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단 Nathan 조형권 Mar 10. 2023

기왕 갈 여행이라면 빨리 갔다 오자.

칠십에 떠난 아프리카 배낭 여행기

이 이야기(2013년 배경)는 저희 아버지인 조승옥 님이 쓰신 글을 제 브런치에 올린 것이니, 미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앞으로 10회 정도 연재 계획입니다. 아프리카 배낭 여행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자 프로필 :
- 조승옥 : 육사 21기, 서울대 철학박사, 육군사관학교 철학교수, 한국분석철학회 회장
- 저서: 군대윤리(공저), 심리철학(역서), 현대과학철학 논쟁(역서)

지난 봄 미 서부 관광여행을 떠나면서 공항에서 여행 중 읽을거리를 샀는데, 책은 아프리카 탐험여행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이 책의 미국인 저자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마사이족 족장을 만나 자신의 배낭에 들어있는 신기한 물건들을 모두 꺼내 보여주었는데, 그 물건을 뻔히 쳐다보던 그 족장이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줍니까?"라고 물었다.


이 짧은 말이 깊은 울림이 되어 그는 즉시 자신의 짐을 정리해 가볍게 함으로써 훨씬 더 즐겁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고, 훨씬 더 행복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교훈을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인생살이에 도입해, "혹시 당신은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 버겁지 않는가? 버리지 못해서 그대로 짊어지고 가는 짐은 없는가? 인생의 절반쯤 이르렀을 때 가방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울 것인지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심신이 지쳤을 때 영적 힐링을 받으러 인도로 갔다는 이야기는 그의 전기에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힐링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아프리카 여행을 한 사람들이 쓴 책을 구해서 읽는 한편 인터넷에서 아프리카 여행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면서 아프리카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집사람이 아무래도 빨리 갔다 와야 내 아프리카 열병이 진정될 거라고 생각해 "기왕 갈려면 빨리 갔다 오라"고 하지 않는가?


나도 "기왕 갈 여행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갔다 오자."고 마음을 굳혔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 반 정도 지난 때였다.


집사람의 "윤허"가 떨어지고 내 마음을 굳힌 이상 더 지체할 이유가 없게 되어 보다 구체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여행사를 여기 저기 검색해 보았는데, 마침 한 여행사에서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모집하고 있었고, 이미 여기에 20여명이 예약을 신청해 놓고 있었다. 그 여행사의 여정은 케냐-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보츠와나-나미비아-남아공 7개국을 한 달간 돌면서 이곳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여기에 예약신청을 했다.


예약신청을 하면서 "나 같은 노인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문제없다는 대답이었다. 하기야 한 사람이라도 더 모집해야 할 여행사측의 당연한 답변을 듣기 위해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한 꼴이 되었다.


예약을 하고나서 여행사의 패키지 일정을 다시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도착하는 다음날부터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는데다가, 탄자니아에서 빅토리아 폭포 가는데 이틀간 기차로 간다는 내용을 보고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유독 기차여행을 싫어한다. 해외여행에서 두 번에 걸친 장거리 기차여행이 있었는데, 한 번은 러시아의 상뜨 페째스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야간열차였고, 또 한 번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마찬가지 야간열차였는데, 둘 다 엄청 지루할 뿐만 아니라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경험으로 말미암아 내가 기차여행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나이에 단체여행 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우리 나이 정도면 최고령에 속하고 우리 밑으로 가장 가까운 연령층은 보통 60대 초로 우리와는 10여년 차이가 난다. 일정은 대략 다수를 점하는 젊은 층을 기준으로 짜여 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노인들에게는 신체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동작이라도 늦으면 눈 밖에 나기 쉽고. 오직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도 단체관광의 단점이다.


단체관광은 비자와 가방만 들고 떠나면 되니 편하기는 하다. 경비가 덜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외국어를 한 마디 안 하고도 여행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게다가 외국 음식에 좀 질릴 것 같으면 한국 식당으로 대려가 준다. 금년 봄 미 서부를 갔는데 외국에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어는 한 마디도 할 필요가 없고, 한국 음식을 먹은 끼니가 미국 음식 먹은 끼니 보다 많았던 것 같다. 심지어 LA에서 LA갈비를 먹는데 한국 식당에서 한국식으로 한국 소주를 마시며 먹었으니 더 이상 말하면 무엇하랴.


이번 기회에 나는 틀에 박힌 패키지 상품 관광을 탈피해 그동안 내가 간절히 바라던 자유여행을 떠나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나 혼자 배낭 메고 아프리카로 떠나겠다고 결정했다.


