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대하는 마음
"아니 리뷰 평점이 왜 이래! 너무 낮은데? 3.5/5.0. 리뷰어가 5000천 명에 달하는데 3.5라... 구독자가 28만이면 엄청 많이 읽은 건데.. 악평들을 보니 장난 아니네."
<구의 증명>을 쓴 최진영 작가의 북토크이다. 난 그의 책을 한 권도 본 적 없지만 강연 주제가 맘에 들어서 가볼까 했는데 평점과 리뷰가 테러 수준이라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도 뭐라도 얻을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집을 나섰다.
일요일 오후 2시. 도서관 주차 자리가 많지 않다길래 30분 전에 도착해서 강당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어떤 사람일까.
사회자의 안내말이 끝나고 작가가 연단으로 올라왔다. 첫인상은 가냘프고 어려 보였다. 평범한 여자 아이 같은 느낌. 작가 같은 카리스마도 안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사전 질문이 담긴 포스트잇 보드를 쳐다보는데 눈이 침침해서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말한다. "엥? 그럼 40대 중반은 된다는 말이네. 동안이구나!" 구글링해보니 만 44세다.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자못 궁금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작가의 말을 아래와 같이 폰의 메모장으로 받아 적었다. 파란 글은 내 생각.
소설가의 하루. 전업 작가임. 다른 거 할 줄 아는 게 없다. (정말 그렇게 보인다.) 글을 많이 쓰고 있다. 다른 작가는 투잡 뛰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글이 너무 안 써질 때 망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소설이 망했을 뿐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글이 안 써지는 날이 대부분.
잘 아는 이야기보다는 알아보고 싶은 일에 대해서 글을 쓴다. (강창래 작가의 글쓰기 내용과 통하네.)
소설을 시작할 때 세 가지를 생각한다.
1. '질문'으로 시작.
사랑을 반드시 해야 할까.라는 질문. 몇 번 해보니까 아니더라. 사랑을 해보니 결핍, 집착, 의심하고 캐묻다가 싸우게 되더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사랑을 하다가 차이를 견딜 수 없어서 헤어지게 되더라. 감정을 다 빼앗기고. 만신창이가 되고.
소설의 마지막까지 쓰다 보니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더라. 이 문장을 쓰려고 여기까지 쓰게 되었구나 알게 된다. 답으로 가는 과정. (나도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면 작가처럼 짙은 안개가 걷히고 탈출구가 보이곤 한다.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목적보다는 나를 더 깊이 알기 위해서 쓴다.)
이제부터는 불행도 함께 해보는 사랑을 해보자로 바뀌었다. 다른 사랑을 해보기로. (헉! 이런 말은 처음 들었다. 한없이 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강연 중간에 유머러스함도 자주 보이고 아주 당차네!. '구의 증명' 책은 2015년도에 출판되어 10년이 지났고 그때랑 지금이랑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책을 쓸 당시의 작가의 삶이 책의 내용과 같았다고 한다. 많이 힘들었구나..)
소설을 쓰면서 삶을 되찾게 되었다.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못 찾았을 것들을 찾게 되었다. 한 권을 쓸 때마다 되찾는 것들이 있었다. (리뷰 평점만 보고 소설을 평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물론 전업작가로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책을 쓰겠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소설을 쓰는 행위는 작가의 처절한 자아 탐구라는 것을 알게 되니 잘 썼네, 별로네라는 평가보다는, 작가의 삶을 이해하려는 관점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인물.
질문을 이끌고 나갈 인물. 인물이 중요하다.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고 희망찬 사랑을?
소설을 쓰면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인물들. 이 세상에 나는 나 한 사람뿐. 나는 나 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나로 살아가지 못할 수도 있더라는 소설. (그래.. 이 말이 나에게도 와닿는다. 다 각자 유별한 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도 그래. 누구와도 같지 않지. 나다운 나로 살아가자.)
사연 없는 사람 고통 없는 사람이 없더라.
3. 소설적인 허구
허구를 하나 만들어놓고 시작을 하면 마음껏 상상할 수 있고 추진력이 생기고 재미가 있어진다. (이게 동물과 인간의 차이지. 상상력. 이걸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소설이다. )
영화는 보여주기 어렵지만 글은 그냥 쓰면 된다. 문장의 힘.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 문장이 주는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글쓰기가 소중해졌다. 자유롭고 해방될 수 있다. 문장으로 그냥 쓰면 된다. (그냥 써! 누가 어떻게 봐줄지 지레 염려하지 말고.)
독서라는 행위는 영화감상이나 연주감상과는 달리 다 같이 할 수 없는 혼자 하는 행위이다. 책을 열면 자유롭게 혼자가 될 수 있다. 독서는 고요한데 적극적인 행위이다. 영상이나 음악은 다른 걸 할 수 있지만 책 읽기는 그렇지 않은 적극적인 행위이다. (맞아. 멀티를 할 수 없는 행위이지. 독서!)
소설이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가 이것이 허구라는 지어낸 이야기는 약속을 하고 만난다. 소설을 쓸 때 자유로워진다. 진짜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있다. 해방감을 준다. (나도 소설가 할래.)
겪은 일이 아니라 겪은 감정을 적는다. (흠... 감정을 적는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멋지게 실패하라. - 사뮈엘 베케트
마감할 때 필요한 말이다.
