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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21. 2024

국회 식당 조리사 강영림(65)의 이야기_2



막내는 손가락 재활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3일만에 출근했다.


"괜찮아?"

"가운데 손가락이 살짝 아프긴한데 참을 만해요. 당분간 보기 싫더라도 요렇게 하면서 일해야죠."


막내는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면서 클클댔다.

영림은 그런 막내가 안타까우면서도 마음이 쓰여 일하는 내내 그녀를 지켜봤다.


"점심, 같이 먹을래?"


영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영림은 매일 널따란 식탁의 가장 끝에 앉아 마치 혼밥을 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여 점심을 떼웠다. 모두가 둘러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틈에 영림이 낄 자리는 없었다. 막내는 선배들 앞에서 장단을 맞추고 추임새를 하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런 막내라면 자신과도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던 영림이다.


"아... 오늘 비빔밥을 먹기로 해서."


막내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비빔밥은 며칠 간 남은 잔반들을 양푼에 모아 조리실 식구들끼리 비벼 먹는 것이었다. 조리실에는 이를 성찬이라고 불렀다. 잔반 나물은 모으면 못해도 10가지가 넘었다. 맛도 좋았다. 막내에게는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을 것이다.


"아.. 그래. 그럼 다음에 먹자."

"네, 언니."


영림 얼굴의 세 배만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과 된장찌개, 나물들이 수북히 담겼다.


"어디 막내가 비벼봐."


팀장의 지시에 막내가 벌떡 일어나 자기 얼굴만한 주걱을 들었다.


"내가 가르쳐줬지?"


팀장과 나머지 조리사들이 팔짱을 낀 채 흥미롭게 지켜봤다.


"아니지, 아니지. 한 손으론 위를 잡고 한 손으론 밑 쪽을 잡고, 찌르고 푸고, 찌르고 푸고, 그리고 엎어줘야 지. 그래야 골고루 섞인다고 얘기했는데."

"죄송합니다."


막내가 주걱에 온 몸을 실어 노 젓듯 비빔밥을 제조하는 동안 영림은 막내의 삐져나온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붕대를 칭칭 감은 손가락은 불편한 위치에 불편한 상태로 주걱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주걱이 스치기라도 하면 손가락은 욕을 하는 것처럼 화들짝 놀라 튀어올랐다.


"이야 맛있겠다."


사람들이 숟가락을 들고 양푼 주변으로 모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림은 그 주변에서 식기 정리를 했다. 영림은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 사이에 섞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림을 향해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손짓도, 눈짓도 없었다.

모두가 영림을 등져 섰다. 하지만 영림은 알았다.

그들은 뒤통수로 말하고 있었다.


넌 안돼.






"언니."


막내가 내민 건 접시에 담긴 비빔밥이었다.


"아깐 죄송했어요."

"뭘. 나라도 그랬을거야."

"식사 안하셨죠? 이거 좀 드세요."


영림이 막내가 내민 비빔밥을 내려다봤다. 배는 고팠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 오후 작업은 힘에 부칠 것이 뻔했다. 현기증이 올 수도 있었다.


"됐어. 내가 거지도 아니고."


영림의 말에 막내의 볼이 발개졌다. 영림은 아차 싶었다. 그렇다고 벌겋게 뭉쳐있는 밥 덩어리를, 대놓고 상처를 주는 타인의 얕은 동정심을 받을 마음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말이 좀 그랬지? 근데 먹기 좀 그래. 나중에 다른 거 먹을게."

"그럼 언니 이거 먹어요."


막내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주먹밥이었다.


"내가 점심 때 먹으려고 만들어 온 건데. 이건 먹을거죠?"


영림은 막내가 건넨 주먹밥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바로 입에 넣었다.


"맛있네. 요리 좋아한더더니 솜씨가 있어. 계속 여기서 일할 거야? 적성에는 맞아?"

"언니, 저 언니처럼 국회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어요. 조리사로요."

"안 힘들어?"

"힘들지만 국회잖아요."


