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중년의 사람들이 모이면 집이나 차, 자식 자랑을 하기 마련인데, 시인과 소설가들끼리 모이면 가끔 유년의 가난이나 결핍을 얘기하며 ‘누가 누가 더 불행했나.’를 마치 경합을 벌이는 듯한 기이한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때 난 최강자다. 나를 따라올 자는 없었다.
한 소설가는 자기의 삶에 특별한 아픔이나 결핍이 없다는 것이 소설가로서 콤플렉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큰 시련이나 아픔 없이 순탄하게 살아왔고, 항상 해맑은 표정과 밝은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 듯 보였다. 처음엔 매사에 긍정적인 모습을 지닌 그녀가 보기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대체로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몇 해 전 암으로 죽은 동생 얘기를 하며 눈물을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대화가 좀 더 이어지다가 어찌하여 자살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근데, 자살은 본인이 선택한 거잖아.”
그 말은 살고 싶은데, 병에 걸려서 죽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본인이 살기 싫어서 죽은 것은 본인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내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나도 모르게 해 버릴까 봐 종종 두려움을 느끼는 나로서는, 그녀의 해맑음과 무지에 오만 정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사람이 사람에게 한순간에 반하는 경우는 있어도, 한순간에 싫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크고 작은 말과 행동들이 쌓이고 쌓였다가 본격적으로 그가 싫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명절 직후에 이혼이 늘어나는 것처럼.
남편과 형제들이 모두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안정적인 삶을 사는 건 부러운 일이지 욕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게 보통 사람들의 평균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생각이 그동안 나를 불편하게 해 왔던 것 같다. 그 후로 그녀와 만날 일을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삶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이렇게 속이 뒤틀려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그들이 내 속내를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나도 그들의 속내를 다 알 순 없었지만, 사는 집과 타고 다니는 차만 봐도, 아이들 사교육에 얼마나 공들이고 있는지만 봐도 그 이들의 형편과 나의 형편이 엄청난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한 척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지만, 속으론 왜 나만 이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비교하며 박탈감에 시달렸던 거 같다. 그러다가 지쳐 이제는 나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이들과 만남을 줄이고 싶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선택한 것도 있었다. 물리적인 거리감은 얼마간의 심리적인자유를주는 것도 같다.
아이를 낳을 때, 나 절대 나의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유복한 가정의 자녀들처럼 모든 걸 지원해 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비록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어도 엄마라면 당연히 정신적으로라도 자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부모로서 응당 지원해 줘야 할 것을 돈이 없어서 못 해주고 있다면 최소한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 한다. 부모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아들에게 든든한 엄마가 되어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늘 아이에게 엄마만 믿으라고 하며 강한 척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냥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런 내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선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한없이 기대고 싶어 했다. 그럴 수 있는 언덕이 없으니 그냥 강한 척해왔던 거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이런 나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끝도 없이 나의 운명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우울증 걸리기에 최적화된 환경과 성격이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하라는데, 지금의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힘들어서 수업하는 시간 외엔 거의 집에서 지낸다.
그러면서 무기력한 나를 끊임없이 자책한다. 이런 현상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는 상태와 같다고 한다.
어서 우울증의 감옥에서 벗어나서 더 좋은 글을 쓰는 데 매진하고 싶지만, 내가 이미 실패와 불행에 길들여져 있는 건 아닌지, 사실은 그것에 익숙해져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게 날 더 두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