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로 시작한 독서 인생
사람마다 책을 만난 계기는 다양하다. 어릴 적 부모님이 사주신 책을 읽고, 일찍 책과 교감한 사람들도 있고, 아무리 집에 책이 많아도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독서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독서법’과 관련된 책도 많이 출간되었고, 각종 온라인이나 미디어에서 독서의 필요성을 다루고 있다. 독서를 통해서 인생을 바꾸고, 마음의 치료가 되었다는 사람들도 많다. 독서를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하고, 지식을 얻는다는 것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책에 대한 안목과 수준도 많이 높아졌고, 독서 모임도 이전보다 더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독서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학창 시절 후 사회생활을 하면 더욱 그렇다. 우선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 않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거나, 베스트셀러 정도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말이다.
대화의 주제는 회사, 아이, 교육, 재테크, 연예인, 영화나 드라마 등이 대부분이다. 거기에다가 유튜브,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메타버스’까지 가세해서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당연히 책을 볼 시간은 더 없다.
예전에 신입사원 대상으로 ‘독서의 힘’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독서가 얼마나 중요하고, 재미있는 있는지 역설하고, 좋은 책도 추천했다.
강연이 끝나고, 한 직원이 다가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저도 책을 읽는 것이 좋은데, 막상 친구들은 책을 안 읽어서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직원은 친구들과 함께 독서를 하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친구들을 잘 설득해서, 같이 독서를 하면 좋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어른이 되면 누군가의 말을 듣고 행동을 바꿀 확률이 굉장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독서 모임에 나가시면 됩니다.”
역시 허무한 답변이지만, 그 편이 그 직원이나 친구를 위해서 모두 해피엔딩이다. 책 때문에 공연히 서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득 내가 독서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계기를 되돌아보았다. 나도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위인전집과 백과사전을 사준 적이 있지만, 그렇게 독서를 많이 권유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책장에 아버지가 읽으신 한국문학과 철학책 정도가 꽂혀있어서 가끔 꺼내서 읽어봤다. 하지만 한자도 섞여 있고, 세로로 쓰여 있는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았다.
본격적인 독서 입문 계기는 ‘무협지’였다. 어렸을 적, 그 유명한 《사조 영웅문》을 접한 것이 나의 독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때 김용 작가의 모든 무협지를 읽으면서,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아마 마블의 ‘세계관’과 같은 것을 제대로 만든 것은 김용 작가부터가 아닌가 싶다. 중국의 역사 순(북송, 남송,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으로 나온 그의 무협지를 읽으면서, 중국 역사에도 동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어서 정비석 작가의 《손자병법》, 《초한지》,《삼국지》로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을 더 넓혔다.
고등학생 때는 주로 한국문학을 많이 접했고, 고인이 되신 마광수 교수의《즐거운 사라》라는 당시 핫이슈가 된 책도 몰래 읽은 기억이 있다. 또한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가의《설국》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고, 본격적으로 일본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 등 작가의 책을 즐겨 읽었다.
이와 같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서의 역사'가 있다.
만약 요새 독서를 잘 안 하고 있다면, 한 번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봤으면 한다. 내가 독서에 열정을 품고 있었던 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책을 좋아했는지. 이렇게 나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들, 나에게 소소한 감동을 준 책이 점차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서 내 안에 꺼진 불꽃도 다시 서서히 살아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의 취향도 바뀌고, 책과의 인연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정확한 시점은 아니지만) 10대에 무협지, 중국 역사, 20대에 일본과 한국 문학, 30대에 자기 계발 서적을 읽었다. 40대부터는 역사와 문화, 종교, 심리, 자서전 등에 대한 책에 관심이 많다. 물론 재테크, 건강, 취미 등과 같은 실용서적도 꾸준히 읽는다.
앞으로 또 어떤 책과 인연을 맺을지 모르겠지만, 책과의 인연은 계속될 것 같다.
오늘은 머리를 싸매고, 다소 어려운 주제인 미국 정치에 대한 책을 읽는다. 우리가 아는 미국이 예전의 그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 주제인데, 평소 공감하던 내용이라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런데 내용이 어렵다. 왜 이렇게 어렵게 썼는지, 약간의 불만도 들었다.
독서는 끝이 없다. 힘들 때도 있지만, 독서의 즐거움을 계속 느끼고 싶다. 어릴 적 읽은 무협지가 지금 현재의 독서로 이어진 점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