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워커 수선도 해주십니까.” “아, 예. 뭐든.. 하죠.” “오래 이것만 신어서 그런가 바닥이 닳아 미끄러워서요. 밑에 안 미끄러지는 고무 같은 거를 좀 달 수 있을까요.”
남자가 간이 의자에 앉아 신던 워커를 벗어 건넸다. 중섭은 고개도 들지 않고 남자의 워커를 받아 들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워커에서 역한 발냄새와 땀내가 코를 찔렀다. 중섭은 애써 표정 변화 없이 그의 신발 바닥을 살폈다. 남자의 말대로 신발 바닥은 몽땅 닳아 있었다. 자칫 비 오는 날 물이라도 밟는다면 미끄러져머리든허리든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전체를 다 붙이면 보행에 불편할 수가 있어요. 뒷 굽이랑 앞에 고무 달아드릴게. 좀 나을 거예요.” “예, 감사합니다.”
허둥지둥하던 중섭이 다시 제정신을 차린 건 구두의 힘이다. 구두 수선만 30년. 꿈결에서도 구두를 만지는 것이 좋은 중섭이었다.
중섭은 끙하고 일어나 도구함을 열어 워커에 달만한 고무를 꺼냈다. 머릿속에는 이미 워커 수선을 끝냈다. 7분이면 끝나는 간단한 작업이다.
중섭이 자리에 앉으려는 데 따뜻한 볕이 남자의 머리 위로 내려앉은 것이 보였다. 하얗게 새어버린 남자의 머리가 빛을 받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연세도 있으신데 운동화 같은 거 가벼운 거 신으시지 워커는 무겁잖아요. 무릎이랑 발목에 무리가 갑니다 이런 거 신으시면.” “발이 시려서요. 하루종일 밖에 있으니 발이 시려서.”
중섭은 뉴스에서 이태원 희생자 가족이 분향소를 밤새 지키고 있다는 앵커의 멘트를 떠올렸다.하지만 중섭은 그렇다고 남자를 위로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국회에 있으면 억울한 죽음 때문에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익숙해지지 않는 장면이다. 우는 유족과 이를 막아서는 국회 직원들. 야속하지만 야속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중섭은 인명은 천명이라 믿는 쪽이었다.
하지만 나의 일이라면? 만약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 억울하게 죽기라도 한다면? 잘못된 법, 악용된 법 때문에 딸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라면?
나라도 국회를 찾겠지. 중섭은 생각했다.
그러나 중섭은 알고 있다. 선한 마음은 이용을 당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늘 타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마련이다. 국회에 온 사람들은 늘 상처를 받고 돌아간다. 나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애써주는 공권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섭은 앞에 앉은 남자도 비슷한 처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단체는 보조금을 위해,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이름 알리기와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해 타인의 눈물을 이용했다. 그도 혹시 위태롭게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을까. 포기하기에는, 잡은 손을 뿌리치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벼랑 끝인 상황.
중섭은 워커 바닥에 바른 본드가 다 마르자 고무바닥을 붙이고 바닥 모양대로 칼을 대고 쓱 쓱 모양을 만들어 잘랐다. 중섭의 손놀림은 빨랐고 빈틈이 없었다. 고무를 붙인 후 워커를 바닥에 두어 번 탁탁 내려쳐 본드가 잘 붙었는지 확인했다. 바닥을 들어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워커 주인에게 넘겨주려는데 간이 목욕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중섭은 구둣방의 낡은 슬리퍼 안에 당장이라도 양말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워커 주인의 발가락을 바라봤다. 얼마나 큰 추위를 견뎌온 것인지 끝이 파랗게 변해있었다.
중섭은 서랍에서 구두 밑창 스펀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워커 발 안에 붙였다. 이렇게 하면 신발 주인은 지금보다는 덜 춥게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이다.
중섭은 워커의 흙을 털어 남자 앞에 내밀었다.
여전히 남자는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중섭은 켜져 있던 TV의 볼륨을 줄이고 가만히 앉아 잔업을 했다. 소리가 나는 작업은 뒤로 미루도최대한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걸 했다. 나중에는 그 마저도 없어지자 남은 구두의 광을 내고 또 내었다.
이때 중섭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매 같은 시간마다 전화를 하는 딸아이였다. 중섭은 몸을 돌려 조용히 딸의 전화를 받았다.
"진지 드셨어?"
밥을 먹었냐는 간단한 질문을 딸은 매일 했다. 작년 겨울 중섭은 구둣방 안에서 쓰러졌다. 손님이 올 때까지 구석에 방치되었다던 말에 딸은 세상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죽을 뻔했잖아!!! 담에 또 그러면 나도 같이 죽어버릴 거야!!"
중섭 홀로 키워 온 딸이었다. 남자아이처럼 행동이 거칠고 말이 건 딸아이를 보며 중섭은 엄마 없이 키운 자신 때문인 거 같아 스스로를 책망했다.