물론 집사람에게는 아프리카 가서 단체관광 팀과 합류한다고 안심시켜 놓고.




배낭여행은 여행을 준비하는 일에서부터 여행사에서 알아서 챙겨주는 패치지 여행과는 완전히 다르다. 일정, 여행지 정보, 항공권, 비자 신청, 여행지 교통편, 호텔예약, 음식점 예약, 여행보험 가입, 옵션 선정 등등. 이런 것을 직접 본인이 하나하나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할 일은 항공권 예약이었다. 7월 20일 경 출발하려고 하니 이때는 성수기라 아무래도 일찍 예약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래서 2013년 6월 24일 대한항공 인천-나이로비 직항 왕복 항공권을 인터넷에서 2,229,500원에 예약했다. 갈 때는 인천공항 출발 7월 22일 21:20 나이로비 도착 23일 05:00(현지시간), 올 때는 나이로비 출발 8월 10일 10:30(현지시간) 인천공항 도착 11일 04:50. 중간 경유지를 통과하는 다른 나라 항공사를 이용하면 적어도 50-80여 만 원 절약할 수도 있었지만 처음해보는 자유여행인데다가 아프리카라는 낯선 지역으로 가는지라 대한항공 직항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프리카를 가려면 황열병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은 터라 항공권을 예약한 날 국립의료원에 예방접종 예약신청을 하자 "다음 달에나 가능하겠는데요."라는 답변을 듣고, 다시 분당서울대병원에 문의하자 "다음 주에나 가능할 것 같은데요."라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답변하는 목소리도 그리 탐탁하지 않은 투로 들렸다.


마지막으로 인천공항검역소로 전화를 하니 나이를 물어 73세라고 하자, "고령이라 곤란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미 아프리카 행 비행기 표까지 끊어놓았는데 어떡 하냐?"고 애원조로 호소하자, "그럼 건강하세요?"라고 묻는다.


물론 건강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그럼 내일 10시까지 인천공항검역소로 나와 보세요." 한다. 성명 영문 표기를 정확히 하기 위해 반드시 여권을 지참하고.



아프리카 여행하려면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어야 한다기에 처방을 받으러 공항병원으로 갔다. 여기서 항말라리아제 처방을 부탁하자 진료담당 의사가 장티푸스 예방 접종도 받으라고 해서 황열병 접종 후유증도 우려되는데 장티푸스까지는 부담된다고 거절하자, 말라리아 예방약만 처방해 주는데 출발 1주일 전부터 귀국한 후 4주일까지 매주 한 알 씩 복용하라고 한다. 약은 라리암(염산 메플로킨)인데 진찰료 13,900원에 약값은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서 8정에 40,000원이란다. 한 정에 5천원인 꼴이다.


그런데 이 약은 예방제로서 뿐만 아니라 치료제로도 사용된다고 처방전에 나와 있다. 나는 이 약을 출발하기 1주일 전 집에서 한 알, 아프리카 도착해서 두 알을 복용하고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모기 구경도 못했는데 무슨 말라리아 약을 먹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귀국 후에도 복용하지 않았다. 이후 아무 이상이 없다.


항공권과 황열병 백신도 맞았으니 아프리카 여행은 차질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예약한 곳에서 판매하는 AIG 여행보험에 가입했는데 연령이 많을수록 보험료도 올라가고 계약일자도 제한을 받는다. 보험료는 17,860원. 황열병 백신도 그렇고 여행보험도 그렇고 경로우대가 통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해외여행이 아닌가 싶다.


보험 가입한 다음 날인 6월 27일 혹시 렌트카에 대비해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얼마 전부터 각급 경찰서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하게 되어 사진 한 장 들고 중랑경찰서에 가서 발급 받았다. 비용 7,000원. 유효기간은 1년이며, 반드시 국내 면허증도 함께 휴대해야 한다고 한다.


케냐 입국 비자는 주한 케냐 대사관에서 미리 받을 수도 있었지만 대사관 찾아가는 것도 귀찮고 해서 나이로비 공항에서 받기로 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갈 준비는 해 놓고 여행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사실 일이 거꾸로 된 것이다. 먼저 일정을 잡아놓고 거기에 맞춰 항공권도 예약하고 숙박과 여행지에서의 교통편을 예약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인데 말이다.


그러나 성미 급한 나는 우선 가는데 목표를 두고 일을 추진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To be continued


아프리카 선교사 데이비 리빙스톤 동상 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