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면 득도한 줄 아시나요
사소한 편견들에 숨 막힙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드라마 제작사에 들어가 일본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추천만으로 된 건 아니고,
대표 면접, 감수를 맡아주실 작가님이 내 원고를 보신 후에 결정된 일이다.
감수를 맡아주신 작가님은 정성주 작가님이다.
대본을 쓰는 동안엔 턱도 없는 약간의 진행비만 받을 수 있었지만, 나 그땐
정성주 선생님이 내 원고를 읽으시고, 평을 하시고 그렇게 마주 앉아 글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길을 걷는 것 같았다.
당시 선생님은 흔히들 말하는 슬럼프를 겪고 있었고, 그가 재기하지 못할 거라는 뒷말들이 많았지만, 촌뜨기였던 내 눈엔 지성과 미모를 갖춘 여신으로 보였다.
(선생님은 그 후 세 작품을 연속으로 히트시키셨다.)
일주일 동안 쓴 원고를 메일로 보내고,
다음 날 원고에 대한 평을 들으러 선생님 댁으로 간다.
춘천에서 일산까지 달리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린다. 혼나러 가는 길이 이렇게 설레다니,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데이트하러 갈 때, 이렇게 설레었던 적이 있었나?'
어린 날, 첫사랑 빼고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선생님은 내 원고를 보고,
-그러니까 네가 얘기하고 싶은 게 A잖아.
-네
라고 대답하며,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원고는 내 미숙한 표현으로 읽는 사람에게 A''로 읽힐 거라고 가르쳐 주신다.
조언을 바탕으로 열심히 원고를 수정해 보지만, 그래도 내 원고는 A'까지 밖에 이르지 못했다.
문제를 찾아주시고, 대안을 제시해 주시는
선생님과의 회의는 즐거웠지만,
PD들과 회의할 땐, 지적, 지적, 지적뿐이었다.
회의 테이블에 다들 옷을 입고 있는데, 나 혼자 알몸으로 앉아 있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너는 왜 이리 배가 나왔냐, 또 가슴은 왜 이리 쳐졌냐.'라는 식의 얘기를 계속 듣는다면...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내가 못 썼으니까,
그런데 한 번은 대표가 이런 말을 한다.
-나, 심작가 이혼도 하고 그래서 삶의 애환을 좀 더 잘 그릴 줄 알았는데, 아직 철이 없네.
아, 내가 이혼한 거와 글 쓰는 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혼녀란 세상의 시각은 대부분 트집거리였다가,
때로는 내게 엄청난 스펙을 보유한 사람처럼 행동하길 요구했다.
가슴이 아리지만, 그런 인신공격성 발언은 자제해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발끈한다면 난, 미숙한 사람이어서 이혼한 게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