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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un 14. 2024

오직 나뿐인 너를

신생아의 일과는 먹고 자고 모빌을 쳐다보며 버둥거리는 게 전부였다. 아이가 우는 때는 배고플 때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 때뿐이었다. 새벽에 깨어 한 번 젖을 먹여야 하는 것 말고는 크게 힘들게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데 아이는 백일이 지나자마자 점점 까칠한 아이로 변했다.  


    



아이의 까칠함은 낯가림으로 시작됐다. 백일이 지나 사물을 구별하는 눈이 생겼는지 엄마 이외의 사람이 자기를 안으면 악을 쓰고 운다.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화장실에도 따라오고 샤워할 때도 늘 같이 있어야 했다. 세상에 누가 나를 이렇게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이에게 내가 ‘오직 하나뿐인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에 뿌듯한 마음도 들었지만, 화장실에도 따라오고, 샤워할 때도 늘 같이 있어야 하는 상황은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남편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피해자를 만나고,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면서도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

아이는 9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는 집에서 소파를 붙잡고 서는 정도이고 아직 혼자 서 있지 못했다. 잠시도 땅에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인 거다.

백화점이나 병원, 마트 같은 곳의 여자 화장실엔 아이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칸이 있다. 일을 볼 때는 잠시 아이를 내려놓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법원 화장실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다.  



         



때는 6월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아이를 업고 다니며 사건을 하나씩 해결했다. 법원 직원이 나에게 안쓰럽다는 눈길을 보낸다. 그건 그저 아무런 의도가 없는 그 순간 그의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 것일 거다. 하지만 낯선 이의 그 눈빛은 내가 이혼을 결심하는데 보탬이 됐다.

이 남자와 함께 살다가는 난 언제 또 동정의 눈길을 받아야 할지 알 수 없겠다.   





분당에서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혼자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엄마 집 근처에 집을 얻었다. 살림을 나누어 이사하는 모습이 괜히 이삿짐센터 직원들 보기에 민망했다.

이삿짐을 다 싣고, 잔금을 받고, 은행에 들렀다가 춘천으로 오는 길인데,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짐을 다 정리해 놓았다고 언제 도착하냐는 재촉 전화였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보고 있으니, 혼자 다닐 때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은행 한 곳 들렀을 뿐인데 시간이 이렇게 지체됐다. 카시트에 앉은 아이를 내려 업고, 은행일을 보고, 다시 업은 아이를 내려 카시트에 태우고 하는 동안 이삿짐은 다 정리된 것이다.      





새집에 도착해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보내자마자, 아이 분유부터 챙겨주고 아이가 기어 다닐 방바닥을 닦는다. 하루 종일 물만 마시며 쌀 한 톨 넘기지 못했다. 시간도 없고 입맛도 없었다.      

환경이 바뀌면 울고 보채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기에, 난 아이가 낯선 환경에 또 그 까칠함을 발휘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아이가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확신도 없으면서 아이에게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엄마랑 이제 둘이 사는 거라고.’ 방바닥을 닦으며 연신 일러 주었다. 아이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보채지 않았다.     


      





이혼을 고민하면서도 아이 때문에 참으며 산다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난 그 말이 자립할 능력이 없는 여자들이 아이 뒤에 숨는 비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도 잘 키우면 되는 거지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오히려 아이가 자라면서 아빠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게 더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가 점점 자라자,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이들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도 되었다. 그만큼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힘겨운 일이었는데, 세상의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사회적 편견을 이기고 싶어 더 괜찮은 척, 괜찮은 척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이제 좀 솔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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