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lina Nov 10. 2024

[21] 동결 4차 : 최상급 배아와 처음 본 두 줄

배아야 너를 믿을게.

시험관에서 이식을 하게 되면 두 개의 성적표를 받게 된다. 첫 번째는 이식 당일 배아의 등급표고 두 번째는 피검 후 임신수치이다.


동결 3차까지 세 번의 성적표를 받았는데 한 번도 최상급 배아를 이식한 적이 없었다. 영어로는 good으로 되어있지만 중상급 배아였다.


이식준비를 마치고 시술실에 들어가니 네 번째 배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문지식이 1도 없는 내가 봐도 그간 보았던 배아들과 달리 동그랗고 투명하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께서 "배아도 내막도 아주 좋네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받은 결과지에는 Excellent라는 표시가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최상급 배아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식 1일차~4일차 : 갈색혈

오전 11시 30분경 배아를 이식하고 컨디션이 좋아 산책을 나갔는데 갈색 혈이 라이너를 할 정도로 나왔다. 굳이 따지자면 갈색보다는 검은색에 가까웠다. 바로 집에 들어와서 휴식을 취해 양은 줄었지만 피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 문의해 보니 이식 후 하루 이틀 정도는 그럴 수 있지만 나처럼 4일간 지속되는 경우는 진료를 봐야 한다며 내원하라고 하였다. 배아가 귀가 있는 건지 신기하게도 병원에 간다니까 피가 뚝 멈췄다..ㅋㅋㅋ


너도 병원은 무섭구나...?



이식 5일차~6일차 : 간헐적인 배 콕콕 증상 but 프롤루텍스를 맞고 있어요.

5일차에는 착상통이라고 느낄만한 배의 통증이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나는 프롤루텍스라는 주사를 맞고 있었다. 이 주사는 프로게스테론을 유지해 주거나 높여주는 주사인데, 기름성분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주사를 맞은 후 하루정도는 통증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게 착상통이었는지는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이식 7일차 : 처음 본 두 줄 임테기

나의 전 글들을 다 읽은 독자라면 내가 크녹산이라는 악명 높은 '멍주사'를 처방받은 사실을 알 것이다. 주사를 맞고 처음 이틀정도는 멍도 안 들고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사람들이 엄살이 심하네라고 생각했지만 3일차가 지난 후부터는 맞는 족족 피를 보고 멍이 들었다. 기본 500원짜리 동전 크기, 크게는 손가락 두 마디 이상의 사이즈로 멍이 들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멍이 가득한 내 배를 보니 문득 주사를 더 맞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5일 배양 배아의 경우 7일차에 매직아이라도 두 줄을 보지 못한다면 거의 확률이 희박하다. 그간 임테기를 잘 참아왔지만, 한 줄이라면 피검사를 당겨서 주사를 빨리 끊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퇴근길에 얼리 임테기 2개를 샀다.


같은 소변컵에 두 개의 임테기를 담그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어 두 개의 종이컵을 준비해 임테기를 적셨다. 처음 1분 정도는 반응이 없길래 '아 이렇게 적극처방을 했는데 이번에도 안 됐구나, '라는 탄식이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하나의 임테기가 먼저 연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두 번째 임테기도 선명하진 않지만 두 줄이 그어졌다.


자연임신 1년, 시험관 8개월 만에 처음 본 두 줄이었다. 

보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정신없이 우는 와중에도 누구보다 기뻐할 남편의 얼굴이 생각났다.

마침 남편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왔고 두 줄 임테기를 보여주며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식 8일차~10일차

7일차 밤부터 8일차 오전까지 또 갈색 혈이 비췄지만 양이 많지 않고 시기상 착상혈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어 병원을 따로 방문하지는 않았다.


두 줄을 봐서 그런지 배도 여기저기 콕콕 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가슴 통증이 생기면서 붓는 느낌이 들었다.






7일차 저녁부터 10일차인 오늘까지 아침, 저녁으로 임테기를 하며 진하기 비교를 하고 있다.

두 줄을 봐도 임테기 노예로 살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진다는데 그 말이 딱 맞다. 다른 사람들 테스트기와 비교하며 뚜렷하게 진해지지 않는 색이 신경 쓰인다. 내일이 11일차로 1차 피검 날인데 그래도 나는 내 배아를 응원하며 믿어보려고 한다. 배아야!! 나는 최선을 다 할 거야. 너도 조금만 힘내주겠니, 우리 꼭 세상 밖에서 만나자!

작가의 이전글 [20] 동결 4차: 이식 D-1과 공포의 크녹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