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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Feb 21. 2021

사랑하기 때문에(Feat. 유재하 님 노래)

 “학살의 그날, 그 현장으로부터 53일 그리고 4,257킬로미터” - 《아메리칸 더트》


 한 모자가 멕시코 카르텔(마약 범죄 조직)의 보복을 피해서 미국으로 탈출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 《아메리칸 더트》. 인물과 상황은 픽션이지만 많은 부분이 사실에 기반한다. 이 책을 읽으면 멕시코를 통해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난민들의 처절한 생존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주인공 리디아는 아들 루카를 카르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눈물겨운 탈출을 감행한다. 위험천만한 화물열차에 뛰어내리기도 하고, 다른 조직에 잡혔다가 가까스로 돈을 내고 풀려나기도 한다. 


 이들의 삶에 대해서 동정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무엇보다 강한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 리디아는 그냥 평범한 서점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문득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우리는 가슴 뜨거운 사랑을 지금도 느끼고 있는가? 가족에 대한 사랑의 온도는 어떠한가? 나에 대한 사랑은 어떠한가?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에 쫓기듯 살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온갖 머릿속 잡음과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뭐지?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뭐 먹고살지?’ 등등 


 그렇다 보니 지금 나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돌아보지 못하고 있고, 내 주변에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배우자나 연인, 또는 부모님에게 짜증을 내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 또 후회를 한다. 그러면서 나의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잊게 된다. 


 무엇보다 나의 소중함을 잊는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왠지 부끄럽다. 나의 마음은 그것을 원하는데도 말이다. 

 “사랑”


 나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다. 외국어를 배울 때, 인사 다음으로 배우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다. (가끔 욕을 먼저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말을 우리는 점차 잊는다. 물론 아직까지 불타는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고, 마흔에 접어들면 생활 전선에서 온갖 전투에 시달리다 보니 점차 이 단어를 잊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에게 아주 쑥스러운 단어가 되는 것이다. 


 “사랑해” 

 “으악...”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낯설어한다. 혹시 자신이 뭘 잘못했나 생각하기도 하고, 아빠나 엄마가 무슨 속셈이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제 부담스럽게 받아들인다.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좀처럼 꺼내지 못한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더 성장해서 성인이 되면 더 낯선 것이 된다. 나중에 부모님이 연로하고 세상을 떠날 때쯤 잃어버린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시 찾기 시작한다. 평소에 했더라면 수만 번은 더 했을 단어인데도 말이다. 


 나도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었다. 부모님께, 배우자에게, 아이들에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체한 것처럼 나오지 않았다. 


 우선 나 자신에게 먼저 실험했다. 세계적인 강연가이면서 영적 스승인 루이스 헤이가 제안한 ‘미러 워크’처럼 거울을 보고 이야기했다. 


 “너를 사랑해” 


 그리고 가족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종종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머리 위로 ‘스팀’이 올라올 때,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니 그 ‘스팀’이 사라짐을 느꼈다. 정말 마법 같은 주문이다. 물론 아주 스팀이 세게 올라올 때는 잘 먹히지 않는다. 


 마흔이 넘은, 특히 남성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다. ‘주식’, ‘재테크’, ‘고과’, ‘연봉’, ‘승진’, ‘성과’, ‘골프’, ‘등산’ 등의 단어가 더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단어만 사용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이 점점 메마름을 느끼게 된다. 쉰을 넘기고, 예순을 넘기고, ‘고독’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내 마음 안에 ‘사랑 에너지’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꽁꽁 마음이 얼어붙어있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없게 된다. 마음이 얼어붙은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먼저 나의 마음을 녹여야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지금 “사랑해”라고 말해보자. 약간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용히 이야기해보자. 먼저 나를 사랑하는데 익숙해지면 주변에 가족과 동료에게도 그러한 에너지를 보내면 된다. 나도 여전히 노력을 하고 있어서 루이스 헤이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시도해야 한다. 


 아침에 거울을 보고, “너를 사랑해”, 가족을 바라보고 “사랑해요”, 이렇게 사랑 에너지로 나의 마음을 녹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녹여보자. 처음에는 어색하다. 늘 그렇듯이.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연습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찬다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 와도 외롭지 않다. 그만큼 ‘사랑’은 친밀하면서도 가장 위대한 말이다. 


 1년 전의 나였다면 낯이 뜨거워서 이런 글조차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 끝으로 유재하 님의《사랑하기 때문에》를 불러 봤습니다. 

 

 https://youtu.be/_RAUV0s4N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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