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나는 유일신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사후의 천국과 지옥이 따로 존재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은 모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생에 있다고 믿는다.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천국에 살고 있는 셈이고 생이 끔찍한 사람은 지옥에서 살고 있다고.. 먹고 사느라 정신없는 평범한 회사원들은 그 중간쯤 어딘가에.. 끔찍하도록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행복하지도 않은 연옥, 그냥 내 생각이다. (나는 카톨릭 신자였다가 지금은 냉담자로 돌아섰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 지구의 모든 인류가 생지옥으로 쳐 박혀버린 상황이 온다면 그게 바로 영화 ‘매드맥스’에서 연출되는 뉴클리어 아포칼립스를 마주한 모습일 것이다. 핵전쟁으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이 사라지고 황량한 사막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이 어떨지 별로 상상해 보고 싶지는 않다. 모든 일이 폭력으로 해결되고 힘 센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폭력과 광기로 뒤 덮인 지구에서 서로를 학살하고 착취해야하는 세계관과 설정, 그런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정말 정신 못 차리게 재미있다. 비포장 길을 박력 있게 달리는 카레이싱 액션영화에 일도 관심 없던 내가 굳이 이런 영화를 극장까지 가서 챙겨보고 자막이 올라간 이후 한 번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매드맥스를 보면서 가장 괴이하고 무서웠던 존재는 임모탄이 아니었다. 방사능으로 오염되어서 병적일 만큼 새하얀 피부에, 흉터로 가득한 몸과 얼굴, 여기 저기 튀어나온 암세포를 달고 다니면서 죽음을 불사하는 유령같은 전사들, 워 보이들이었다.
신을 믿지 않는 나 같은 이는 한번 뿐인 목숨이 의존하는 현세가 전부이기 때문에 주어진 생을 어떻게든 잘 살아 보고 싶어진다. 죽어서 발할라(천국)에 갈 거라 확신하며 목숨을 함부로 내던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후 전사를 위한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세뇌된 이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처럼 자폭테러도 감행할 수 있게 된다. 맹목적인 믿음이 나는 가장 무섭다. (천국이 어딨니?)
이와 대조적으로 자신 앞에 주어진 생을 온 몸을 다해 붙잡고자 하는 퓨리오사와 맥스 같은 인물들은 붙어있는 목숨에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인간상이다. 영화 속 맥스가 얘기하듯 맥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이다. 미친 세상이라도 그냥 살아남는 것. (그 대목을 보고 영화 ‘밀양’에서 전개되는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생을 숨이 붙어있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전도연의 캐릭터가 겹쳐졌던 건 뭘까?)
퓨리오사는 지옥같은 시타델을 탈출하여 자신의 고향인 녹색 땅으로 돌아가는 일이 유일한 꿈이자 희망이다. 그와 시타델을 탈출한 임모탄의 다섯 아내들 또한 이 꿈 하나에 매달려 산다. 생명으로 가득하고 폭력과 지배가 없는 유토피아로 돌아가고자 했던 꿈은 퓨리오사가 생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어 준다. 그러나 결론은, 현실주의자 맥스가 더 현명했다는 것. 퓨리오사가 계속 달콤한 꿈을 쫓았다면 그는 결국 맥스의 경고처럼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시타델의 폭정 군주로 군림하는 임모탄이 어찌 보면 주어진 생을 가장 열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잘 살아낸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포칼립스 시대에 지옥 안에서 자신만의 천국인 시타델을 스스로 건설해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워 보이들에게는 판타지와 사상을 주입시키는 능력이 있고 지배자를 위해서라면 스스럼 없이 죽음으로 뛰어들게도 만들 줄 알았던 그는 스스로 신격화를 이루어 낸 능력자이다.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사막에서 가스와 물 등 가장 중요한 자원을 점령해 버리고 주요거점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신의 왕국을 운영해 나가는 일은 여간한 사람이라면 해내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약자를 혹독하게 착취하는 폭군이다. 자원을 철저하게 소유하고 이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독재자이자 악마이기도 하다. 특히 가임여성을 꼼짝 못하도록 감금하고 ‘mother’s milk’라고 명명하는 모유를 착취해 내는 씬은 헉 소리 나도록 역겨운 장면이었다.
영화는 거대한 권력인 임모탄 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퓨리오사, 퓨리오사와 연대하는 여성들 간의 대결구도로 흘러간다. 감독은 잔혹함과 폭력,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수직구조의 세계와 협력과 화합을 바탕으로 하는 수평적 세계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점령과 착취 위에 세워진 시타델과 대비되는 곳으로 만물이 상생하는 녹색 땅을 희망의 땅으로 그린 점과 시타델을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평화의 기운으로 존재했던 녹색 땅을 모계 사회로 만들어 놓은 설정에서는 그의 페미니즘 사상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주인공은 맥스로 설정된 듯 보이나 영화가 전개되는 추이를 보면 실제 주인공은 맥스가 아닌 여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배역)임을 알 수 있다. 퓨리오사가 ‘분노’라는 뜻을 담고 있고 영화의 제목이 ‘분노의 도로’라는 점을 봐도 이 영화의 진짜 메인은 처음부터 퓨리오사였다. 소금의 땅을 건너 또 다른 신기루를 따라가려는 퓨리오사를 가로막고 그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맥스였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영화 내내 퓨리오사의 조력자로서의 행보를 펼친다. 액션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내가 굳이 이 영화를 챙겨봤던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감독이 관객을 향해 던졌던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나는 영화 속 맥스가 이미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간파하고 있던 맥스) 폭력과 착취, 지배만으로 움직였던 시타델을 퓨리오사와 녹색의 땅 여인들이 평화와 공존의 도시로 변모시킬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멸망한 지구에서조차 우리는 나눔과 희망이 필요하다.
가끔 한국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아도, 그래서 부유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곳. 관계중심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고 인간관계 속에서 가식적인 겉치레가 조금이라도 덜 한 곳을 찾아 그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 못한 이곳은 지옥이라고, 이런 지옥에 사는 나에게 연민을 느꼈던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서는 이 고질적인 생각에 약간은 변화가 생겼다. 감독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분명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묵직한 무언가가 있다. 영화에 현란한 카 레이싱과 공중서커스까지 등장하는 기묘한 액션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러나 모래폭풍을 제외하고는 거의 CG조차 쓰지 않았다고 하는 그 모든 추격씬과 액션은 영화의 제작진이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한다. 그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장시간의 고난도 퍼포먼스를 미치도록 멋진 전투차들과 함께 펼치는 매드맥스의 액션은 어떤 영화에서도 아마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 작품성을 불문하고 아카데미상의 여섯 개의 부문을 휩쓸어 담은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특히 고가의 차들을 실제 전투 차처럼 모두 개조하여 재창조해 낸 솜씨를 보고는 놀랍다 못해 기가 막혔다. 그 차들 중 일부는 또 어찌나 과감하게 깨부수는지..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너무나 아깝더라. 미친 자들이 사는 세상, 가끔은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