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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21. 2024

국회 식당 조리사 강영림(65)의 이야기_1




사골 왕만두 떡국, 해물파전과 김치전, 오징어브로콜리숙회, 한식잡채, 명엽채볶음, 현미잡곡밥, 배추김치.


영림은 재료를 각 반찬에 맞는 재료를 분류하면서 손에 든 종이에 체크했다. 옆에는 막내가 영림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당번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식자재 검수를 가장 먼저 해야 해. 그다음에 전처리실로 옮기는 거지. 그때쯤이면 조리실 사람들이 오기 시작할 거야. 그럼 소독고에서 식판을 옮겨. 수저통 하고 다 같이 배식차에 넣으면 돼. 다음은 고기랑 김치. 보통 냉장고에 저장해 두거든? 조리실로 옮겨. 반찬은 우리들이 하니까 자기는 오늘 밥을 해보자. 10킬로씩 나눠서 압력솥에 부으면 돼."

"넵."

"대답은 잘해. 수량은 다 맞게 주문했겠지? 저번처럼 단순히 반찬 개수로 대충 짐작해 주문 넣으면 안 돼."

"예!! 완전 완벽히 주문했습니다."


영림은 막내의 기운찬 목소리에 살짝 웃어 보였다. 막내는

지난주 영양사의 지시를 잘 못 이해해고 당근 주문에 실수를 저질렀다. 이 일로 조리실 선배들에게 갖은 구박과 나무람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이 일이 좋다는 막내는 여전히 헤헤 웃으며 인사했고 씩씩했다. 영림은 막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자, 자 재료 분류 좀 해볼까."


영림의 말에 막내가 빠르게 움직였다.

튀김가루, 파, 오징어, 양파가 있다.

튀김가루는 해물파전과 김치전 모두에 들어간다.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요리에 혼돈이 온다. 오징어는 숙회용, 양파는 파전과 잡채, 볶음에도 들어간다. 영림은 막내의 체크 표시 위로 빨간 줄을 그어 재차 확인했다.


"오늘 주경 언니 못 온대요."


소라가 목에 앞치마를 걸며 말을 건다.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마스크 위로 보이는 작은 눈에 피로가 서렸다. 소라는 8년 차 계약직이다. 샘이 많고 험담이 심해 영림은 그녀를 멀리하는 중이다.


"왜?"

"어깨 계속 아프다고 했잖아요 언니가. 어제 병원 갔더니 인대가 닳았대요. 인대가 끊어지는 줄만 알았지 닳는 건지는 몰랐네. 그래서 뭐 며칠 쉬어야 한다고 하던데."

"윽. 큰일이네. 언니 계속 약 먹고 버티시더니 좀 일찍 가보지. 회복은 되는 건가. 걱정이네."

"당연히 버텨야죠. 아프다고 해봐요. 팀장이 또 너만 아프냐 시전 하겠지. 다음 계약을 하네마네 할 거고. 언니랑 우리랑은 입장이 달라. 알잖아요?"


'또 저 소리.'


주경과 소라는 계약직 조리 실무사였고, 영림은 9급 후생서기보였다. 말 그대로 계약직과 정규직, 일반 노동자와 공무원의 차이다.


영림은 번듯한 서울 소재권 대학을 나와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학교 급식소에서 일한 3년 경력을 인정받아 서류, 실기, 면접까지 거쳐 들어온 것이 영림이었다.

반면 학교, 구청, 대기업 등에서 바닥 청소부터 하는 경력부터 쌓은 것이 주경과 소라다. 전체 경력은 10년이 넘는다.

이곳 국회 식당의 조리사, 조리실무사 모두 주경, 소라와 같은 처지다. 그러니 영림보다는 소라 쪽이다.


그들은 영림을 진골계급이라 칭하며 은근히 소외시켰다. 분위기 주도를 소라가 했다. 애교 많고 말 많은 소라를 나이 많은 조리사들이 좋아했다. 반면 영림은 조용했다. 묵묵히 일만 했다. 계약직들이 모여 차별 운운하며 잔업에 소극적일 때 먼저 나서 일을 했고, 잔반 처리와 재료 손질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면 영림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멀어졌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열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온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 노동 현장인 단체 급식, 조리실에서 고통과 신음을 잊게 하는 건 타인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공격이었다. 인간의 본성이었다.





출처 : 한국경제



국회에는  7개의 식당이 있다. 회의실이 많은 본관에 2개, 의원 보좌진들이 모여있는 의원회관에 3개, 외부인 출입이 가능한 도서관과 박물관에 각각 1씩이다.

이 중 3 곳은 00 푸드, ××푸드 즉,  대기업에서 직접 운영을 하고  나머지 4군데는 국회에 고용된 계약직과 정규직들로 꾸려져 운영되었다.


영림이 속해 있는 곳은 도서관 지하 식당이다.