문장은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것을 알면서 마감을 미루게 된다. 이제는 보내야 할 때에 생각하기를 "실패하자. 다음 소설에 더 잘 쓰자". 완성된 실패작. 실패라도 완성을 했기 때문에 다음 소설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한테도 꼭 필요한 거다. 잘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어. 마감일을 정해놓고 그때 끝내야 해.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완벽은 없어.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끝내고 또 시작하기'를 반복하면 결과적으로 전진할 수 있다.)
대망작이라도 썼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데 계단이 되었다.
새로 쓸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다.
소설 어떻게 쓰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 모를 수밖에 없다. 매번 새로운 걸 써야 하고 세계관과 같이 가는 소설을 써야 한다.
글쓰기에는 특별한 팁이 없고 많이 써보는 것이 좋다. 글쓰기 수업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소설을 많이 보았고 그러다 보니 소설을 쓰게 되었다. (많이 보는 게 공부다.)
다음은 질문답변
책 추천?
상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황정은 작가님 책은 다 좋더라. 최근 책은 김지승 작가 책. 여성 작가들의 책.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 앤카슨 작가의 어려운 책도 이해하지 못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떤 감정을 느낀다. 절대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데 어떤 감정이 느껴진다. <에로스 달콤 씁쓸함> (좋은 말이다. 이해하지 못해도 답답해하지 말고 뭔가 느껴진 게 있으면 된 거다.)
에로스의 근본은 결핍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 > 인문사회서
<삶의 발명>
제목을 진짜 못 짓는 편이다.
구의 증명도 편집자가 생각한 것. (나도 브런치 글을 새로 올릴 때마다 제목을 어떻게 지을까 매번 고민한다.)
소설을 잘 읽는 방법? 독자의 문제가 아니다. (책이 잘 안 읽히는 것이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큰 위안이 된다. 오늘 여러모로 북토크 오길 잘했네.)
책 읽고 독서 노트 쓰기. 지저분하게 읽는 편. 그 책을 내 책으로 만드는 것 같은 기분.
작가가 되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한가? 글쓰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작가에게는 경험이 상상력을 제한하는 편. 여행도 그랬다. 오히려 상상력이 펼쳐지지 않았다. (여행 경험을 상상력의 중요한 방편으로 생각했던 나로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훌륭한 발상이다. 작가한테 많이 배운다.)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사유이고 생각이라고 본다. 상상력은 정말 별 게 아니다. 인물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 보는 것. 우리의 시력과 청력 미각과 통각도 다 다르기에 같은 음악을 들어도 다 다르게 듣고... 다 개별적인 존재들이다.
한 편으로는 상상을 하다가 깊어지면
상상력은 그 사람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서 상상하게 된다. 등장인물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 보는 것.
모든 글쓰기는 낙서와 메모에서 시작한다. 엄청 많이 끄적이다 보면 그거를 얼마나 이어가느냐. 진짜 이야기로 만드느냐. 좀 더 긴 글로 이어가 보라. 완성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해라.
소설을 많이 읽는 입장에서 소설은 자기 계발서이자 실용서 역할을 한다. 소설의 스펙트럼은
어려운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 해독력이 늘어난다. 소설책을 읽는다는 것은 기억력, 응용력, 세계관의 확장과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는 것.
전업작가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직접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구글 어스를 켜고 상상해 본다.
어떤 책에 대해서 해석은 다양할수록 좋다. 각자의 감상이 생긴다. 깊은 의미에서 백 편의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 마법을 느끼는 게 작가는 좋다.
문체의 특징. 문체를 의식하게 되니까 글이 안 써지더라. 무의식적인 생각의 작용. 어떤 미래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집요하게 생각하면 마치 과거처럼 생각하게 되더라. 우리는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중고등학교에서 '구의 증명' 책이 금지서적이라고 해서 볼 수가 없다는 질문에 대해, 금지서적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다음날 학생이 책을 사가지고 왔다고 한다. 반면에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하면 안 읽는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그리스로마 신화야말로 금지서적이다.
그런 질문도 던져보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 일기를 많이 썼다 하루에 두 시간씩. 분한 마음을 배설하였다. 그 일기가 소설로 변하였다. 글을 써야 해결하고 해소하는 것들이 많다. 자존감이 많이 낮았기 때문에. 글쓰기에는 문턱도 장벽도 없고 돈도 안 든다. 노트와 펜만 있으면 된다 글쓰기를 통해서 삶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 추운 겨울에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이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 때문에 자살하는 것 아닐까. 죽음은 수단.
마지막 질문이 된 나의 멘트: "시대의 큰 흐름은 AI이고 5년 내에 AGI 시대가 되고 10년 후면 ASI 시대가 되는데 작가님은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는지요?
"마지막 질문으로 아주 좋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저도 요즘 AI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고 다음 책은 AI와 관련된 책이 될 것입니다."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책 참조.
노화나 죽음이 사라지는 시대에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글을 쓰면서도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이 될 것인가. 다음 장편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실패하거나.ㅎㅎ (다 같이 웃음^^)
정말 뼛속까지 다 드러낸 작가의 솔직함에 경의를 표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오늘도 많이 배웠고 나의 가치관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줄 것 같은 훌륭한 강연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전에 늘 고민했다. "이거 하루 이틀 더 묵히면 수정할 것들 많이 나올 텐데 저장만 해놓을까? 아니야 교열하고 윤문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어. 뭐 지금 내가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는 것도 아니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목적도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것이 주된 목적이짆아. 그냥 발행하자고." 일단 발행해 놓고 하루 이틀에 걸쳐서 조금씩 수정하는 편이다. 이글도 지금 그냥 올린다. 피곤해. 벌써 새벽 1시 다되어가네. 뭐 좀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