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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들어와서 더 좋은 이유

삶의 다양한 답지는 내 안에만 있다.

by 찐보아이

나랑 동갑인 6급 주무관: "나는 늦게 들어온 자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나: "왜요?"

나랑 동갑인 6급 주무관: "이미 다른 데서 돈도 벌어 놨고, 다양한 경험도 하고 왔잖아. 나는 여기밖에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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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 그렇지. 나는 다른데서 돈을 벌고 왔지.

그리고 다른 세상 구경도 하다가 들어왔지.)

.

.

맞는 말이다!


나를 가끔 "자기"라고 불러주는 나랑 동갑인 6급 주무관은 나에게 어느 날 문득 늦게 들어온 내가 더 부럽다고 했다. 일찍 들어와서 이미 6급이나 급수를 달은 주무관이 왜 나이 40의 9급인 내가 더 부러울까?

'사기업에서 돈을 이미 쎄게 벌고왔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 보다는 공무원 사회가 아닌 곳에서 자유롭게 경험하고 일한 것을 더 부러워 하는 것 같았다.

"이제 하나씩 해보면 알겠지만 공무원은 매년 일이 똑같아. 매년 같은 일을 해."

라고 이야기하는 모습 속에 반복된 일에 대한 타성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녹아있었다.


그렇다. 나는 사기업에서 해외출장도 다녀보고, 연구보고서도 써보고, 평가위원도 해보고, PPT발표 등도 하면서 바쁘고 다채롭게 보냈다. 사기업 회사 일도 매년 반복되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루하게 느낄 새가없을 정도로 매일의 사건사고와 조치해야 하는 일들로 다채로운 일상을 살았었다.


그리고 이제 하게 된 일이 공무원의 일인데 역으로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사기업의 다채로운 경험과 삶이 또 호기심이 될 수도 있고 또 새로운 로망이 될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직에는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공무원에 임용되어 8~9년째 열심히 생활하는 젊은 공무원들이 몇 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고 일을 너무 잘한다. 엑셀도 잘하고 한글도 잘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일의 처리속도가 엄청 빠르다. 마치 기계처럼 일을 잘한다. 어쩜 그렇게 일을 잘하는 거에요? 라고 물어봤더니,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10년째 하는 일인걸요"

(...)


겸손한 대답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 능력을 크게 평가한다. "아니 이렇게 능력이 좋은데 여기 말고 다른데 가고 싶지 않아요? 다른 데 가야할 것 같은데!" 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미 이 일만 익숙해서 다른 데는 못가겠어요. 라고 이야기했다.


(헉! 다른 데를 못간다니 충분히 가고도 남지!)


내가 보기엔 다른 데 가서 그 정도 일하면 충분히 인정받는다. 그런데 다른 데 갈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았다. 어려서인것 같기도 하고 공무원을 그만 두려면 "의원면직"이라는 신분 내려놓음이 있는데 이게 사기업의 "퇴직"이라는 단어보다 무겁게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날다람쥐처럼 일을 잘 하진 못하지만 날다람쥐처럼 이곳 저곳 일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바라보면 ' 아 저 사람은 여기에 있으면 맞겠다 아니다.'가 조금은 보이는데 그들 본인 스스로는 공무원 사회에 갇혀 자신의 충분한 역량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음 한 켠에 다른 세상을 품어 보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훌륭하다.)


이게 늦게 들어온 나랑 다른 점일 것이다.


늦게 들어와서 이제 9급 말단 직원인 나는 이미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들어온, 이미 직장생활 만랩의 9급 공무원이다. 늦게 들어와서 좋은 이유를 솔직하고 순수한, 속물근성 있는 현실 아주머니입장에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기업보다 많은 휴가제도가 있는 것 자체로 너무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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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다 최고!
(아직 잘 써보진 못했지만 연차 외에 사기업에서는 잘 없는 각종 휴가(돌봄휴가 등)이 있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정말 최고다 최고!)
둘째, 나를 함부로 자를 수 없는 국가 조직이라서 좋다.
(사기업에서 잘린 적은 없지만 그래도 50 가까이 되면 사기업은 은근한 퇴사의 압박이 종종 있다고 들었다.)
셋째, 육아휴직을 언제라도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는게 너무너무 좋다.
(사기업도 육아휴직은 있다. 그런데 공무원은 3년(유급1년, 무급2년)까지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한다.)

넷째,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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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나열하고 싶다....

계속 나열하고 싶다.................


(그치만 이제 떠오르지가 않는다)


오늘도

늦게 들어와서 더 좋은 이유,

급여 1/2의 빈자리!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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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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