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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의 공간 Mar 02. 2023

주말에도 집에만 있는 사람

핫플레이스는 좋은데 주말에는 가고 싶지 않다. 평일에 조용히 혼자 갈래.



직장인이 되면 내 시간이 없다. 


평일에는 하루종일 회사에 있고, 집에 오면 씻고 밥 먹고 자기 전까지 내게 남은 건 3시간 남짓밖에 안 된다. 심지어 회사와 집까지 거리가 먼 사람이라면 2시간 조금 될까 말까 할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어딜 가도 복작복작하고 발 디딜 틈이 없다. 주말이 되어야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한 장 겨우 건지고, 유명한 누군가가 다녀왔다던 핫한 곳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주말에 아무 데도 안 나간다. 회사를 안 가고 내 시간이 생겨서 좋지만 어딜 가도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는 차라리 평일이 낫다.


평일에도 시간이 안 되고, 주말에도 안 나가니까 핫플레이스에는 갈 수 없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으로 가면 실시간으로 내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황금 같은 연차를 쓰기로 했다. 주말을 껴서 가면 연차를 아낄 수 있지만 엄청난 내향인간에게 그 수많은 인파를 감당하기란, 힘든 일이다.




"머리 감았네? 저번주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더니 이번에는 어디 나가?"


단순히 찝찝해서 머리를 감았을 뿐인데 주말이면 어김없이 엄마로부터 저 말을 들었다. 내가 그렇게 머리를 자주 안 감나? 싶은 생각과 함께 대충 물기를 털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틀어 올렸다.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에 들어가니 자주 보던 채널들과 그와 비슷한 영상들이 추천목록에 떴다. 그중 제일 마음에 드는 썸네일을 클릭하자,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와 편집스타일을 가진 브이로그 채널이 재생되고 있었다. 브이로그 속 여자들은 모두 브런치를 만들고 예쁜 접시에 과일을 꺼내먹는데, 그중 가장 부러운 건 혼자 사는 자취방이라는 점이다. 곳곳에 본인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나도 예쁘게 꾸민 나만의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책을 읽는 상상을 하다가, 문득 누와 예약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누와 예약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 예약한다고 해도 내년에나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누와 예약 방법>


1. 매달 4일 오후 4시에 예약 사이트가 열린다.

2. 지금 날짜에서 3개월 뒤에 1달 달력이 오픈되므로, 3월 것만 예약을 할 수 있다.


휴대폰을 꺼내 달력을 보니까 12월 4일로, 오늘 당장 예약이 가능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고 예약을 할지 말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예약을 하려면 오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다음 달에 예약하는데 그럼 날짜가 많이 밀려서 한 여름에나 갈 것이다.


게다가 금액도 1박에 20만 원. 여행을 한 번도 혼자 가본 적이 없어서 혼자서 하룻밤에 20만 원을 쓴다는 게 걱정은 됐지만, 요즘 예쁜 숙소들은 금액대가 다 비쌌다. 그래서 이 부분은 그냥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합리화했다. 조식은 따로 신청해야 하고 입실은 오후 4시, 퇴실은 다음날 오전 11시였다. 그런데....


누와에서 혼자 뭐 하고 놀지?


누와가 위치한 곳은 서울 서촌. 광화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나오는 곳이었다. 한옥이 많은 조용한 동네에 통인시장이 있어서 정겨운 분위기와 고즈넉함을 느끼려고 가는 것 같았다. 예전에 유미의 세포들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전시회가 열렸던 그라운드 시소가 서촌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건물이 낮고 골목이 많았던 게, 재밌던 기억이 났다. 검색해 보니까 카페도 많았고 맛집도 꽤 있있어서 혼자 놀기에 충분히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였다. 


12월 4일 토요일 오후 4시, 바깥은 추운 겨울날 나는 원하는 날짜에 누와 예약에 성공했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으니 일부러 연차 쓰는 평일로 말이다.  그리고 이듬해 봄,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나 둘 땅바닥으로 떨어질 때쯤 날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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