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야 Jun 21. 2024

아이에겐 늘 죄인 같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1년 반을 쉬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여유롭게 샤워할 시간도 없을 만큼 더 바쁜 나날을 보내 놓고 쉬었다고 말한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쉬는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을 때다.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불안했다. 우선 아파트 단지 로비에 과외 광고를 게시했더니, 몇 팀의 수업이 만들어졌다. 잠깐씩은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수업을 했지만, 계속 그러는 건 무리였다. 

엄마는 이미 언니의 아이들을 둘이나 돌보고 있었다. 엄마에게 더 짐이 될 순 없다. 게다가 1년 전에 사별한 언니의 자식들은 엄마에게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지만, 이혼한 나의 자식은 딸 앞길 막는 걸림돌이란 생각이 엄마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진 않았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누가 자신을 사랑하고, 누가 자신을 싫어하는지. 앞으로 아비 없이 자랄 아이를 천덕꾸러기로 만들 순 없다.    


  



이 까칠한 아이를 맡아줄 만한 믿음직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일하는 시간이 워낙 들쭉날쭉해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무리였다. 석 달 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적절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소방관 남편에 중학생 딸이 둘 있는 집이었다. 반찬값 벌이 삼아 워킹맘의 아이를 돌봤었는데, 그 아이가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그 집에 가서 먼저 친해지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 육아의 달인인 그분은 까칠한 우리 아이를 30분 만에 자신의 품에 안기게 했다. 그 가정환경도 마음에 들었다. 육아라는 것이 아무리 능숙해도 혼자서 내내 아이를 돌보는 일은 친엄마도 지치는 일이다. 그런데 중학생 딸들과 이 교대 근무를 하는 남편이 사이사이 아이를 돌보아 주니, 아주머니는 힘들지 않게 아이를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가장 큰 숙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난 내가 바라던 계획을 하나씩 실행해 갈 수 있었다. 그다음 그렇게 염원하던 시나리오 작가교육원에 등록했다. 삶에서 사랑에 실패했다면, 일은 하고 싶은 일에서 성공을 거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최소한 잘못 산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시 난 그런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었다. 평소엔 과외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서울에 있는 시나리오 작가 교육원에 가서 공부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와 놀아주어야 하니, 돌아오는 길 내내 운전을 하며,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했다. 

춘천에 돌아오면, 아이를 데리고 와서 씻기고 놀아주다가 아이가 잠들면 생각이 날아갈 새라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렇게 석 달을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일요일에 친구들과 남이섬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세 친구와 함께였는데, 모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처지였다.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해 아이를 내려놓으니, 아이는 이리저리 막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막 18개월에 접어들었다. 아이가 뛰는 걸 처음 보는데 어찌나 씩씩하게 뛰는지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으면서도 마냥 신기하고 기특해 기분이 산뜻해졌다. 

다음 날,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아이가 뛰어다닌 지 꽤 됐다고 하신다. 주로 활동하는 낮 시간에는 아주머니와 함께 있고, 나와는 주로 밤에 씻고 자고 하는 게 전부였으니,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뿌듯하면서도 착잡했다. 잘살고 있는 건지 불안했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다 챙겨보지 못한다는 것. 이건 나뿐 아니라 모든 워킹맘의 딜레마일 것이다.      




그러다가 나를 더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생겼다. 아이 아빠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아이를 보러 왔다.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아빠와 아이의 면접에 난 늘 보조처럼 따라다녀야 했다. 같이 밥을 먹고, 마트에 들러 장난감을 사고, 집으로 와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 시간이 내키지 않았지만, 부자 사이를 생으로 갈라놓을 수도 없으니,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돌아다닐 때는 아마 남들에게 평범한 가족처럼 보였을 것이고, 아이도 아직 엄마, 아빠가 어떤 상황인지 모를 때였다. 

아이는 아빠가 오면 더 신나는 것 같았다. 와서 놀아주고 원하는 것들 다 사주니 싫을 리가 없었을 거다. 그러다가 아빠가 돌아갈 시간이 되면 아이는 또 쿨하게 아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곤 했는데, 한 번은 

“아빠 좋아. 아빠 좋아!”

라고 하면서 악을 쓰고 운다. 아직‘아빠, 가지 마.’라는 말을 할 줄 모를 때였다. 

이런 모습은 나와 떨어질 때만 보이던 모습이었는데, 아이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울음은 아빠가 떠나고도 한 시간 동안 더 계속됐다. 기지귀를 뗀 아이가 울다가 오줌까지 싼다. 그 모습을 보곤 나도 아이를 달래다가 지쳐 아이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해 버렸다. 

“엄마, 아빠랑 같이 사는 건 안 되니까, 네 마음대로 해.”

아이는 내 말 때문인지, 울다가 제풀에 지쳤는지 울음을 멈추었다. 

아이를 씻기고 나니,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유병을 빨다가 잠들어버렸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또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들 모두 천 번 아니 그 이상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내린 결정이었음에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내가 나를 위해 아이의 행복을 뺏고 있는 건 아닌지 자책감이 또 밀려왔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죄인 된 기분으로 살아야 할지, 그땐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채로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갔다. 

이전 02화 오직 나뿐인 너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