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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ul 12. 2024

떼쓰며 울던 아이가 흐느끼며 웁니다

엄마, 아빠의 이혼을 알게 된 아이

다섯 살 아이는 아직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는 걸 모른다.

아니, 이혼이 뭔지 모를 거다.

아이가 점점 자라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지는지 질문도 많아진다.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론 점점 겁이 난다.

아이가 더 자라서 엄마, 아빠가 이혼한 걸 알고,

그러려면 왜 날 낳았냐는 원망 섞인 말을 듣게 될까 봐 겁이 난다.

그 정도면 다행인데, 자신을 삶을 행여 비관하게 된다면...




'종교를 가져볼까?' 하는 고민을 깊게 하게 됐다.

종교에 대한 열린 생각으로 이곳저곳 탐색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결정은 너무 쉽게 집 앞의 교회를 다니기로 한 거였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즈음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고교 동창이 한몫했다.

그리고 나, 그때까지 종교를 접해본 게 교회밖에 없었다.

어쩌면 익숙한 곳이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고교 동창의 권유로 아이와 한 번 교회에 갔다.

"우리 앞으로 일요일마다 교회 갈까?"

집에 오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더니, 아이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훗날 물어보니, 아이는 그때 교회에서 받은 양면 색종이 때문에 교회에 가자는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ㅎㅎ)


일요일에는 아이와 하루 종일 놀아줘야 하는 게 고역이었는데, 교회에 가니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함께 점심을 먹고,

나는 성가대 연습을 하고,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뛰어놀고 하니 오히려 편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친구를 사귀고, 나는 나대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이혼했냐는 질문을 받는 건, 내가 사람을 사귈 때 들어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되어 버렸다.


"요즘 유행이잖아. 내가 좀 유행을 앞서가는 사람이거든."


무례하고 그래서 별로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는데, 교회에선 그러지 못하고 진정성 담아 나의 구질구질한 썰을 풀어놓아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혼이 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으며, 자신도 이혼하고 싶다고 내게 하소연을 해 온다.

이혼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왜 내게 하소연이란 말인가. 짜증도 났지만, 그런 것에 짜증내면 난 세상 외톨이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냥 넘겨 본다.


(그들 중에 두 사람은 몇 년이 지나서 이혼하고 만세를 불렀고, 난 요즈음 그런 상황에 지쳐 외톨이로 지낸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혼한 걸 알았다.

행여나 아이가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언젠가 알게 될 일이지만, 내가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일요일 밤, 저녁을 먹고 아이와 씻고 누웠다.

난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결혼과 이혼에 대해,

그리고 나의 이혼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아이의 권리와 한계에 대해...


엄마랑 살지, 아빠랑 살지 넌 선택할 수 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괜찮아."


라고 말하며, 아이는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아이가 이렇게 우는 걸 처음 본다.


"너 하고 싶은 대로 더 크게 울어도 돼."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아니야."


라고 대답하고도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나 이혼했어도 그동안 좋은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아이의 울음을 보며,

'참 못된 엄마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아이가 어릴 땐 몰랐던, 아빠의 빈자리는 아이가 자랄수록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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