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욱신거리는 무릎 때문에 약을 먹고 바르느라 지체했더니 예정된 출근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국회에 도착한 탓이다. 원래대로라면 8시에 2층을 먼저 둘러 구두를 수거하고 3층, 4층, 5층 순으로 차례로 올라가면 됐다. 하지만 벌써 시간은 8시 하고도 20분이 훌쩍 넘어가있었다.
9시가 되면 2층은 국회의원, 보좌진, 기자들로 북쩍일 터였다. 모든 정당이 그 시간에 아침 회의를 시작했다. 국회 분위기는 엄중했다. 모두가 날카로웠다. 아침 회의는 늘 예민하고 까다로운 주제를 다루고 정치인들의 말에 따라 그날의 혹은 그 달, 그 해의 나라 정책이 흔들리기때문이라고 중섭은 생각했다.
"사장님 오늘 일찍 도시네요." "일찍이 아니여. 여기가 첫 타임이야. 2층 놓쳤어." "저런, 그럼 2층은 오후에나 내려가세요." "왜?" "오늘 오전 내내 사람들 진을 치고 있을 거예요." “뭔 일 있어?” “이태원서 사고 있었잖아요. 그 부모들 오기로 했어요. 저번에 왔을 때 내부 질서 유지 때문에 보초 섰는데 눈물이 나서 혼났네요. 어휴 애들도 안타깝고 부모들도 안타깝고, 그걸 다 법으로 못해주는 의원들 마음도 이해가 가고."
중섭은 국회 경위 진영의 말에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22년 10월 29일. 늦은 밤 평소 즐겨보던 시사 탐사 프로그램을 보다 얼핏 잠이 들었다. 소란스러운 TV 소리에 잠이깬 중섭은 화면서에 속보란 글자 아래 압사사고, 심정지, 응급실행이라는 글자를 마주하고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모든 화면이 긴급, 속보로 바뀌면서 앰뷸런스 불빛이 번쩍이는 이태원 거리를 카메라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압사, 참사, 사망. 사망자와 부상자는 계속 늘어났다.
59명이던 사망자가 3자리가 되는 순간 중섭은 그만 TV를 끄고 말았다. 새벽 3시경이었다.
진영의 말을 떠올리며 중섭은 2층을 빼고 한 바퀴를 돈 후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구둣방이 있는 6층으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백열등 하나로 의지해 온 구둣방 안이 어둡게만 느껴졌다. 좁은 공간 안에 가득 찬 왁스 냄새도 독하게 느껴졌다. 중섭은 창문을 열고 블라인드를 올렸다. 하지만 구둣방으로 들어오는 볕은 많지 않았다.
구둣방은 종일 한산했다. 수선이나 광내기를 원하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중섭은 폰에서 날씨를 확인했다. 역시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사람들은 비가 올 것을 알면 세차를 하거나 구두를 닦지 않는다는 것을 중섭은 너무도 잘 알았다.
하이힐의 굽 수선을 끝으로 중섭은 무료해졌다. 오늘은 특별히 한 번 더 5층을 돌았지만 수거한 구두는 총 6켤레뿐이었다. 중섭은 이대로 6층에 가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침에 돌지 못한 2층을 한 번 돌아볼 생각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라고 적힌 보라색 조끼, 점퍼를 입은 사람들 열댓 명이 닫힌 회의실 문 앞에 모여있었다. 중섭은 조용히 카트를 밀었다. 그날따라 구두와 수선 도구가 달린 통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중섭은 구두 몇 개를 더 닦아 보겠다며 2층을 내려온 자신의 판단을 후회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의원인 듯한 사람들이 나오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동시에 유족들과 얽히며 순간 회의장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유족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공간에 가득 찼다. 중섭은 재빨리 카트를 밀었다.
우당탕.
카트의 바퀴 하나가 빠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중섭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우당탕
중섭은 아침에 자신이 저지른 말썽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복잡한 마음 때문인지 손은 계속 헛돌았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진흙 묻은 구두가 짜증이 났다.
"성격이 얼마나 급하면 구두를 이리 험하게 신나."
혼잣말에 화를 내는 중섭 앞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구두 주인을 탓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필 중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구둣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중섭은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구두를 떨어뜨리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