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잠든 밤이 되어야만 오로지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
저녁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주로 드라마를 보는데 그때가 가족들과 가장 얘기를 많이 나누는 시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라서 편안하지만 마음이 완전하게 풀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나도 몇 마디 거들다 보면 식사는 금방 끝났지만 드라마는 점점 절정으로 다다라서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비로소 드라마가 끝나고 다음 편 예고까지 다 보고 나면 다들 각자 먹은 밥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서로 할 일을 하러 가곤 했다.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휴대폰을 보니 카톡 알람이 떠있었지만 확인하지 않고 바로 유튜브 어플로 들어갔다. 회사에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많이 떨어서 1이 생길 틈이 없었는데 퇴근하고 나면 이상하게 메신저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면서 깔깔 웃다가 방 문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엄마가 과일 씻어뒀으니 나와서 먹으라고 했다. 엄마의 손에는 꼭지를 하나하나 뗀 딸기 그릇이 들려있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11시, 닫힌 문 너머로 시끄럽던 티비 소리가 뚝 끊겼다.
아빠의 하품소리와 함께 거실 등 스위치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안방 문이 닫혔다. 밤 11시가 넘으면 엄마 아빠가 잠드는 시간이었고 한 번 문이 닫히면 두 분은 아침까지 거의 안 나오셨다. 동생과 나는 여전히 자고 있지 않았지만 둘 다 거실로 잘 안 나와서 적어도 내가 깨어있는 시간대에서는 지금이 가장 조용했다.
나는 이 시간이 되면 주로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어제 서점에서 사 온 에세이집을 읽을 예정이었다. 내가 자주 보는 브이로그 유튜버의 에세이집이었는데 책 표지도 예쁘고 유튜버가 좋아하는 카페나 공간을 소개해준다고 해서 바로 구매했다.
유튜브에서 가사 없는 플레이리스트 하나를 골라 문 밖으로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볼륨을 조절하고 책을 펼쳤다.
어두운 방 안, 스탠드 불빛이 책상만을 비췄다.
게다가 조용한 음악 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사락- 책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더 이상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이 아니었다.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을 내다봤다.
잠시 스탠드를 껐다. 모두 깜깜해서 내 방에서 저 너머 바깥까지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30분짜리 플레이리스트가 끝났는지 음악이 꺼졌고 동시에 밖에서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다른 방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가 동생에게 얼른 자라고 한 마디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곧이어 다른 방 문이 닫히고 다시 소음이 사라졌다.
불 꺼진 내 방의 윤곽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내 방에는 어릴 때부터 쭉 써왔던 침대와 작은 책상, 그리고 옷장과 화장대가 있었다.
책상 앞으로 가 스탠드를 다시 켰다. 아까 읽다가 만 에세이집에는 유튜버의 집 사진이 보였다. 커다란 침대 위에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한 이불과 그 위에 올라가 자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그 옆에는 카페에서나 볼 법한 둥근 흰색 탁자와 수수한 꽃 한 송이를 품고 있는 투명한 화병까지, 전부 현실적이지 않아서 모델하우스 같은 느낌이었다.
사진 속 유튜버의 방은 한낮에 햇살을 받아 더 반짝이는 듯했다.
책 너머로 어스름하게 보이는 내 방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좁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