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은 기본적으로 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과 타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을 철저히 구분한다. 특히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 언급할 때 우리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감정은 알 수 없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 감정뿐이다. 따라서 한국어에서는 타인의 감정을 단정지어 말하면 오류문이 된다.
"내 친구가 슬퍼요."라는 문장은 오류문이다.
친구의 감정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슬퍼?"라고 친구에게 묻거나 "슬프겠어요." "슬플 거예요." "슬픈가 봐요."라고 친구의 감정을 추측하거나 "내 친구가 슬퍼해요."라고 눈에 보이는 행동을 서술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감정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 + 어하다'
기쁘다 -> 기뻐하다
힘들다 -> 힘들어하다
속상하다 -> 속상해하다
피곤하다 -> 피곤해하다
- 어제 명동에 갔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어요. (저는) 정말 반가웠어요. 친구도 아주 반가워했어요.
- 그 영화를 보고 (저는) 정말 슬펐어요. 친구가 많이 운 걸 보면 친구도 슬펐나 봐요. 친구도 슬퍼했어요.
이 문법은 타인의 마음이나 상태를 알 수 없으니 그것을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바꿔서 말하는 문법이다. 대부분 초급 수준의 한국어 교육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데 고급 수준의 학생들도 실수를 반복하는 문법 중의 하나다. "She is sad." 이것이 오류문이라니!! 이 당혹감이 옅어지기까지 학생들은 수도 없는 오류문을 만들어낸다.
나는 우리말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참 좋다. 특히 타인의 감정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마음에 든다. 타인의 감정을 마음대로 단정짓는 것... 우리말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