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높은 조회수와 함께 구독자가 늘 때는 기쁘면서도‘아, 내 삶이 이렇게 관심받을 만큼 특별한 아픔을 지닌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고, 연재 중반 무렵에 왔을 땐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져 신경안정제를 추가해서 처방받아 먹어야 했다.
연재 후반부로 와서는 조회수가 줄어드는 게 충분히 이해되었다. 불행과 실패가 반복되는 이야기는 보는 이도 지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시련들이 반복되며 꼬일 대로 꼬여버린 성미까지 노출되니 어떤 분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후반부를 연재하면서는 몸살이 세게 와서 두 번이나 연재 날짜를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연재를 멈추지 않았던 건, 이 시점에서 나와 직면하고 되돌아보지 않으면 계속 내 삶을 원망하며 지난날에 묶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럼에도 더 추잡하고 초라한 이야기들은 차마 다 털어놓지 못했다. 창피해 서가 아니라 그때의 나와 마주하는 게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글을 쓴 의도와 다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혹시라도 내가 오해의 소지를 남겼나 글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순간 독자분은 자신의 경험 중 어느 부분에 꽂혀 글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나의 형제들을 이해하게 됐다. 아무리 진심을 담아 얘기해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냥 그런대로 놔두기로 했다.
연재를 마치며 무엇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저 이것이 내 몫의 삶이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누구를 원망해 봐야 원망하는 만큼 나만 상한다는 것.
그냥 현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이걸 깨닫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
그래도 나의 삶 어딘가에 힘들 때마다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있었고, 계속 응원을 보내오는 친구들이 있고, ‘나의 아저씨’가 될 뻔한 출판사 편집장님이나 드라마 피디님 같은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은인이며, 앞으로도 그런 분들을 또 만나게 될 거라고 믿는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 재해석되기도 한다.
현재 내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회고하면서도 한때의 추억으로 여기며 고된 시간 잘 버텨온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시간을 추억으로 여기며 다시 반추할 자신은 없다.
어느 날, 내가 (한강 작가만큼은 아니더라도) 유명해져서 내 과거사가 재조명되는 날을 위해 이 기록을 미리남겨 두는 것이라고 여기련다. 이런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끝내 좋은 소설을 써내었다고 얘기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한강 작가 얘기가 나온 김에 말을 더하자면, 그녀가 언젠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것 같았다.
그녀의 글을 보며 언감생심 질투도 느꼈지만, 그녀에게 가장 부러운 건 그런 아버지를 둔 거였다. 태생적으로 바꿀 수 없는.
그런데 요즘 화제가 된 그녀의 근황과 인터뷰를 보며, 지역 작가들 틈에서 벗어나 혼자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어이없게 그녀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하나뿐인 아들을 사랑하는 돌싱이라는 것과 머릿속에 세 개의 소설을 굴리고 있다는 것. 이 정도면 엄청난 공통점 아닌가. (여기선 그냥 웃어주세요)
이제 지난날에 대해선 훌훌 털어버리고, 머릿속에 굴리고 있는 소설들을 하나씩 펼쳐 보아야겠다.
일기장에 혼자서 썼더라면, 차마 마무리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꾸준히 응원해 주시는 독자분들이 있으셔서 힘을 내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