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 인간을 이해하는 글쓰기

by Loche


글이 자주 올라오지 않는 이유는 바쁘고 볼 책이 많고 아주 잘 지내기 때문이다. 요즘 사는 게 매우 반짝반짝하다. 얼굴과 눈빛은 광택이 나고 겨울로 감에 따라 머리도 계속 기르면서 웨이브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 너무 좋다. 모든 게 잘 흐른다.


그동안의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성찰이 조금씩 빛을 발한다. 얼마 전 '하브루타 수업'이란 것을 처음 참여했는데 50여 명의 참가자 중에 남자는 나 포함 단 두 명, 나머지는 대부분 30대 젊은 엄마들이었다. 하브루타 수업 특성상 다자간, 또는 옆사람과의 대화와 질문과 답변이 핑퐁처럼 계속되는데 나의 답변과 질문과 생각이 강사와 청중의 감탄과 놀람을 자아냈다. 옆에 앉은 여자는 내가 사유해서 쓴 글을 보고 무척 맘에 들었던지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내가 남다른 생각, 깊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이 된다.


여러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보고 있다. 식탁에서 밥 먹을 때는 아멜리 노통의 푸른 수염을 읽고 있고, 침실에서 주로 보는 책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이다. 내가 워낙 감각적인 사람이라 감각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싶어서 고른 책인데 참 좋은 책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적어볼 생각이다.




한편 오늘 저녁에는 강원국 작가의 특강이 있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을 쓴 유명하신 분인데 이 특강을 알게 된 경위가 우연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디자인 수업을 들으러 어떤 안가본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차를 주차해 놓고 주변 산책을 하다가 옆에 교회가 있길래 안을 둘러보는 데 공지게시판에 강원국 작가님의 특강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이건 소위 말해서 동네 독서모임에서 주관하는 작은 행사였다. 거금의 작가 초청비와 행사장 대관료와 저녁도시락 비용은 동네 의사 선생님이 지원해 주셨다.

특강 서두에 강작가님이 말씀하시기를 강의료가 선입금되었는데 역대 가장 높은 강의료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이렇게 동네 주민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좋은 분들이 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AI로 인한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만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느낌이 가치가 있다. 나만의 이야기. 인류 말고 한 인간에 대해서, 나를 넣어서 써라. 요즘은 평범이 환영받는 시대이고 보통 사람의 에세이가 팔린다.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 말은 바로 하면 수준이 드러나는데 글은 시간을 두고 고칠 수 있다.


기회는 위기의 옷을 입고 온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초2 때 어머니가 위암으로 사망하셨고, 아빠는 재혼을 해서 고모집을 전전하며 눈치 보며 살았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추측해 보는 것이고 이것이 나중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캐치하고 그분들의 생각으로 빙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서울대 법대 행시 출신들은 살아오면서 남들 눈치 볼 일이 없었으니 대통령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몰랐고 미묘한 뉘앙스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AGI 시대는 빠르면 5년 후에 온다고 한다. 인간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행하는 시대가 오는 것인데 내 역할을 AI에게 대행시킬 수 역량이 있으면 나를 백 명 만 명으로 복제해서 동시에 일을 시킬 수 있다. 하지만 AI가 나를 대행하려면 나를 학습하게 해야 한다. Claude에게 글쓰기를 시켜봤더니 나보다 훨씬 나답게 글을 쓴다. 끌로드는 내가 출판한 책 13권을 다 학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나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계속 학습하게 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 학습해서 개선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으면 AI가 나를 끌고 간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독서하고 사색하고 산책하면서 메모하고 말하고 글쓰기를 해야 한다. 그게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일상이었다. 그 두 분은 매일 학습하고 매일 성장하는 분들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이 글을 더 써야 한다. 승자독식의 시대가 될 것이고 나머지는 기본소득으로 근근하게 살게 될 것이다. 다음의 과정을 반복한다.


1. 책 읽고 강의 듣고 공부한다.

