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돌싱이 되어버린 나의 주변을 맴도는 남자들이 종종 있었다. 가끔 마음을 열고 한 발짝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돌아서면 하늘만 쳐다보고(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조덕배-)’하는 식이었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돌아보면 모두 한결같은 패턴이었다.
30대의 남자는 집 안에서 어서 결혼하라는 재촉을 받고 있었고, 그들은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해야 했다. 나와 연애가 발전했을 때 닥칠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미리 시뮬레이션하며 주저주저했다. 그런 모습을 몇 차례 반복해서 보다가 지친 나는 꺼져버리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냉담하게 관계를 정리했지만, 마음속엔 깊은 상흔을 남겼다.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회 활동 없이 주로 학생들만 가르치던 시절이었기에 데이트 어플을 사용했었는데, 그런 거 무섭지 않냐는 친구의 걱정과 달리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정도 대화를 해보고 만남으로 이어지니까 대부분은 비슷한 사람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남자에게 첫눈에 반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상대가 나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일도 없었다.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늙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40대는 사랑에 빠지기에도 애매했다.
30대의 남자들은 겉모습만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40대의 남자들은 겉모습만 봐도 어떤 일을 하는지 바로 짐작이 될 만큼 획일적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하는 일이 10년이 넘어가고 있었겠지. 그렇다면 직업적 개성을 갖추었다고 봐야 하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어느 정도 파악한 듯 보였지만,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이 달리듯 혹은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몇몇은 높은 연봉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딱 그만큼의 피로가 자신의 얼굴에 묻어 있다는 건 모르는 듯했다.
요약하자면 매력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 마흔이 넘은 남자들은 주로 이혼 새내기였다. 결혼 생활에 막 실패한 남자들은 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도, 자존감이 바닥나 있었고 아이를 직접 양육하는 경우에는 더 그랬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매너 있게 행동하면서도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게 느껴진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보인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눈빛을 느끼는 순간 로맨스는 없다.
남자는 조심스레 묻는다.
“근데 왜 이혼하셨어요?”
많이 들어본 질문이고, 아무리 조심스럽게 물어도 들을 때마다 짜증 나는 질문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하는 대답으로 나란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나 여태까지 나를 포함해서 자신이 이혼의 원인 제공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남자가 이젠 모자라 보이기까지 한다.
대부분은 서울, 경기권에서 두 시간을 달려서 춘천까지 온 남자를 마음에 안 든다고 바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밥은 먹여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춘천의 명물’ 닭갈비 집으로 안내한다.
남자는 식사 자리까지 왔으니 이제 좀 편해졌다고 느끼는지, 나를 살펴보던 눈빛은 사라지고 X와이프와의 구질구질한 사연을 한참 늘어놓는다. 지금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나 매너를 지키려고 휴머니즘을 발휘하여 남자의 얘기를 들어준다. 작가정신도 발휘하여 남자의 사연에 뭐 특별한 것이 있나 들어본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사연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남자가 돌아가는 길엔 힘내라고 남자의 등을 두들겨 주고 싶은 감정이 들기도 했다.
키가 크고 연봉도 꽤 높은(한 마디로 자신이 꽤 잘 났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자신이 여자를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게 대화 곳곳에서 드러났다. 벌써 재수 없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은 가끔 나에게 제안(?)을 해 오기도 했다.
난 당신과 사귀어 볼 마음이 있는데, 담배는 끊으면 안 되겠냐고.
이건 뭐 새로운 버전의 조건만남인가?
난 담배를 끊느니, 너를 끊는 게 쉽겠다고 대답했다. 담배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남자들 중에는 내가 돌싱인 걸 알고는 나를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자들도 있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헤벌쭉 웃는다. 그리곤 마누라 흉을 보며 외롭다고 징징거린다.
안희정 미투 사건 때, 김지은이 이혼녀라는 게 반박의 글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이혼녀는 미투 당해도 된다는 얘기란 말인가.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사회적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내가 돌싱이 된 건 그 사건보다 훨씬 앞이었으니 내가 만난 진상들은 꽤 많았다.
연암 박지원은 조선 시대 과부의 재가 금지법에 대해 ‘옳지 않은 사대부의 풍습을 이제 평민들도 앞다투어 따라 한다.’라며 비판했다.
조선 시대 처첩제가 옳지 못한 제도였지만, 그들은 최소한 처첩을 모두 먹여 살렸다. 현대 남자들은 제 가정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도 못하면서, 감히 다른 여자와 내통하는 꿈을 꾼단 말인가.
혼자 아이 키우며 살아내기도 벅찬데 뭐 이런 진상까지 겪어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럴 때면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내 삶의 울분을 담아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를 일으켰다. 내가 할 수 있는 막말과 욕을 다 쏟아부었으며, 어떨 땐 싸대기를 날리기도 했고, 어떨 땐 놈의 대갈통을 배구공이라고 여기며 스파이크를 날리기도 했다.
만약에 언젠가 기필코,
내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 작가가 되었을 때, 누군가 ‘아, 그 여자 성질 정말 더럽더라.’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는 분명 나에게 껄떡거리다가 망신을 당한 사람이다. 이 글을 읽으신 분이 훗날 나를 그렇게 욕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한 번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