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심각한 마마보이라는 이유로 이혼 위기에 처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마마보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불만은 별로 없었다. 부부는 이혼 전에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남자의 유년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청상과부가 된 미모의 피아니스트였던 엄마 주변엔 엄마의 마음을 얻으려는 남자들이 많았다고 남자는 기억한다.
‘엄마가 날 버리고 저 남자 중 하나를 따라가면 어떡하지?'
유년의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하며 늘 불안했지만,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자신이 엄마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엄마의 말을 잘 듣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상담 사례집에서 읽은 내용인데, 오래도록 잊히질 않았다.
학원도 아이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긴 했지만, 집안일이나 학원 일이나 뭐든 다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나의 삶은 늘 벅찼다.
많은 이들이 다들 그렇게 살겠지만, 학원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주변의 중소형 학원들의 성장 사례를 듣게 되는데, 주로 부부나 자매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1+1=2가 아닌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혼자서 감당하는데 한계가 있는 내 처지가 안쓰러워졌고, 그만큼 외로움도 깊어졌다. 혹시 내가 연애를 한다면, 우리 아이도 앞의 사례자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아홉 살 된 아이를 붙잡고 실없이 말을 걸어본다.
“어른들은 남자 친구, 여자 친구, 남편, 아내 이런 게 없으면 외로운 거야. 그래서 엄마도 남자 친구 있었으면 좋겠어. 혹시 그래도 엄마한테 영원한 1번은 아들이란 걸 꼭 알고 있어.”
“그래.”
너무나 명쾌한 아이의 대답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뭐가 그래?”
“남자 친구 만들라고.”
아마도 남자 친구가 저들 짝꿍 같은 걸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애를 데리고 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혼자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남자 친구는 엄마 마음대로 만들어도 되는데, 결혼할 거면 나한테 허락을 받아야 돼. 엄마가 결혼을 하면 나한텐 아빠가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 생각도 중요하지.”
난 아이의 말에 꽤나 놀랐다.
“어머, 그런 것도 알아?”
“나 2학년이야.”
앞의 말보다 나 2학년이란 아이의 말에 한참을 웃었다.
상담 속의 남자와 다르게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과신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근데 결혼은 안 했으면 좋겠어. 새아빠 생기면 좀 불편할 거 같아. 난 지금이 좋은데, 엄마는?”
“엄마도 좋지.”
“그럼, 남자 친구만 해.”
그렇게 성은을 입듯, 아이에게 연애를 허락받았다. 그런데 남자를 어디서 만나나.
내가 만나는 사람은 학생과 학부모, 교회 사람들이 전부였다.
당시 스마트폰 시대의 시작과 함께 데이트어플이란 게 막 나타난 시점이었다.
‘와, 이런 세상이 다 있었다니.'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름이 고전적이어서 마음이 끌리는 '정오의 데이트'에 회원 가입을 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어플 사용법도 다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마음에 드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프러포즈 기능을 눌러 버렸다.
그와 몇 차례 통화를 했다. 목소리도 좋고 다정하다.
일산에 살고 있는 그는 토요일에 춘천으로 오겠다고 했다.
토요일이 되었다. 보라색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난 남자는 사진보다 더 근사했다.
남자와 함께 의암호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갔다.
카페의 조명 탓인지 남자는 더 근사해 보였다. 인연을 만나면 주변에서 빛이 난다고 했던가. 남자의 얼굴 주변으로 빛이 반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남자는 자신의 연봉을 말하며, 그래도 괜찮냐고 묻는다.
남자의 연봉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뭐 상관없다고 했다.
첫 만남에 묻지도 않은 연봉을 털어놓고, 우리는 꽤 진지하면서도 로맨틱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눈앞에 날파리가 날아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날파리를 손으로 때려잡으려다가 놓쳤다.
이런 두근거리는 상황에서도 아줌마의 본성은 숨기질 못하는구나. 혼자 웃음이 나왔다.
남자는 다행히 그 상황을 못 봤지만, 혼자 웃는 게 미안해. 좀 전 상황을 말했더니, 소탈해서 좋다고 한다.
첫 만남에 너무 오래 있는 건 그렇지.
주변 공원을 거닐다가 9시쯤 그를 돌려보냈다.
나란히 공원을 걷다가 손등이 닿기라도 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날파리를 맨손으로 때려잡으려던 38세 아줌마는 낭랑 18세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와 헤어진 지 한 시간이 지나 전화가 왔다. 일산으로 가는 길은 나도 잘 안다.
지금쯤 서울에 진입해 자신에게 익숙한 외곽순환도로에 접어들었을 거다.
남자는 거의 다 왔다며, 일산과 춘천이 멀지 않다면서, 얼마든지 주말에 올 수 있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오랜만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