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탐방
몇 달 전 엄마에게 효도하는 차원에서 엄마가 원하는 "아이들과 같이 교회 가기"를 응해드렸었다. 우리 애들은 다 아빠 따라 무교다. 교회를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사회 학습' 차원에서 가는 거라고, 할머니 위해드리는 거라고 말하고 데려갔다. 교회마다 스타일이 각양각색이고 그 교회는 예배당 입구에 교회 관계자들이 신도들을 맞이하며 신도들이 헌금봉투를 꺼내서 헌금하는 것을 다 지켜보는 아주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목사 설교도 지루하고 배울 것 없었다. 엄마의 오랜 지인분들이 오시는 곳이라 그분들 보러 나간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난 1월 주말에 엄마 생신 축하차 또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갔고 엄마에게 선제적으로 "지난번에 그 교회는 가봤으니 아이들에게 여러 교회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이번에는 다른 교회를 가보는 게 어떨지" 말씀드렸다. 그러던 차에 여동생은 다른 교회를 다니는데 그 교회에서 새벽 예배 때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고 해서 그렇다면 예배 자체보다도 동생 연주를 볼 겸 같이 가기로 하였다. 가족이어도 다니는 교회가 다를 수 있구나 각자에게 맞는 교회가 다를 수 있으니.
그 교회는 '신기하게도' 교회 입구에도 예배당 안에도 헌금함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헌금을 권유하는 사람도 '코빼기'도 안보였다. 이렇게 부담이 없을 수가! 와.. 이런 교회도 있구나! 수십 년 전 부모님과 같이 다니던 성당에서 헌금 바구니를 돌리며 돈 넣고 옆사람에게 돌리던 기억도 났는데. 여동생은 그 교회로 바꿀 때 그 점이 맘에 들었고 2년 반동안 헌금 하나도 안 하고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교회를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연주 봉사도 하게 되었고 따로 헌금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이 간 여동생의 남편은 거의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동생이 잘 보이는 2층 오른쪽 구석테기에 나와 나란히 자리 잡고 말하기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오는데 예배보다도 동생 연주 보러 온다고 한다. 예배 마치고 나갈 때마다 목사님이 자기 붙잡고 말 거는 게 매우 부담스러워서 목사가 다른 사람과 인사하는 틈을 타서 잽싸게 빠져나온다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설교를 듣는데 "죄", "죄인" 언급을 수 백번을 반복한다. 그만 좀 해라, 할 말이 그것밖에 없니. 나 참내 나도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대학 시절에 교회 많이 다녔고 성당도 많이 다녀봤지만 그 목사처럼 "죄, 죄, 죄인, 죄, 죄... 죄인" 무한 반복하는 목사는 살다 살다 처음 봤다. 헌금 강요 없는 분위기는 아주 좋지만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목사의 설교는 도무지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설교를 듣는 내내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저 설교에서 뭘 배울 게 있을까, 목사도 넓은 범위에서 '강연자'에 해당하는데 강연자는 늘 새로운 이야기로 청중을 지루하지 않게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직설 화법보다는 고급스러운 은유와 비유를 사용해서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건 질 높은 강연의 기본이고 목사나 신부라 해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전부 "이야기"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이야기가 매개가 된다. 그 이야기를 잘하기 위해 우리는 공부하고 배운다. 이야기를 잘하면 돈도 들어오고 사람도 찾아온다. 이야기가 아닌 것이 없고 내가 지금 하는 공부도 이야기를 보다 더 잘하기 위함이다.
요즘 마크 고베의 <Emotional Branding> 원서로 영어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건 언어가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깊이 있고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은 뭘 해도 다 도움이 된다.
설교 잘하는 목사와 잘 어울릴만한 교인들 커뮤니티 찾아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밖에서 구하기를 그만두고 내 안에서 나 스스로 노력해서 찾을 일이다. 책도 많이 봐야 하고. 세상에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허구한 날 성경책 한 권만 끌어안고 필사한다고 결코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동어반복뿐만 아니라 동책 무한반복도 그만둬야 한다. 폭넓고 깊이 있는 내면의 성숙과 성장을 바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