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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un 10. 2024

프롤로그

엄마, 아직도 낯선 이름이지만

법원에 가서야 알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헤어지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는 것을. 이혼하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부부의 주소지가 달랐다.

‘아, 내가 정상적인(?) 수순을 밟고 있는 거구나. 잘하고 있는 거였어.’

스스로를 달래며 판사 앞에 앉았고, 판사의 도장을 받은 서류를 들고 바로 시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언니, 오빠와 엄마 집에 모였다. 그동안 나의 결혼 생활에 이마 저마한 애로가 있었고, 그래서 오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가능한 짧고 담담하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잘 사는 줄로만 알았던 가족들은 처음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멍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엄마가 내 말의 뜻을 이해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오빠도 당황하며 그동안 어떻게 한마디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냐고 탄식 섞인 말을 했다.

말을 했다면 뭐가 달라질까? 이혼은 연인이 헤어지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더 자질구레한 현실적인 과정들을 동반해야 한다. 그런 구질구질하고 조잡하고 추악한 과정을 가족들과 의논하며 같이 한숨 쉬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 겪는 것이 깔끔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큰 언니의 영향이 컸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한 큰 언니는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 울고불고했고, 한 사나흘 지나면 형부가 언니를 데리러 와서는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엄마 앞에 조아리고 있다가 언니를 데리고 갔다. 사나흘 큰언니의 징징거리는 소리와 어린 조카들에게 시달린 엄마는 형부를 내 딸 괴롭히는 나쁜 놈이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엄마는 점점 더 형부를 냉대하고 있었다. 평소엔 저들끼리 알콩달콩 잘 살다가 두세 달에 한 번 싸우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늘 싸우는 모습만을 보았으니까. 사람들은 대개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아니까.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난 나중에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절대 친정에 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이혼할 때까지조차도 모든 걸 감추었다.




가족들 모두 이 사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인식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이제 막 돌을 넘긴 아이가 물컵을 쏟으며 정적을 깨 주었다.

‘에이고!’하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손이 거칠게 아이의 손등을 때렸다. 귀하던 손주가 갑자기 딸의 앞길 막는 원수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외할머니의 냉대에 놀랐는지 울지도 않는다.

난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를 안고 엄마의 집을 나왔다. 아무도 나를 잡지도 못하고 어리둥절해했다. 엄마, 언니, 오빠가 돌아가면서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달 동안 혼자서 이혼을 준비하고 치러낸 후였다. 나에겐 사소한 언쟁도 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편으론 엄마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어미는 자식을 이렇게 지키는 거라고. 누구도 함부로 여기지 못하도록 엄마가 딱 버텨주어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키워야 보다 당당하게 살며 집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선택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고.      





보름이 지나서야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내 생각을 얼마쯤은 알아차렸는지,


“아이고, 은우야.”


아이를 귀하게 대하며  안았다.

아이가 잠든 사이에 엄마는


“여자가 남자에게 빠지면 아이가 붙잡는 옷고름을 자르고 도망간다더라.”


이어지는 말은 잘 키울 자신이 없으면 아이를 시가에 두고 오라는 말이었다.

엄마의 말에 발끈하고 화를 냈다. 시가에 아이를 맡아 줄 만한 사람도 없었지만, 내가 뱃속에 품었다가 배 아파 가며 낳은 자식이다. 천박하게 옷고름이 왜 나오냐며 오히려 엄마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그때 겨우 내 나이 서른이었으니, 엄마의 경망스러운 걱정도 나무랄 것만은 못 되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겨우 돌을 넘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기만 한다. 이제 막 엄마라는 말을 배워 엄마만 부른다.

‘그래 엄마. 나 아직 엄마라는 이름이 낯설지만 내가 네 엄마야. 그러니 최선을 다해 널 키울 거야. 누구도 너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엄마가 널 지켜줄게.’

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아이가 나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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