막내는 국회라는 단어에 힘을 줘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희 엄마가 시장에서 국수집을 하셨거든요. 도박에 빠져서 집 나간 아빠는 언제 어디에서 죽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제가 7살이 될 때였을 거예요. 엄마는 우리 낳고 계속 가정주부셨으니까 기술도 없고 돈도 없고, 그래서 마을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부자 동네에 가정부로 나갔어요. 새벽에 나가 저녁 즈음에나 돌아오셨는데 어느 날엔가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고 오니까 배가 너무 고픈 거예요. 평소 같으면 엄마가 아침에 차려놓은 밥에 물을 말아 먹었을 텐데 그걸로도 허기가 가시질 않았어요. 그래서 라면을 끓였죠. 동생이랑 밥상에 올려누고 먹으려고 냄비를 들고 가는데, 장난감 하나를 밟았어요. 넘어졌죠. 하필 동생 다리 위로 냄비가 떨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서운데, 아무튼 그 날 엄마가 울면서 집에 들어왔던 생각이 나요. 그리고 엄마 신발도요. 엄마가 그날 놀라서 그랬는지 주인 집 아주머니 슬리퍼를 신고 오셨더라구요. 근데 그게 슬프기보다 웃긴 거예요. 그 슬리퍼가 진주가 박힌 되게 비싸보이는 거였거든요. 무튼 그 날 이후 엄만 일을 그만 뒀어요.  저랑 동생을 더이상 혼자 두지 않겠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시작한 게 국수집이에요. 시장 귀퉁이에서 작은 부르스타를 켜서 국수를 삶고 멸치를 우려 말아서 상인들한테 팔았는데 인기가 정말 좋았어요. 학교 갔다가 엄마를 도와주러 시장을 가면, 상인들이 저를 보고 어이 국수집 딸내미 하고 알아볼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입소문을 타고 상인 말고 동네 주민들도 사러 왔는데, 이게 국수가 시간이 지나면 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먹고 가고 싶어했어요. 처음에는 자리가 없으니 서서 먹다가 나중에는 사람들이 알아서 자리를 만들더라구요? 어디에서인지 의자랑 테이블을 구해와서 자기네들끼리 모여 앉아 막 먹어요. 그런 자리가 나중에는 엄청 넓어졌어요. 처음에는 상인들이 엄마를 질투하고 싫어했는데, 나중에는 국수집 떄문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른 것들도 막 사니까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자리도 막 내주구요. 근데, 참 역시 가난할 팔자는 바뀌지 않나봐요. 그렇게 몇 년 풍족하게 지내나 싶었는데 어느 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 줄 아세요? 천장이 무너졌어요. 시장 노상에 무슨 천장이냐구요? 천장이 없어서 천장이 무너진 거예요.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엄마 가게를 덮쳤어요. 구청에서 상인들 위한다고 쉼터인가 뭔가 가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거기서 자재 하나가 떨어진거죠. 마른 하늘의 날벼락.  그 표현이 떠올랐어요. 가게는 쑥대밭이 됐고, 엄마는 머리를 다치셔서 1년 정도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이후로 전 지붕 없는 데서 밥을 먹거나 앉지 않아요. 사실 엄마가 그 때 건물 안에라도 있었으면, 천장이라도 있는 데라면 살았을 거 같거든요. 국회 보세요! 폭탄이 떨어져도 국회는 안 무너 질 거 같지 않아요? 곳곳에 경위 아저씨들도 보초를 서구요. 요즘 급발진하는 차 때문에 멀쩡한 가게에 있다가도 차에 깔리는 세상인데 국회는 아니잖아요. 차가 들어오길 하겠어요, 탱크가 오겠어요. 평생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니까."








하지만 해가 거듭될 수록 씩씩했던 막내의 안색은 조금씩 변해갔다.

막내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양쪽 볼의 복숭아 빛 홍조가 가장 먼저 옅어졌다.

그리고 이내 반짝이던 낯빛은 납빛이 되었다.


재료 손질, 조리, 배식, 그리고 치우고 설거지와 청소하는 것 모두가 막내의 업무 범위였다.

