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구슬과 보배

by Loche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혁신은 르네상스 시대에 확립된 미술 전통을 부정하였는데 그것은 그림에 담긴 주제나 이야기, 사건을 없앴다는 것, 그림에 역사적인 사실이나 자신의 영혼 따위를 작품에 주입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근법도 없애버리고. 초상화의 기본은 모델과 화가의 인격과 심리가 동시에 그려져 있는데 인물(대상)을 색을 칠할 수 있는 공간과 면적으로 하는 정물화로 만들어버렸다. 대신에 색을 강조하고 배치와 구도, 화면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의 재현미를 조형미로 바꾼 것이다. 마네에게 그림은 자유로운 필치, 색채의 조화, 안료의 질감이고 전통을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였다. 색채의 향연을 즐기는 회화, 그것은 새로운 회화로 가는 길이었으며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그림을 그려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을 무너뜨렸고 화가들의 황제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네의 혁신은 모네에서 완성되었다. - 미술사 수업 내용 정리.


마네처럼 시대의 주류에서 자유로워지고 달라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요즘 읽고 있는 책 '생각의 탄생'의 내용과도 맥락이 같다. 강창래 작가가 AI 시대의 인간의 경쟁력 북토크에서 미술사 공부는 꼭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어제 수업을 들으면서 "아.. 이래서 미술사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미술사를 포함한 문학, 역사, 철학, 예술 공부는 얼핏 無用한 것처럼 보이지만 AI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인간의 모든 생산활동과 창조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나를 보고 세상을 보고 다르게 보려면 인문학 공부만한 것이 없다.



한편 집안 대대로 내려온 유전형질로 추정되는 나의 성격 문제 하나가 마침내 해결되었다. "무서워."로 대표되는 소위 말해서 욱하는 성격. 평소에는 참 다정다감한데 몸과 마음이 지치고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 드물게 튀어나왔던 그 성격, 이혼을 하게 된 치명적 사유이기도 하다. 지난 3년 간의 독서와 여러 수업과 강연들 그리고 성찰 덕분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먼저 말을 한다. 정말 달라졌다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였던 창업이나 투자 성과는 가시화된 것이 아직은 없지만 부차적으로 얻은 성격 변화로 인해 인정받고 더 좋은 관계가 되어간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을 뛰어넘는 선물을 얻은 셈이다.


몇 달 전 대대적 조직개편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팬텀이 되어 해저심층수와 표면수처럼 따로 노니 더 이상 봐줄 수 없었다보다. 나처럼 내 맘대로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아마도 0.001% 급 아닐까 싶다. 그렇게 왕따가 되어 솔로로 있다가 다행히 어떤 신설 팀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팀장 될 사람과 첫 전화통화를 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그 팀에 합류하는 또 다른 사람도 역시 같은 학교 출신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나로서는 이보다 더 안전할 수 없고 이 부서에서도 내 맘대로 하다가는 자칫 심각한 애로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에 잘 협조하면서 지내볼 생각이다. 도와줄 거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나의 생존방식은 중간에 개판 치더라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면 초인적 역량을 발휘해서 고비를 넘기는 것이고 여껏 그렇게 꾸역꾸역 사회적 끈을 잡고 살아왔다. 팀장과 다른 조직원이 학교 후배이니 당분간 너무 튀지 않게 유화제도 뿌려가면서 어울리며 지내야겠다.


오늘 저녁에도 수업이 하나 있었는데 하... 이런 수업을 어디 가서 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갓채취해서 신선한 생로얄젤리 같은 수업이었다. 배움은 역시 방구석에서 혼자 책만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발품도 팔면서 여러 분야의 좋은 선생을 찾는 노력도 겸해야 한다. 그들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는 별개의 것들을 이어붙이는 안목과, 동공이 크게 열릴 정도로 도보도 못한 놀라운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고 바로 그런 통찰력과 창조력이야말로 내가 배우고 익혀야할 것들이다. 또한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도 상당해서 자극도 많이 받는다.


요 며칠 국장 분위기가 좋다. 4월에 사놓고 가만 내버려 두었던 두 명 애들 주식은 100% 올랐고, 두어 번 팔고 사고 했던 딸은 50%, 비트코인 사고팔고 하다가 국장으로 와서도 사고팔고 하던 나는 간신히 본전이다. 남들 다 버는 시기에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비싼 수업료 내고 잘 배웠다고 위로하고 이제부터라도 현명한 선택과 기다림이 필요할 것 같다.


아멜리 노통의 머큐리 책을 다 봤다. 주말에는 독후감을 올릴 수 있을 듯.

오랜만에 미술관에도 가서 무언지 모를 떨림과 울림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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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