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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의 공간 Feb 27. 2023

방은 집에 딸려있는 공간일 뿐이다.

가끔씩 상상하곤 했다. 온전한 나만의 '방'이 아니라 '공간'



내 '방'이란, 과연 나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릴 때는 부모님과 나, 동생,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할머니께 방을 드리고 부모님 방을 마련하고 나면, 자연스레 나와 동생이 한 방을 썼다. 부모님은 맞벌이라서 집에 자주 없으니, 감사하게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랑 동생에게 가장 넓은 방을 주셨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장판을 깔던 집이었고 정 가운데에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자국이 남아있었다. 동생과 나는 각자 왼쪽 벽에는 내 책상, 오른쪽 벽에는 동생 책상을 붙여놓고, 선이 있으니 각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유치하게 공간을 나누기도 했다. 그 선은 서로 절대 넘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놀았다. 조금 부끄럽지만 왼쪽에 있던 나는 왼쪽나라 공주님, 오른쪽에 있던 동생은 오른쪽나라 공주님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만큼 아무리 어릴 때라도 나는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싶었던 욕구가 있던 것이었다.


"이제 엄마아빠가 큰 방 쓸 거야. 너희는 각자 방 써."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가셨고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은 방을 다시 나눴다. 동생이 할머니 방, 내가 부모님 방, 그리고 가장 큰 우리 방은 다시 부모님이 가져가셨다.


그 이후, 신축 빌라로 이사를 갔다. 아무도 쓴 적 없던 새것 그 자체였던 방을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집이 아니라 작은 방일 뿐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바깥과 안을 나누려고 했다. 밝고 깨끗한 내 방을 아늑하게 꾸미려고 알록달록한 전구도 달아보고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패브릭 포스터도 붙였다. 


그때 나는 푼돈을 버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래서 비싼 이불까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이불은 한눈에 봐도 촌스러운 진분홍색이었고 베개커버는 때 묻은 노란색이라 전혀 조화롭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밖에서 나를 괴롭히거나 거실에서 동생과 싸우더라도 언제든지 문만 열면 내 공간이 펼쳐졌다.


나는 그 안에서 수많은 울음과 웃음을 쏟아내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 방은 그저 방일뿐, 가족들과 완전히 차단된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집은 각자 방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는 방 문이 닫혀있으면 본인 영역을 본인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동물이라 문을 항상 열어뒀다. 


그때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티비 소리가 너무 소란스러워서 내 방에도 소음들이 쏟아지곤 했다. 엄마도 내가 방 문을 닫으면 노크는 예의상 하는 것일 뿐,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컥 문을 열곤 하셨다. 또 아무리 문을 닫아도 내가 이어폰을 끼지 않는 이상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완전히 차단할 수도 없었다.


내 방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훨씬 좋지만 방만으로는 철저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너무 부족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방이 아니라 '공간'에 갈증을 느꼈다.


누와 홈페이지 메인


그걸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어떻게 알았을까?


어느 순간 숙소, 여행, 나만의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여러 스테이 광고가 올라왔다. 어쩌면 그때부터 좋은 숙소에서 여행하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중 눈에 띄었던 숙소가 있었다.


바로 서촌에 위치한 '누와'였다.


누와는 최대 2인까지 스테이 가능한 한옥 독채 숙소였는데, 동그랗고 큰 창 너머 침대 위에서 책을 읽는 여자의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캡처를 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나무소재와 '혼자' 휴식을 취하라는 듯한 문구까지 내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서촌이라는 동네도 처음 들어보고 아직 친구들이랑도 여행을 많이 안 가봤는데, 혼자서 가기에는 너무나 큰 사치였다. 언젠가 혼자 여행할만한 여유가 생기면 꼭 누와에 가서 포근한 이불에 누워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버킷리스트만 세웠을 뿐이었다. 퇴근하고 나서나 심적으로 지쳤을 때 휴대폰 갤러리로 들어가서 캡처해 뒀던 누와 사진을 보곤 했다.


언젠가 저 침대 위에 내가 누워있을 장면을 상상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스크린캡처가 쌓이고 누와 사진은 계속 아래로 밀렸다. 기억 속에서도 점점 흐릿해졌다. 장장 10452장까지 늘어난 스크린 캡처 중 가장 아래에 있던 누와를 다시 끄집어낸 건 무려 4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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