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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왜 돈이 필요한가.

영화 '비커밍 제인'

by 이라IRA

(이 글에는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지독한 가난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다. 경제력이 없는 형제, 자매,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만 하는 사람, 당신은 이 사람과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곁에 없으면 당장 죽을 것만 같은 존재라고 해도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선뜻 그럴 수 있는가? 기아와 가난의 한 복판에 뛰어들 용기와 강단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당신, 그 용기가 그대들을 구원해 주리라 확신하는가.

사진출처 네이버TV



가난한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제인 오스틴, 훗날 없는 재산이나마 찢어서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집안의 아들들, 즉 제인의 오빠와 남동생일 뿐, 제인에게는 아무것도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누차 강조하는 그의 엄마가 씩씩거리며 딸을 노려보고 있다. 제인이 몇 분 전 그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상속자의 청혼을 제 발로 걷어차 버렸기 때문에. 영화 속 설정인지 모르겠으나 유난히도 우둔해 보이는 그 상속남에게 마음 한 톨 없었던 제인과, 딸의 인생뿐만 아니라 어쩌면 오스틴 가족 전부를 구원해 줄지도 모르는 상속남 위슬리에게 목을 매는 제인의 모친이 서로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이 장면, 개인적으로 가장 임팩트 있는 씬이었다. 엄마도 사랑으로 결혼하지 않았냐고 반문하는 제인에게

”그래서 이 망할 감자나 캐고 있잖아! (And I have to dig my own damn potatoes!)“

이 대사도 소름끼치도록 뼈 때리는데 여기에 이어지는 현자의 명언,

“Affection is desirable. But money is absolutely indispensable! (사랑은 있으면야 좋은 거지만 돈은 없어선 절대 안 되는 거야!)

이 두 대사, 웃음이 나오면서도 압권이었다. (이 영화는 각본상을 탔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은 그 안에 아무리 섬세한 유머와 위트, 풍자와 함께 선구적 페미니즘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해도 결국엔 가난한 집안의 예쁘고 야무진 자매 둘이서 거대한 재력가의 남자 둘을 꿰차는 신데렐라 엔딩이 아닌가. 물론 지금보다 약 200년 전이었던 1800년대 그 시대에 차별 받고 열등한 위치에 놓인 처지를 극복할 방법이 여성으로서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회적인 방법의 하나로써 ‘눈부신 결혼’을 쟁취하는 것도 당시 여성의 통쾌하고 야무진 인생 개척로로 평가받을지 모르겠다. ‘오만과 편견’이 온건한 페미니즘을 표현했다고 호평 받을지언정, 몰라, 난 그 결말이 그저 그랬다. 요즘 관점으로 보자면 결국엔 판타지잖아. 제인 오스틴도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실제 오스틴은 평생 독신이었고 잇따라 소설을 히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가난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마흔 조금 넘은 짧은 인생을 살았던 그는 말년엔 정체불명의 갖가지 악질적인 병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영화 속 그의 모친이 얘기했던 것처럼 유산 한 푼 없는 독신으로 남아 홀로 글을 쓰며 남아있는 언니와 엄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했다. 남자 형제들과 집을 같이 썼던 시절엔 자신의 방 하나 없이 거실이라는 오픈된 공간 한쪽에서 장편 소설들을 써 내려 갔다. 어떻게 온 가족이 시끌거리는 그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점 때문에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오스틴을 천재라고 했던 걸까? 숙모로부터 넉넉한 유산을 상속받고 안락한 저택과 자기만의 방을 소유할 수 있었던 버지니아 울프가 프라이빗한 공간도 없이 유려한 글을 썼던 제인 오스틴을 신기하고 대견하게 생각했을 법도 하다.)

사진출처 네이버TV




오스틴은 결혼하지 않은 걸 후회했는지도 모른다. 우둔하고 비호감이었던 재력가 상속남의 청혼을 거절한 자신을 탓했을지도. 그래서 어쩌면 자신의 소설 속에서 그를 잘생기고 마음도 깊은, 매력적인 남자로 둔갑시켜, 아니 환골탈태시켜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과 결혼하게 하고 거기서 마음의 보상을 받았는지도.

그러나 오스틴의 찬란한 그 소설 ‘오만과 편견’보다 그의 실제 삶을 그렸던 영화 ‘비커밍 제인’을 내가 더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 속 제인이 주장했던 것처럼 순문학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고 리얼리즘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데 제인은 현실주의자인 것처럼 굴었으면서 왜 판타지를 썼을까?)


‘비커밍 제인’은 가난 속 사랑은 불가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얘기해 주는 영화다. 영화 속 대사처럼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아이들과 굶주린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매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인생 속에서 글은 어떻게 쓸 것이며 그 안에서 무슨 사랑이 얼마나 꽃을 피울 수 있겠느냔 말이다.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무서운 가난 앞에서 사랑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행복의 기본 조건은 ‘돈’이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리얼리즘의 진수라고 해야 할까. ‘오만과 편견’보다 난 차라리 이게 좋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비커밍 제인’도 100% 리얼리즘은 아니었다는 사실.

영화에서는 제인이 고민 끝에 톰 르프로이를 떠난 스토리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고 한다. 톰은 영화에서처럼 제인을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고 그녀에게 울고 불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도 없었다. 당연히 함께 도망치는 낭만적인(?) 사건 또한 없었다. 제인은 그저 톰이 돌아오기만을 멍하니 기다리다가 그의 약혼 소식을 전해 듣고는 서서히 체념했을 뿐이었다. 현실은 원래 더 비참하고 잔인한 법이다.

영화에서 제인과 불같은 사랑에 빠졌던 톰 르프로이는 영화처럼 실제로도 가난했고 먹여 살려야 하는 많은 형제, 자매가 있었다. 부유한 명문가의 딸과 정략결혼을 한다는 조건을 지켜야만 그의 심술궂은 삼촌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던 그가 제인을 선택할 수 없었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진출처 네이버TV


20대 때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런데 리얼리즘의 진수라고 생각했던 영화에서조차 관람객들을 위해 지어내고 만들어낸 낭만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충격 받은 걸 넘어서 배신감이 밀려왔었다.


우리나라에서 영국배우 제임스 맥어보이James McAvoy(톰 르프로이 배역)의 엄청난 팬덤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비커밍 제인’, 제인 오스틴의 팬이라면 한번 쯤 보기를 추천한다. 아, 팬이라면 오히려 그의 소설 속 주인공과는 너무나 다른 작가의 인생에 실망할지 몰라도 제인 오스틴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오만과 편견’이 탄생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영화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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