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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티브스피커 Jul 17. 2022

관계를 채우고 있는 것들은 이해일까? 오해일까?

'-을 줄 알았다/-을 줄 몰랐다'에 대해서

나와 대상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은 이해에 가까울까? 오해에 가까울까?


이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기본적으로 관계의 본질은 오해라고 생각한다. 고정되지 않은 무언가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다만 오해를 줄이고 이해하는 부분을 늘리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런 생각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나는 내 첫인상을 믿지 않는다. 그 대상에 대한 처음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김없이 바뀌었고 그래서 언제나 꽝 없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전에는 당황하고 혼자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랬지만 이제는 내가 마주치는 대상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에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낀다.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단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판단은 변할 테니까.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그 순간의 느낌에 충실하고 그 변화에 감탄한다. 시간이 지났을 때의 변화 가능성도 항상 가지고 있다.      


한국어에도 당연히 예상이나 기대와 다를 때 느껴지는 실망감이나 당황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이 있다. 그게 바로 '-을 줄 알았다/-을 줄 몰랐다'이다. 이 문법을 연습시키기 위해서 주로 학생들에게는 한국에 오기 전에 혹은 한국어를 배우기 전에 했던 생각과 실제로 경험해서 알게 된 후에 달라진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한다.


학생들은 이 문법을 연습하면서

"한국어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어요." 라며 가벼운 투정을 부리고

"한국 물가가 이렇게 비쌀 줄 몰랐어요." 라며 학생의 주머니 사정을 하소연하고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재미있어요."라며 이제야 긴장을 풀고

"반 친구 oo 씨가 처음에 말이 없어서 내성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주 활발한 사람이었어요." 새로운 깨달음에 즐거워한다.


어찌 보면 대상에 대한 오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기대는 실제 대상과 상관없이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으로서도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대상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경험하기 전에 내가 그 대상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인식과 느낌은 모두 오해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 대상과 직접 부딪쳐 봄으로써 머릿속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고 빈칸이 메워지고 틀린 정보가 수정된다. 그래서 선험적인 인식은 언제든지 지우고 고쳐 쓸 수 있도록 흐릿한 밑그림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내 오해들을 수정한다.


재미있는 것은 '-을 줄 알았다'가 정 반대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는 OO 씨가 합격할 줄 알았어요."


이 문장은 OO 씨가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는 의미도 되고 OO 씨가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불합격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사실 이 문장의 의미는 하나다. 내가 oo 씨가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의 진짜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결과다. oo 씨가 합격한 상황에서는 '역시'가 되고 불합격했다면 '예상과 달리'가 된다. 내 생각은 하나고 그것이 실체 혹은 미래의 결과와 일치할 수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수많은 무지와 오해를 채워 나가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그래서 내 마음속 도구 상자에는 언제나 수정 테이프와 지우개와 흐릿한 연필과 볼펜과 형광펜과 이모티콘들이 충분히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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