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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반 컵 11화

또 볼 사람 1

by anego emi

미워하지마 또 볼 사람이니까 … 나태주 시인의 에세이를 읽다가 문득 이 문장 앞에 오빠 얼굴이 떠오르네요. 명절날에나 겨우 얼굴을 마주하게 대는 사람. 볼 때마다 억지웃음을 자아내야 하는 사람. 부모님의 희망이자 자랑이었던 사람. 가족의 아픈 손가락이 된 사람. 우리 오빠입니다.


저는 오빠에 관한 좋은 추억이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그렇습니다. 정답을 짜내듯 몇 날 며칠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면 희미한 강건너편의 기억들 속에서 저의 뇌가 한 개쯤은 찾아낼지도 모르겠네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지옥에 떨어진 자린고비 여인이 거지에게 베풀었던 단 한 뿌리의 파처럼요.


오빠를 떠올리면 언제나 현관 앞에서 뒤돌아 울던 엄마의 서글픈 어깨가 떠오릅니다. 무엇이 화근이 되어 부자, 혹은 모자 지간의 싸움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격한 말싸움이 밥상머리에서 오갔을 것이고, 화를 참지 못한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을 것이고, 엄마가 그 둘을 말렸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 싫은 오빠는 자리를 박차고 자신이 머물던 방으로 가 주섬주섬 짐을 싸고, 자신의 팔을 잡는 엄마의 손을 매몰차게 물리치고 있는 힘껏 대문을 꽉 닫고 사라집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온 대학생 아들이 단 하루 만에 가출하듯이 집을 박차고 나간 것이 속상한 엄마는 소리 죽여 울음을 토해냅니다. 아버지는 묵묵히 남은 밥을 씹으며 화를 씹습니다. 저는 오늘 밤에 저 두 분 사이에 제발 큰 소리가 오가지 않기를 바라며, 저도 서둘러 한참 방학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올라갈 핑곗거리를 떠올립니다. 이런 일은 자주 반복 되었고 차라리 오빠가 오지말기를 바라는 마음을 키웠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던 오빠는 우리 집의 자랑입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엄마에게는 똑똑한 장남은 남편보다 위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밥을 먹으면서도 네모난 단어장을 뒤적이며 영어단어를 외우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언제나 상위권에 들어 상으로 대학생 노트를 몇 권씩 받아오던 오빠였으니 오죽했을까요.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고 그 후에 독일로 사업을 하겠다고 떠났습니다. 그 후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 한 번 없다가 15년이 지나 거지꼴로 나타났습니다. 쫄딱 망했서 비행기표도 겨우겨우 구해서 부모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속 돌아온 탕아처럼 말이죠. 그 탕아를 못내 그리워하던 부모님은 삶의 풍파를 겪을 때로 겪었으니 달라졌을 아들을 기대하며, 그를 품기로 합니다. 곧 다시 자신의 둥지를 찾아 떠날 것처럼 큰소리를 치더니 끝끝내 떠나지 않고 아버지가 떠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빠는 제가 또렷이 기억하는 그 풍경 속의 오빠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패악의 강도는 조금 약해졌을지언정 태도와 말투는 흔들림이 없고, 부모의 도움으로 살아감으로써 낮아진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반대급부로 터무니없는 허세가 늘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몹시 거슬리고 참아내기 힘들었기에 최대한 눈을 감았고, 그 풍경 속에서 차라리 오빠가 사라지기를 바라던 마음 그대로 그를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엄마에게 혹은 아픈 아빠에게 거친 말을 내뱉은 오빠를 볼 때마다, 차마 동생으로서 그를 질책할 수 없기에 분노를 삼키며, 그런 그를 매정한 눈 길로 흘겨볼 뿐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때처럼 엄마처럼 방으로 들어가 또 훌쩍이고 자신의 처지를 아파합니다. 그런 엄마를 달래며 저는 분노를 쌓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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