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고1 때 함께 속초에 놀러 갔다. ‘가을 동화’ 촬영지를 둘러보면서 드라마 스토리를 얘기해 주었다.
“가난한 집에서 산 부잣집 딸은 억울할 만한 하네.”
아들은 이야기가 꽤 흥미로운지 가난한 집에서 살았던 인물에게 공감을 보였다.
“근데, 너네 엄마는 왜 여태 너 찾으러 안 오니?”
내가 농담 섞어 건넨 말에 아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너는 그런 생각 안 해봤니? 난 어렸을 때 그런 생각 많이 했는데. 부자인 진짜 엄마가 나 찾으러 언제 오나 하는 생각.”
“세상에 부자 엄마보다 말 통하는 엄마가 훨씬 적을 걸.”
아들은 내 뒤에서 제 팔을내 목덜미에 걸치며 이렇게 말한다.
아들의 말에 가슴이 푸근해졌다.
실제로도 아들은 점점 작고 초라한 집으로 이사하는 동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시골집에서 낮은 천장을 보고 그냥 서서도 팔을 뻗으면 닿는다고 하며, 초라한 집 상태를 가지고도 유머 거리를 만들었고, 수시로 내게 유도 기술을 걸며 장난을 쳐 온다.
이삿짐을 직접 날라야 하는 상황에서도 싫어한다거나 우울해한다거나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고맙고 대견하면서도 제 나이보다 너무 일찍 세상의 고민을 떠안는 건 바라지 않았다. 제 나이에 어울리는 고민만 하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랐다.
한참 예민할 사춘기 때에 아이들 사이에선 고가의 브랜드 점퍼가 유행하고 있었다. 아이가 사달라고 하면 사줄 생각이었지만 낭비라고 생각되어 그전에 한 번‘패션의 기본은 몸매’라고 말을 했었다. 아이는 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그 말을 자주 하면서 자신은 핏이 좋아서 아무거나 입어도 멋지다고 하며 옷을 사달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검소하고 무심한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있을 때, 내 생일이 되었다.
생일 자정이 되자마자,아들은 ‘생축’단 두 글자와 함께 10만 원을 보내 주었다.
한밤중에 감동이 몰려온다.
-앗, 엄마 생일 기억하고 있었어?
-당근이지.
-감동~~
-주말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나 이제 폰 내야 됨.
아들은 초등학생 때도 ‘엄마, 사랑해요.’나‘엄마, 낳아 주셔서 감사해요.’와 같은 오그라드는 말은 한 적이 없다. 무심한 듯하면서, 이런 식으로 감동을 준다.
“난 너 같은 츤데레가 좋더라. 여자 친구 생겨도 이렇게 할 거야?”
주말에 집에 온 아들에게 물으니, 여자 친구한테 그렇게 하면 차일 거라면서 여자 친구에겐 이벤트를 해 줄 거라고 한다. 뭔가 의문의 1패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런대로좋았다.
아들은 여학생들에게 몇 차례 고백(?)을 받은 적이 있지만, 아직 연애를 한 적은 없다.
연애는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 할 거라고 한다. 아직은 그런 친구는 없었단다.
호기심에 혹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짜 연애’라도 하다가 쉽게 깨지고 할 나이인데 아들은 그러지 않았다.
(가짜 연애란 말은 유투버 이연이 한 말이다. 참 쉽고도 정확한 표현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난 종종 내 외로움을 가누지 못하고 ‘가짜 연애’를 한 적도 있는데, 그러지 않는 아이를 보며, 최소한 내가 아들을 외롭게 만드는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 은근히 뿌듯했다.
아들은 그 동안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이자 존재였다.
그런 아들이 이제 병장이 되어 제대를 앞두고 있는데, 제대 전에 입시를 치러야 한다.
학업에 관심이 없던 고3 때와 달리, 몇 달 전부터 아들의 한숨 소리가 점점 깊어진다. 제 인생에 대해 이제 제법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늘 안쓰럽다. 그래도 이건 보통 청년의 고민이겠지? 지금은 그저 묵묵히 응원할 뿐이다.
아마도 내년엔 집을 떠나서 자신의 인생을 펼치며 살 것이다. 그러다 지치면 집에 와서 잠시 쉴 수도 있어야 할 텐데.
난 대학을 졸업하면서 집을 떠났는데, 얼마 안 되어 엄마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내가 살았던 고향집이 사라졌다. 그때부턴 객지 생활에 지쳐 집에 가도 우리 집 같은 편안함이나안락함을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시골에 고향집이 남아 있는 친구들이 무척 부럽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미안한 것이, 하도 이사를 자주 다니는 바람에 아들에겐 고향이다 싶은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없는 걸 계속 미안해 한들 뭐가 달라질까. 고향이라고 할만한 물리적인 공간은 없지만, 따뜻한 엄마 품이 있는 곳이 아들에겐 마음의 고향이 될 것이다.
아들이 언제든지 쉬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고향이 되기 위해 엄마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