밥 먹었어? 어. 뭐 먹었어? 1층 식당. 메뉴 뭔데? 생선가스랑 콩나물국. 돈 많은 국회에서 돈가스나 해주지 무슨 생선이야. 국회가 무슨 돈이 많아. 돈 4천 원에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지. 맛은 있었수? 맛있지. 그럼 됐네. 오늘도 아프지 마. 안 아파 아빠 건강해. 내가 그랬지? 아빠 생각하지 말고 나 생각하라고. 나 아빠 병수발 못해. 그러니까 아프면 안 돼.
딸의 말에 중섭은 픽하고 웃었다.
통화를 끝내고 다시 몸을 돌리는데 워커주인이 방긋 웃고 있었다.
"시끄러웠죠? 나가 받는다는 게, 조금이라도 늦게 받으면 딸이 화를 내서."
"아뇨 부럽습니다."
"아.. 예."
중섭은 괜히 딸 얘기를 했나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 말 대신 워커를 내밀었다. 남자는 슬리퍼를 벗고 워커를 신고서는 자리에 일어났다. 발을 넣고 쿵쿵 앞뒤로 찍어 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편안하고 좋네요.” "다행입니다." “밑창만 붙인 건데도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요. 사장님 기술자시다.”
피로감으로 눈에 핏줄이 선 남자의 눈가가 풀리며 다정함이 묻어 나왔다. 중섭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두운 분위기를 풀고 싶었다.
"미끄러지시면 큰일 나죠. 죽을 뻔하신 거 제가 살려드린 겁니다."
죽음? 죽음. 중섭은 순간 자책했다. 지금 저 남자 앞에서 죽음을 얘기한 거야? 감히?
중섭은 남자가 갑자기 자신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거나 삿대질을 하거나 얼굴에 주먹을 날리더라도 죄인처럼 가만히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적이 흐르는 약 3초 간의 시간 동안 중섭은 눈을 꼭 감았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은 물 먹은 스펀지 같아서 작은 충격에도 우르르 물을 쏟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남자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눈가는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어제도 제가 국회를 왔었는데요, 집에 가기가 싫더라고요. 나가는 길에 도서관이 있길래 들어갔지요. 널따란 로비에 앉아 있는데 책장에 꽂힌 책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래요 제목이. 보니까. 이어령이라는 아주 유명한 교수님, 작가님인가 장관도 하셨다던데. 무튼 그분이 쓴 책이었어요. 앉아서 책을 보면서 울다가 웃다가 한 참을 그렇게 있었어요. 거기에 그런 글이 있었어요. 죽음은 다른 세계의 삶이다. 모든 삶은 처음부터 죽음 한가운데 있다. 죽음은 사라졌던 게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뿐이다. 주머니 속에 달그락거리는 유리그릇 같은 거다...."
"..."
"제가 딸아이 그렇게 되고 나서 죽는다, 죽음 이런 글자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어요. 근데 그 걸 보고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언젠간 나도 죽고 사장님도 죽고 우리 집 사람도 죽을 거잖아요. 단지 누가 먼저 죽느냐 뿐이지. 왜 딸이 먼저 죽었는지 그건 참 억울하고 아프지만 이유를 누가 알겠어요. 이유도 모르는데 곱씹으면 뭘 하겠어요. 근데요 여전히 억울하고 아프거든요. 근데 또 그런 식으로 우리 딸을 떠올리면 그것 또한 너무 억울하고 아프니까요 주머니 유리구슬이라 생각하려고요. 삼키지 말고 보고 싶을 때마다 달그락 달그락 만져보고 꺼내보고 그러고 살려고요. 안 볼 때는 내 주머니에 있다 깨질 거 같은 유리가 있다 괜찮다 여기면서요."
'아프다고 생각하면 계속 아플 거 같잖아요. 아니에요. 아픈데 안 아픈 척하면 나중에 더 아파지는 거예요. 아프면 힘들면 아 내가 좀 아프구나 힘들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뇌도 심장도 온몸의 장기가 이겨내려고 노력을 해요.'
중섭은 아내가 떠났을 때 스스로 세상을 등질 생각을 했다.
딸아이를 안고 뛰어내릴지 가스라도 들이마셔야 할지 인터넷으로 죽는 방법도 찾아보았다.
그러다 주민센터에 아내의 사망신고를 하러 갔는데, 창구에 앉은 직원이 중섭의 표정을 읽고 무료 심리 상담을 추천해 줬다. 상담가는 중섭에게 말해주었다. 슬퍼하라고 충분히 슬퍼하라고. 10여 년 전의 그 말을 중섭은 떠올렸다.
"국회에 또 오시면 들러주세요. 그땐 워커 말고 다른 거 신고 오시면 또 고쳐드릴게."
"그러죠. 그땐 무거운 워커 말고 가벼운 운동화 신고 올게요."
"아, 운동화는 내가 해줄 게 없는데."
"저랑 차 한잔 하시죠. 딸 얘기 좀 해주세요. 아주 씩씩한 친구인 거 같던데. 딸바보끼리는 딸 자랑하면서 친해지는 거잖아요. 나 사장님한테 우리 딸 자랑할 거 많거든."
남자의 말에 중섭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우리 딸은 대장부요, 학생 회장을 도맡아 하니 나중에 정치할 거 같기도 하고요. 아니지 이건 자랑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