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려 건물이 낮은 주택단지 사이를 지나면 저 멀리 내가 사는 빌라단지가 보였다. 제각기 생긴 것도 다르고 만들어진 시기도 달라서, 어떤 빌라는 심하게 낡은 티가 나기도 했다. 그중 적당히 낡은 빌라로 들어가 중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우리 집이 나왔다. 거기서 또 현관문을 열고 어질러진 신발 사이에 대충 내 신발을 벗어놓으면 비로소 집에 도착했다. 거실에 누워 티비를 보면서 손을 흔들고 인사하는 아빠와 주방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는 평소와 똑같았다. 그들을 지나쳐 익숙한 내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도 키지 않고 곧바로 문을 닫았다. 생생하게 들리던 거실 소리가 문 하나 때문에 막힌 탓인지 뭉개져서 들렸다.
그냥 소음이 뚝- 끊겼으면 좋겠다.
침대 위에 누워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회사와 출퇴근길에 치였던 여러 가지 일들이 소리 없는 소음이 되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출근해서 대충 오전 업무 시간을 보내고 적당히 맛있는 점심으로 다시 힘을 내고, 또 길고 긴 오후를 지나 드디어 퇴근시간이 다다르면 환희와 기쁨이 느껴졌다. 그리고 퇴근길에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팔 하나를 내밀어 휴대폰 속 작은 세상을 보는 일까지, 모든 일이 시끄러운 소음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잊고 옆으로 누워 휴대폰을 켰다.
이제야 내 시간을 보내려는 찰나, 문 밖으로 아빠가 보는 야구 경기 재방송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하이라이트 부분을 보느라 그런 것 같았다. 이럴 때마다 우리 집 패턴은 똑같았다. 시끄러운 티비 소리 때문에 엄마가 볼륨 좀 줄이라며 소리치면 얼른 조용해지다가도, 엄마가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신경을 못 쓰면, 또 금방 원래 볼륨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번에도 엄마가 한 소리 한 것 같았고, 곧 티비 볼륨이 줄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옅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에 들어가 요즘 자주 보는 영상을 재생했다. 한참 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방 문이 열리면서 어두운 방 안에 빛이 새어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빛을 등지고 서있던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말하고는 왜 이렇게 어둡냐며 불을 켜고 나갔다.
나가면서 엄마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그 틈새로 야구 해설가의 웅얼거리던 발음이 조금씩 정확하게 들렸다. 그와 동시에 식탁 위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음식 냄새가 문 안으로 들어왔다.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몸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침대에 내 옷이 붙어버린 기분이었다. 휴대폰 속 영상을 계속 보려고 이어폰 볼륨을 높였지만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선명해서 이어폰이 소용없을 것 같았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똑바로 누워 전등을 바라봤다. 너무 밝았지만 어쩐지 눈이 아니라 귀가 멀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눈을 꼭 감아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