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든요'와 '-잖아요'에 대해서
-거든(요)
종결 어미
1.
용언이나 ‘이다’의 어간 또는 선어말 어미 ‘-으시-’, ‘-었-’, ‘-겠-’의 뒤에 붙어, 어떤 일에 대한 이유를 해명하거나 다짐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
삼촌이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께서는 그 결혼을 반대하셨거든.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하느냐면, 나는 아직 과제를 하나도 안 했거든.
2.
용언이나 ‘이다’의 어간 또는 선어말 어미 ‘-으시-’, ‘-었-’, ‘-겠-’의 뒤에 붙어, 어떤 일에 대해서 이상하거나 납득할 수 없다는 느낌을 나타내는 말.
문이 열려 있었다니 이상하네. 내가 나올 때 분명히 잠가 두었거든.
(네이버 사전)
'-거든요'를 사전에서 찾으면 '어떤 일에 대한 이유를 해명하거나 다짐하는 뜻'이라고 쓰여 있다. 한 마디로 대화에서 이유를 설명할 때 쓰는 종결 어미다. 주로 이유를 묻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 쓰이지만 대화 상황에서 좀 더 광범하게 듣는 사람이 모르는 정보를 말할 때 쓰인다. 그래서 흔히 듣는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잖아요'와 대비해서 설명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 말할 때는 '-잖아요'를 쓰고 말하는 사람만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 말할 때는 '-거든요'를 쓰기 때문이다.
가: 어떻게 제주도 음식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아요?
나: 제 고향이 제주도잖아요.
가: 아~ 맞다!
가: 어떻게 제주도 음식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아요?
나: 제 고향이 제주도거든요.
가: 정말요? 몰랐어요.
가: 왜 이렇게 늦었어요?
나: 버스를 놓쳤거든요.
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나: 주말에 여행을 갈 거거든요.
이런 특징 때문에 '-거든요'는 한국어 수업에서 교사가 문법이나 단어의 의미를 설명할 때도 많이 사용된다. 이는 가르치는 내용이 어떻든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설명이라는 것이 원래 일방적인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수업 상황은 본질적으로 교사와 학생 간의 정보와 지식의 불균형을 줄여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교사: '눕다'는 '눕어요'라고 하지 않고 '누워요.'라고 써야 해요. '눕다'가 'ㅂ불규칙' 이거거든요.
교사: '-거든요'는 글에서는 쓰지 않아요. 대화에서만 쓰는 문법이거든요.
지식과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간다는 의미에서 수업과 대화는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교사의 일방적인 설명을 듣는 시간이 아니라면 일상적인 대화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거든요'를 써야 할 만큼 정보가 불균형한 주제를 오래 지속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편안하고 유쾌한 대화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거든요'는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모르고 있는 것을 설명해야 할 때나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행동에 대한 이유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 한정하는 것이 좋겠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화자와 청자 간의 이해의 폭을 넓혀 주는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이 되지만 자칫 정도를 넘어서거나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뽐내려는 목적이나 말투라면 상대방의 반감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상황과 목적과 대상에 맞는 말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대화의 목적과 상황과 대상에 맞는 올바르고 적절한 말하기 방법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잖아요'와 '거든요'로 예를 들어 말하자면 상대방과의 공감대를 확인하기 위해서 '잖아요'를 썼는데 그 대상이 나와 다른 연령과 경험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칫 꼰대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노릇이고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거든요'를 쓰려던 것이 잘못해서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조심성은 개나 줘 버리고 '잖아요'나 '거든요'를 마구 남발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예전 대학 선배들과 같이 승합차를 타고 한참 어딘가를 갈 일이 있었다. 운전자의 플레이리스트에서 20-30년 전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 시작해서 어느새 뒷좌석 사람들까지 떼창을 하게 됐다. 손 마이크에 감정까지 넣어서 모두들 가창에 꽤나 진지한 모습들이다. 노래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 '잖아요'를 비처럼 쏟아낸다. '역시 조용필!!' '바운스 바운스를 들으면 진짜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하잖아' '당연하지' '아~ 들국화' '이 노래 뭐지?' '윤도현이잖아.' 대화는 온통 '당연하지'와 '잖아'들의 향연이었다. 그러다가 한 선배가 "아~ 이 분위기 너무 좋다. 눈치 안 보고 옛날 노래 실컷 부를 수 있어서 좋다."라고 하는 것이다. RG RG ㅋㅋ.
'거든요'도 마찬가지다. 나만 알고 있는 지식, 나만의 특별한 경험, 내 속사정을 실컷 말해서 꽉 차 있는 내 머리와 마음을 비워 버리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런데 내 말만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줄창 내 얘기만 하기도 미안하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표현할 수단이나 대상이 부족하다. 나는 나의 '거든요' 욕구를 수업을 통해서 많이 해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르치는 직업은 장점이 있다. 어찌 보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사람들도 대화에서 다 해소할 수 없는 '거든요'의 욕구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다른 측면으로 나는 내가 잘 모르는 것을 누군가 나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나는 상대방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대해서 '거든요'를 비처럼 쏟아내는 것을 우산 없이 맞을 준비가 돼 있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의 글들을 읽는 것이 참 좋다.
'~잖아요'의 유혹을 이기고 말하기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