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잖아요 : ‘-지 않아요’가 준 말. 용언의 어간 뒤에 붙어, 당연히 그러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해요체로 쓰인다. (네이버 국어사전)
'-잖아요'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환기할 때 쓰는 표현이다. 보통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나 화자와 청자 간에 공유된 정보나 경험을 청자가 잊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 왜 학교에 안 갔어?" "오늘 공휴일이잖아."
"미안, 약속을 깜박했어." "내가 중요한 일이니까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했잖아."
"어떻게 제주도 음식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아요?" "제 고향이 제주도잖아요." "아! 맞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가치나 판단이 들어가는 내용에 '-잖아요'를 쓰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사랑이잖아요."
"다 그런 거 아닌가요? 남자는 예쁜 여자, 여자는 능력 있는 남자를 좋아하잖아요."
"왜 그 가수가 그렇게 인기있을까요?" "멋있잖아요."
대화에서 '-잖아요'를 즐겨 쓰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대화에서 '-잖아요'를 쓰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다. 뭔가 자기만의 생각이나 주장을 펼치려면 그것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것은 대단히 에너지가 필요하며 공을 들여 설명한다 한들 공감을 얻기에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다들 알잖아요/맞잖아요/그렇잖아요.'라는 말로 동의나 공감의 절차를 눙치고 넘기려 하는 것이다. "그렇잖아요."에 상대방이 굳이 "아닌데요."를 시작으로 입씨름을 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청자의 동의를 구했다고 생각하고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그런데 나는 상대방의 동의 안 된 '-잖아요'를 들을 때마다 적잖이 당황스럽다. 상대방이 내 생각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나의 동의를 전제하는 태도에 순간적으로 가벼운 불쾌감이 올라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그냥 네 생각을 말하라고. 나를 끌어들이지 말고.'
이런 모습은 정치인들의 말에서 특히 많이 보게 된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주장을 국민 다수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할 때, 그렇게 '국민'이라는 이름 뒤에 숨을 때, 도대체 저 사람이 말하는 '국민'은 내가 아닌 어떤 '국민'을 말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종종 '-잖아요'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대화에서 나와 상대방의 생각을 구분하고 내 생각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조심스레 동의를 구하는 지난한 과정을 생략한 채 상대방이 '아닌데요'라고 대답할세라 자신의 주장에 열을 올린다. 나도 그렇다. 특히 아이를 야단칠 때 '-잖아요'로 설명을 대신하고 내 말을 아이 머릿속에 욱여넣으려고 할 때가 있다. 나도 안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에게는 더더욱. 그렇지만 감정이 앞서고 에너지는 딸릴 때, '-잖아!!'를 외치게 된다.
"그건 나쁜 말이잖아."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잖아!!!"
때때로 그 사람이 어떤 종결 표현을 즐겨 쓰느냐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 그래서 품이 더 들더라도 '-잖아요'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