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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ul 01. 2024

비 오는 밤, 아이가 아픕니다

아이는 돌 전후로 너무 엄마만 찾으면서 나를 난감하게 만들더니, 두 돌이 지나고선 너무 활발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집 밖에 나가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바빴고, 집 안에선 층간 소음이 염려되어 아이에게 뛰지 못하게 하다가 포기하고, 차라리 소파 위에서 뛰어다니라고 했다.

소파에서 뛰던 아이는 내가 곁으로 지나가면,


"엄마!"


하고 아주 다급한 목소리로 부른다.

반사적으로 아이를 향해 보면, 몸을 날려 점프를 한다. 아이가 다칠세라 또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아이를 안는다.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사내아이를 혼자 몸으로 놀아주기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 날들이었기에 간혹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난 그런 날이 오히려 편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아이는 보채지도 않고 약을 먹고 한숨 푹 자고 나면 그만이었으니, 병원에 가는 번거로움 정도는 오히려 견딜만한 것이었다.

아이가 내 스케줄 봐 가면서 아픈 것은 아니라서, 아픈 아이를 맡겨두고 일을 가야 하는 날이 더 많았겠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은 그렇게 아이와 편안히 낮잠을 잘 수 있었다. 비라도 내려주면 금상첨화였다. 그런 고요가 없었다.






그런데 한 번은 늦은 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한다. 소화제를 먹이고 좀 지켜보려는데, 시간이 좀 지나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다. 아이의 원인 모를 복통에 가슴이 쿵덕거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이를 둘러업고, 우산을 받쳐 들자니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먼저 차에 태우고, 떨리는 손으로 운전을 한다.

응급실로 가야 하는데, 그 와중에도 진료비를 걱정한다.

'그래봐야 장염 정도겠지.'생각하며, 작은 병원 응급실로 갔다.

우산을 받쳐 들고, 아이를 업고 진료실까지 갔는데, 소아과 전문의가 당직이 아니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그러니 큰 병이면 어쩌나 하고 겁이 덜컥 난다.

다시 우산을 받쳐 들고, 아이를 업고 차에 태우고 운전을 한다. 그러는 사이 내 몸은 비에 흠뻑 젖어 버렸다.

병원비 조금 아끼려다가 애도 고생, 나도 고생이다.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지 않은 나를 자책하며 운전을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아이를 달래다가 빗길에 사고가 날 뻔했다. 두근대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계속 운전을 했다. 이젠 빗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게 온몸이 젖어 있었다.




대학병원은 주차장부터 응급실까지의 거리가 꽤 멀다. 헉헉거리며 응급실에 겨우 닿아 접수를 하니, 의사가 온다. 다행히 아이는 비를 맞지는 않았다.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하고, 링거를 꽂았다. 아이는 링거 바늘에 놀랐는지, 좀 전처럼 크게 울지는 않는다. 다행인 걸까. 검사 결과는 특별한 게 없었다. 관장을 하고 아이에게 변을 보게 하기까지 한 시간이 흘렀다.

변을 보고 나니 아이는 멀쩡해졌다.

이제 집에 가도 된다. 의사는 맹장이 염려되는지, 혹시 돌아가서 오른쪽 배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다시 오라고 했다.

접수창구에서 67000원이란 진료비를 듣고는 한숨이 나왔다.

그냥 똥 누고 가는데......




아이를 걷게 하려는데, 신발을 안 가지고 왔다. 다시 아이를 업고 먼 주차장까지 터벅터벅 걷는다.

그래도 비가 그쳐 있었다. 아이는 아파서 축 늘어져 있을 때보단 업기 수월했다.

아이는 신발이 없어서 엄마에게 업혀야 하는 상황을 즐거워했지만, 한밤중의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막막함을 느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앞으로도 살면서 수없이 이와 같은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엄마라면 여기서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한다는 각오를 다져보지만, 세상은 각오한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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