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를 대하는 자세
마침내 원고를 출판사 편집자 분에게 넘깁니다. 그동안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에서 수년 동안 원고를 붙잡고 씨름하다가 마침내 아이를 떠나보냅니다. 왠지 더 고쳐야 할 것도 있고, 더 봐야 할 것도 있지만요. 그래도 끝을 맺어야 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보내기’ 버튼을 누릅니다.
그런데,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편집’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내용을 모아서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어떻게 보면 편집이 진정한 책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아무리 완벽하게 썼다고 생각해도, 편집자가 봤을 때는 안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작가는 1년에 한 권, 많게는 두 권 정도 책을 쓰지만, 편집자는 매년 적어도 여섯 권정도 편집하기 때문에 책을 보는 시야가 넓은 수밖에 없습니다. 편집자의 경력이 10년, 20년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겠죠.
무엇보다 출판사는 ‘이윤’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작가가 보낸 원고를 근거로 잘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목부터 시작해서, 콘셉트, 타깃 독자, 목차, 마케팅 전략 등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을 합니다.
원고를 받은 후라도 바로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출간에 임박한 책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선 그 작업에 집중합니다. 작가가 보낸 원고는 일단 출판사의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되는 셈이죠. 대형 출판사의 경우 다음 해에 출간할 원고를 미리 확보해서 수십 권, 수백 권의 라인업을 구성해 둡니다. 큰 출판사일수록 이렇게 금고에 넣어두는 원고가 많습니다.
비록 다소 부족하고 초고 수준의 원고더라도, 콘셉트와 작가의 인지도를 감안해서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계약을 맺습니다. 꼭 확보하고 싶은 원고는 ‘선인세’(책이 미리 팔렸다고 가정하고 지급하는 인세, 대략 50만 원 ~ 100만 원)를 지급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계약 파기를 어렵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원고를 보낸 후에 출판사에서 깜깜무소식이라도 너무 초조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계약 체결 후 1년 또는 1년 반 내에 출판을 해야 하는 것이 출판사(을)의 의무 조항이니까요. 물론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빨리 나의 ‘아이’를 세상에서 보고 싶은 부모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요.
나의 원고가 나의 ‘아이’라면, 편집자에게도 아주 소중한 ‘아이’입니다.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거의 양부모 수준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가 탈고한 것과 마찬가지로 편집자도 결국 마지막 탈고를 끝내야 합니다.
편집자는 심각하게 원고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원고의 완성도와 차별성은 곧 수입과 직결됩니다. 작가도 인세로 ‘수입’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만, 만약 이 수입을 얻지 못하더라도 다른 생계 수단으로 살면 됩니다. 물론 전업 작가의 경우는 다르지만요.
반면 편집자에게 책은 생계와 직결됩니다. 잘 팔리는 책, 꾸준히 팔리는 책을 기획하고, 편집해서 좋은 결과물을 내야 합니다. 출판사가 돈을 벌어야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적자가 계속 난다면 출판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편집자는 출판 시장과 트렌드에 아주 민감합니다. 매년, 매월, 매일 어떤 키워드가 세상을 관통하는지 보기 위해서 늘 눈과 귀를 열어둡니다. 뿐만 아니라 매주 기획회의를 열고, 어떻게 하면 ‘작가의 원고’를 차별화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보통 편집자와 처음 미팅을 하거나 통화를 하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혹시 저희가 원고를 수정하거나 목차, 구성을 바꿔도 되는지요?”
이때 호의적인 작가가 대부분이지만, 안 그런 작가도 있다고 합니다. ‘감히 내가 애지중지하게 기른 아이를 마음대로 옷을 입히고, 먹이고 바꾸려고 하다니? 그렇게는 안 되지’라고요.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의 시선은 편집자보다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논문이나 지인에게만 드릴 책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책이라면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편집자 분에게 보통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계약상 ‘갑’의 위치이지만, 또한 ‘을’ 일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려면, 멋지게 성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을’도 아닌 ‘병’의 자세로 편집자 분들을 대합니다. 오히려 그분들을 통해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합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물론 편집자가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원고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작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에 들어가기 전에 원고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납득시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자와의 대화를 주저하면 안 됩니다.
원고를 넘겼다고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 적어도 2개월 ~ 3개월의 편집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면서 편집자와 의견교환을 하면서 책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독자는 그것을 단돈 15,000원의 책으로 구입을 하지만, 그 안에는 작가와 편집자의 수많은 땀과 노력이 들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