영림이 입사할 당시에는 나름 식당 사이에서 꿀보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다 고물가로 식비 부담이 커지면서 주변 직장인들이 도서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의도에는 증권, 방송사들이 모여 있어 국회 인근 직장인들은 고소득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비싼 가격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가격 방어를 해온 여의도 식당들까지 가격을 올리자 직장인들은 국회를 찾았다. 여의도 점심의 한 끼는 2만 원 정도에 맞춰져 있었으나 국회 식당은 단 5천500원에 5첩 반상을 대접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수 백 명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어디에서 식당이 공유되는 건지 메뉴가 삼계탕이나 돈가스, 보쌈 같은 특식이 포함되면 줄은 더 길어졌다.


영림이 준비하고 다듬어야 할 재료가 늘어났다.

익히고 간을 맞추는 시간도 늘어났다.


하루는 밀려드는 사람들로 주 메뉴인 보쌈이 동이 나 버린 적이 있었다. 영림은 고개를 빼 밖을 봤다. 적게 잡아도 1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하지만 남은 고기는 최대 30인분이었다.


영림은  급하게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았다. 1초라도 빨리 움직여 기다린 사람들에게 음식이 다 떨어졌다고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닐 소재의 무거운 조리복을  온몸에 돌돌 만 영림이 물 묻은 장화를 신고 뛰어나오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영림은 대충 30명쯤 되는 줄 앞에 서 양손을 비비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음식을 못 드릴 거 같아요."

  

그러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바로 앞 영림 앞에 선 50대 중반의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밥을 못주겠다면 어쩌자는 겁니까? 여기서 저희 지금 30분 넘게 기다렸어요. 여기서 지금 다른 식당을 가란 얘기예요?"

"그럼 미리 알려주시던가 해야죠.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여기서 시간 다 버리고 밥을 어디에서 먹으란 거예요."


남자에 이어 젊은 여자도 불쾌함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됐고, 그럼 있는 거라도 줘요. 돈이라도 적게 받던지 해서 융통성을 발휘해야지 우리 보고 굶으란 거야 뭐야. 정치인들이 갑질하니까 국회 식당도 갑질하는 거야?"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건 남자가 짜증을 내자 바로 발걸음을 돌리려던 사람들이 다시 버티기 시작했다.

지금 밖에서 식당을 찾아 헤매느니 밥과 김치만이라도 먹겠다는 사람들이 여론을 주도했다.


"저희가 보쌈 고기가 다 떨어져서요. 진짜 남은 반찬만 드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그냥 줘요. 식권에서 2천 원 빼서  받던지 아예 안 받던지 하셔야 한다고. 보쌈 먹으러 왔는데 안 주면 깎아 줘야지."


영림은 곤란했다.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영림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그럼, 잠시만요."


영림은 조리실로 뛰어갔다. 우두머리 격인 덩치 큰 조리사 팀장과 운동선수 같은 근육질 조리실무사가 잔반을 옮기다 말고 영림을 쳐다봤다.

사람들이 모여 수군댈 때면 별말 없이 코웃음만 흘리던 남자들. 이들이라면 이성적으로 옳은 결정을 내려 줄지 몰라.

아니라도 따라야 한다.  영림보다 몇 해 먼저 들어온 선배들이다. 이들의 말이 곧 법이다.  


"밖에 난리예요. 남는 것만 먹고 돈을 안 내겠다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제 돈 주고 먹던지 그냥 가던지 해야지. 우리가 자선 사업해? 여기가 흥정하는 시장이야 뭐야."

"설득이 안될 거 같아요. 다들 배가 고파서인지 날카로워서..."

"아이고 배 고픈 걸 공감하셔서 그러셨져요? 강영림 씨 공무원이잖아. 법대로 해. 규칙 지키라고. 그러라고 공무원 뽑은 거 아니겠어? 아님 또 노조 끌고 와서 인권 어쩌고 해 보라고. 예전에도 그랬잖아. 무슨 법이더라. 난 어려워서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법. 규칙. 저 말은 비꼬는 말이다.


지난달 막내가 잔반통을 옮기다 손가락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막내는 병원 치료비로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감당해야 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영림이 총대를 메고 국회 사무처에 문제 제기를 했다.

당시 국회는 급식 노동자들이 튀김, 볶음 등의 조리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 돼 폐암에 걸렸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해 국가에서 배상해줘야 한다는 노조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영림은 좋은 기회라고 보았다. 그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하면 병원 치료비와 재활비가 해결될 것 같았다. 돕고 싶었다. 막내는 부모 없이 컸다고 했다. 상의할 어른도 없다고 했다. 조리실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할 거라 영림은 여겼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공무원이라는 안정적 신분을 보증 삼아 계약직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고양이가 쥐의 처지를 생각한다고도 했다. 가식을 그만 떨라고 했고, 유식한 척하지 말라고도 했다.


영림은 그만 입을 닫아버렸다.

그러는 동안 막내는 사비로 병원 치료비를 감당했다.

그리고 영림은 조리실 내 은따에서 완전한 왕따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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