2. 강의 들은 거를 떠올려본다.(내가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이런 과정이다.)

3. 메모한다.

4. 아내에게 말해본다.

5. 글로 써본다. 페이스북, 블로그, 기타 등등

6. 그 글을 다시 말로 유료 강의를 한다.

7. 글을 쓴다.

8. 책을 낸다.


한 번 공부한 것으로 강연료, 원고료, 인세가 나온다. 사람들은 공부한 걸 왜 안 써먹나. 말과 글과 책으로 수익을 만든다.


등단을 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냄으로써 작가라는 직함을 얻었다. 책을 씀으로써 내 존재를 증명하고 나를 찾게 되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집에서는 지질하지만 글에 나오는 나는 그럴싸하다. 나의 찌질함에 독자들이 공감하고 응원한다. 살면서 겪었던 여러 트라우마 경험들을 글로 쓰면서 벗어나고 치유되었다. 안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글 속에서 화해가 되었다.


1. 나를 설명하는 구술을 해봐라

2. 상대와 인터뷰를 해본다.

3. 일기체로 써본다.

4. 그에게 편지를 써봐라

5. 시간 순으로 연대기로 또는 거슬러서 써본다.

6. 사건 중심으로, 7. 관계 중심으로, 8. 나를 대표하는 키워드 3~5개 정해서 9. 특정 시기를 정해서, 10. 장소 중심으로, 11. 장면 중심으로, 12. 영웅서사, 누구나 각자의 목표 중심으로, 13. 취미 중심으로, 14. 버킷 리스트로 , 15. 나에 대한 부고 기사를 써봐라. 남이 나에 대해서 써준다고 생각하고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16. 평전을 써봐라. 남이 나에 대해서 써주는, 17. 업적으로, 18. 사상과 철학으로, 19. 소설 형식으로. 아내가 모르는 내 첫사랑, 트라우마였던 내 아버지 같은 경우 소설 속의 인물로 써본다. 20. 시로도, 서사시로도 써본다. 윤동주의 자화상처럼


내 인생은 결핍과 위기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엄마의 부재, 고등학교 떨어짐,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이 이루어진다. 누가 도와주거나 길이 새로 열리거나 기회는 위기의 옷을 입고 온다. 누가 말하기를 "요즘 사람들은 한 대도 안 맞고 살려는 것 같아. 세 대 맞고 너도 몇 대 때려봐." 배는 정박해 있으면 배가 아니다. 바다로 나가서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항해해야 배인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풍파를 만날 수밖에 없다.


글은 자기 안에서 키워서 때가 되면 토하듯이 나오게 한다. 애들 뱃속에서 키워서 나아야 한다. 미성숙아를 꺼내서 인큐베이터에 넣으려고 하지 말고.


추천 책은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데 작가님의 책 세 권이 준비되어 있었고 선착순 세 명에게 주는데 바로 손들었고 질문자 세 명에 포함되어 강연이 모두 끝나고 책에 작가님 서명을 받아왔다. 지난번 뇌 강연도 바로 손들어서 책 득템하였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슴의 떨림을 느꼈다. 인간 강원국에 대해서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두어 시간 동안 3미터 앞에서 감각적으로 그의 파동을 느껴보고 교감한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다사다난했던 삶의 매 순간의 위기를 결국은 기회로 바꾸어서 오늘의 유명 작가가 된 그를 보며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강원국 작가님은 평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나는 애들에게 조금이라도 트라우마가 되지 않고 언제나 사랑 가득한 좋은 아빠로 기억되려고 한다. 애들한테 더욱 잘해야지. 강연장소에서 코스트코가 가까워서 문 닫기 한 시간 전에 가서 생연어와 굴무침, 통닭과 빵등을 사다가 주었다. 그저께는 농수산시장에서 2.3킬로 랍스터도 쪄서 갖다 주었고.


오랜만에 글 한 편 쓰니 숙제한 듯 후련하다.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