모두가 했다. 막내 혼자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막내는 모두와 보조를 맞춰야했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 넣고, 빈 공간이 있으면 메꾸는 것, 막내는 소위 '돌려막는' 깍두기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제일 힘들어 했던 것은 청소와 빨래였다.

앞치마와 토시, 위생모를 빨고 장비를 세척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겁고 두꺼워 물을 머금으면 그 무게는 천근만근이었다.

세척용, 반찬용, 전처리용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모두 달라 조리사들이 쓴 것을 모두 수거하면 커다란 빨래통이 가득 찼다. 반찬 등이 묻은 앞치마는 세탁기로는 세탁이 잘 되지 않아 솔로 박박 밀어 닦아주어야 했다.


세척과 청소도 문제였다.

뜨거운 물에 담겨진 식판들을 떼어내 수세미로 박박 닦고나면 조리 과정에서 쓰인 바트와 집기들, 카트가 남았다. 온 몸을 실어 솔질을 하고 난 다음의 중노동이었다. 몸 전체가 부들거릴 정도로 막내는 애를 썼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고 바닥 하수구 뚜껑에 끼인 음식물을 청소하는 것 또한 막내가 해야할 일이었다.


"주경 언니 또 오늘 결석이네."

"그럼 오늘 누가 대신해?"

"막내가 2인분 해야지 뭐."


조리 실무사들의 장난끼 어린 목소리에 막내가 움찔했다.


튀김 2000인분, 소스 2000인분, 샐러드 2000인분의 밑작업이 시작됐다. 재료 씻고 까고 다듬는 모든 과정에 막내는 보조자로 있었다. 그리고 바로 세척 작업이 이어졌다.


막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영림이었다.

영림은 막내에게 다가가 좀 쉬라고 여긴 내가 하겠다고 등이라도 떠밀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조차 나지 않는 날이었다. 이른 새벽 당번이었던 영림에게 조리사들은 휴가 간 영양사의 업무까지 떠맡겼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된 업무로 영림은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영림에게 막내의 걱정은 사치나 오지랖 그 어딘가에 방점이 찍히기 충분했다. 


막내는 식당 안 대걸레질을 마치고 조리실 안으로 들어왔다.

환풍용 후드를 닦아야 했다. 팀장이 지시한 일이었다. 


막내는 자신의 몸의 세 배만한 오븐 위로 올라가 네 배만한 후드를 닦기 시작했다. 후드를 닦는 세제는 성분이 독해서 몸 위로 떨어지면 앞치마와 옷을 뚫고 살갗에 상처까지 냈다. 만약 이 세제가 눈 위라도 떨어지면 어찌 되는 줄 알아? 너 바로 실명이야. 파를 다듬는 막내에게 다가가 게임을 하듯 협박과 겁박을 번갈아 했던 팀장은 막내의 동작을 눈으로 짚어내며 코웃음을 쳤다.


아주 박박 깨끗하게 닦아. 기름때라도 묻어나오면 알아서 해.


버릇처럼 알아서 하지 않으면 정강이를 발로 차버리겠다는 시늉도 했다.


그 때였다.

막내가 마지막 젖먹던 힘을 쓰며 온 몸으로 후드를 닦아내던 그 순간, 산더미만한 후드가 갑자기 좌우로 흔들렸다.


어?! 어머?!


영림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소리에 조리실 안 모두가 영림과 영림이 가리키는 쪽을 번갈아 봤다.


찰나였다.

은빛깔의 후드 부속품이 막내를 덥친 것은.

그리고 영림의 머릿 속에 국회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해 평생 일하고 싶다는 막내의 말이 스친 것도.


모두 찰나였다.





*김용균법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으로, 2018년 12월 27일 국회를 통과해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됐다. 법안은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운송설비 점검을 하다가 사고로 숨지는 비극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면서 '김용균법'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학교 급식소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지만 2017년 2월 고용노동부가 학교 급식소에 '기관구내식당업'을 적용해야 한다고 해석해 포함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용균법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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