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에 대한 아련한 기억
첫사랑이 기억에 남는 것처럼(?), 첫 책도 작가에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첫 책에는 많은 눈물과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작가님은 1년 넘게 원고를 준비하면서, 몇 번이나 원고를 엎고 새로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침내 투고를 해서 출판사와 계약을 했는데, 편집자 분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만 원고가 공중에 ‘붕’ 떴습니다. 다행히 다른 편집자 분을 만나서 마무리를 지었지만, 당시 작가님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책을 내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자판과 씨름을 합니다. 과연 이것이 책이라는 형태로 나올지 매우 불안한 마음도 듭니다. 마침내 (빠르면) 몇 개월 후 투고하고, 결과를 기다립니다. 마치 재판관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무척 초조합니다. 매초, 매분, 매시간 이메일을 확인하고, 휴대폰도 쳐다봅니다. 마침내 나의 원고를 (감사하게도) 받아주는 출판사를 만나서 계약서에 사인을 합니다. 첫 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때 감동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증 샷을 찍는 분들도 많이 있지요.
저도 처음 책을 내기 위해서 초고를 20일 동안 쓰고, 퇴고를 3개월 정도 했습니다. 약 3주 동안 A4 용지 기준으로 거의 100매 정도 초고를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회사를 다니면서 책을 썼기 때문에, 주로 주말에 몰아서 글을 썼습니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7~8시간씩 원고에 매달렸습니다. 온몸에 에너지가 다 소진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왠지 마음은 편하고 홀가분했습니다. 물론 그때 아이들을 거의 방치해서 지금도 원망의 말을 듣지 만요. 그냥 글에 미쳤던 것 같습니다.
원고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출판사에 투고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백여 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그중에서 대여섯 군데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형 출판사도 있었고, 중소형 출판사도 있었습니다. 내심 큰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책을 낸 후 유명해지고(대형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유명해진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안에서도 경쟁이 있는데도 말이지요), 제 얼굴이 널리 알려졌을 때, 회사에서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다는 ‘김칫국’을 혼자 후루룩 마셨습니다. 절대 그럴 일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설사 책이 잘 되더라도,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다행히 좋은 출판사를 만나서, 첫 책을 출간했습니다. 출판사 대표님도 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시고, 저를 담당하신 편집자님도 아주 꼼꼼하게 제 원고를 봐주셔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대표님, 편집자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제는 더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을 내신 작가님들은 첫 책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을 겁니다. 좋은 추억, 또는 안 좋은 기억도 있을 것이고요. 좋은 책은 앞으로 책을 쓰는데 좋은 에너지로 간직하고, 안 좋은 기억은 자극제로 삼아서 더 좋은 책을 쓰면 됩니다.
첫 책이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작가의 색깔을 만듭니다. 둘째, 두 번째나 세 번째 책을 낼 때, 편집자 분들의 가이드가 됩니다. 셋째, 다음 책을 낼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먼저 첫 번째 이유를 살펴보죠. 작가는 첫 책에서 자신의 색깔을 만들고 어느 정도 드러냅니다. 작가의 사상과 문체는 그 이후로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책에 나의 색깔을 온전히 그리고 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결국 향후 책의 방향성과 작가의 세계관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1979년에《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첫 단편소설을 냈을 때, 습작도 없이 집 부엌에서 몇 개월 동안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물론 심혈을 기울였겠지만)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후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의 작품을 지금도 즐겨 읽고 있지만, 문체와 색깔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색채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장점입니다. 물론 작가의 세계관은 더 확장되고, 깊어지지만요. 덕분에 하루키 팬덤을 형성해서 지금도 전 세계에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둘째, 첫 책이 투고를 할 때, 편집자 분들의 가이드가 되는 경우입니다. 첫 책을 낸 후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내기 위해서 투고를 한다면, 나의 전작에 대해서 소개를 하게 됩니다. 첫 책이 베스트셀러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잘 만들어진 책’이라면 아무래도 편집자 분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요새는 작가의 ‘지명도’나 ‘마케팅 채널’(구독자수)을 먼저 보는 출판사도 많지만, 그래도 역시 첫 책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만약 책을 내는데 너무 집착한 나머지 완성도가 떨어지는 책을 낸다면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홈런은 아니더라도 안타나 (진루성) 번트 정도는 친 책이면 좋겠죠.
마지막으로 첫 책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면, 다음 책을 내기가 힘듭니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힘들거나, 또는 책을 내는 과정에서, 아니면 책을 낸 후에 여러 가지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 책을 냈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이지만, 거기에서 멈춘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두 번째 책이 힘든 이유는 첫 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일 수도 있습니다. 온갖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는데 막상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죠. 또한 첫 책에 모든 아이디어를 다 소진해서, 그다음 책에 무엇을 쓸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사에 대한 안 좋은 기억도 원인이 됩니다.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들을 살펴보고, 투고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책에 대한 애정이 없고,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출판사도 아주 가끔 있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따라서 첫 책을 낼 때는 너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쓰면서 투고, 마케팅, 다음 책에 대한 준비도 하시길 권유드립니다. 저도 아직 개인저서를 두 권밖에 쓰지 않았지만, 앞으로 2~3권의 신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다작 작가의 대열에 섰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첫 책을 낼 때, 마음이 급했고, 빨리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것이 제가 작가가 된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고, 가족과 주변에도 저를 입증하는 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좋은 책을 내서 지금도 뿌듯한 마음은 들지만, 당시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준비를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투고를 할 때도 한 번에 백여 군데 출판사에 보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나와 맞는 출판사를 찾아서 한 번에 열군 데 정도만 투고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투고가 잘 안 되더라도, 좀 더 원고를 고치고 완성도를 높여서 다시 투고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필요합니다. 최악의 경우, 투고해서 첫 책을 못 내더라도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1인 출판사를 만들어서 직접 책을 제작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비나 반자비 출판을 기획할 수도 있지만, 비용적인 부담도 있고, 출판 시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받을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지인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정도라면, 출판보다는 인쇄를 해서 간단히 배포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첫 책이 너무 보고 싶더라도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이 책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작가의 세계관을 그릴지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다면 어떨까요?
3년 전의 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Take it ea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