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을 보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분쟁과 다툼이 생기면 ‘법대로 해.’라고 외치기도 한다. 하지만 난 이번 일을 겪으면서 법 몰라도 잘 사는 사람이 있고, 법을 모르면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망신고가 접수되니, 그의 재산 내역이 문자로 들어온다. 예상했던 대로 재산은 없고 약간의 빚이 있다. 그것도 제2 금융권에서 빌려 이자가 아주 비싼 것들이다. 이것을 그냥 두게 되면 어린 아들은 7년 넘도록 얼굴도 못 보고 산 아버지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그 빚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의 빚이 상속되어 고통받는 이를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아이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상속 포기를 해야 한다. 사망일로부터 2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하니 서둘러야 했다.
상속 포기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법원 앞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나중에 해도 될 것 같은데.' 하며 필요한 서류를 한 열 개쯤 적어주며, 떼어 가지고 오라고 하며, 비용은 40만 원이라고 했다. 내가 이 서류를 다 떼고 다니려면 굳이 변호사 사무실을 왜 찾겠는가. 친구도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상속 전문 변호사 링크가 뜬다. 전화를 걸었더니, 그쪽에서 뗄 수 있는 서류와 내가 직접 떼어야 하는 서류를 구분해서 알려주고 비용은 10만 원이라고 했다. 모든 일 처리가 전화와 우편으로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채권자로부터 민사 소송장이 날아왔다. 열두 살짜리 아들을 채무자라고 적힌 소송장을 보는 것만으로 두통이 몰려왔다. 참 우스운 법이다. 아이가 어리다고 시신 양도는 안 된다면서, 채무 상속자 1순위는 아이인 거다.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상속 포기를 했는데, 왜 이런 게 날아오죠?"
채권자는 상속 포기 여부를 알 수 없으니, 채권자에게 상속 포기를 했다고 이의 신청서와 답변서를 보내야 한다고 한다. 이의 신청서 10만 원, 답변서 20만 원이라고 직원은 사무적으로 말한다.
병원 응급실에서부터 몸과 마음에 더해 돈도 부서진다.
한우 한 번 양껏 먹지 못하고 사는 내 인생에서는 다 큰돈이다.
30만 원을 주느니, 내가 하고 만다.
인터넷에서 이의 신청서와 답변서 양식을 찾아 적어 보냈다. 그리 어려운 글은 아니다. 다만 쓰는 동안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힘들었다.
대기업은 법대로 이런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겠지만, 이런 걸 받아 드는 일반인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운지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구질구질하게 써 내려갔다.
그에 대한 답변은 물론 없었다. 대신에 채무자를 제2 상속인인 생모로 바꾼다는 소장이 날아왔다. 시뻘건 인주만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 같이 사는 동안에도 나를 경찰서와 법원에 드나들게 하더니 가는 길까지 나를 이런 식으로 괴롭히는구나.
이런 법이 나만 억울하게 느껴지는가. 일련의 사건들을 뉴스에 제보했더니,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도 뭐 이런 법이 다 있냐고 같이 흥분했고, 이런 사건들을 취재 중이라고 했다.
"그쪽에서 빚을 갚으라는 전화나 폭력은 없었나요?"
'때리고 욕해야만 폭력인가요. 전 충분히 정신적인 폭력을 당했다고요.'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네."라고만 했다.
"대응을 너무 잘하셔서 이번 건은 기사화 하긴 어렵겠습니다."
"네."
뉴스도 드라마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법이 엉터리라고 공감해 주는 한 사람이 있어서 조금은 위로가 됐다.
다른 금융사에서는 5년이 지나서, 이런 민사 소송장을 보내왔고, 그것은 원금보다 이자가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다시 뒷목을 잡고 답변서를 써야 했다.
부모가 죽으면서 거액의 유산을 남겨주고 죽으면 실컷 슬퍼하다가 유산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남긴 게 빚이라면 슬퍼할 여력이 없다.
이런 법 모르고 살아도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이혼 가정이 많아지고 있는 세상에서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행여나 이런 법의 피해자가 되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
사망신고, 상속 포기, 채권자에게 보내는 답변서를 보내는 일까지, 아이의 장래에 걸림돌이 될까 봐 하는 일이었지만, 일처리 하는 내내 아이 아빠 생각이 저절로 났다.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절에 가서 천도재를 지내고 왔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바로 집 앞에 학교가 있는데, 소위 말하는 뺑뺑이로 아이는 집에서 아주 먼 학교를 배정받았다. 여느 아이들처럼 영, 수 학원에 다니며, 학원 숙제가 공부의 전부인 보통의 중학생다운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