됐다더라. 육아휴직 늘리고 돈도 더 준다는데 김 서방도 휴직 쓸 수 있는 거 아니니?"


그래 엄마만 부모인가, 애는 아빠가 키워도 되지. 말숙은 자신의 눈에 딸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사위가 지유를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유에게 부모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내 딸이 아니어도 된다. 내 딸은 내 딸의 인생을 살게 하자.



"6개월 늘었다며. 근데 1년 6개월 다 쓰면? 그다음은? 애가 그 안에 다 큰다는 거야 뭐야."

"하도 사람들이 애를 안 낳으니까 정치인들이 이래 저래 방안을 생각해 내는 거지."

"애 안 낳는 게 육아휴직이 짧아서야? 원인 진단이 틀렸어. 3년이고 4년이고 계속 늘려보라 그래. 그래봤자 애 낳을 사람은 낳고, 안 낳을 사람은 안 낳아. 엄마 지유 하나 키우는 데 드는 내 시간, 그리고 돈. 상상 못 할걸. 너무 바빠, 너무 치열하고, 복잡하고, 빨라. 아이는 천천히 키워야 하고 단순히 키워야 하고 넓고 먼 시야를 갖고 키워야 하는데 한국은 그럴 시간을 안 줘. 지쳐 너무."


말숙은 딸의 하소연에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20년 다닌 화장품 회사도 그만뒀는데 그깟 청소일이 대수야. 희생하는 건 나 하나로 족하지. 내 딸은 안 돼. 혹시 누가 알아. 내 딸이 성공해서 제대로 된 법 만드는 국회의원이 될지.  국가가 아이를 키워주는 법, 엄마가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지 않도록 도와주는 법. 그런 법 만드는 국회의원이 됐으면 좋겠네.

 근데 지유가 엄마가 되기 전에 내 딸이 친정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만들어져야 할 텐데 큰일이네 큰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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