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이 우선되는 신세계, 사실 그래야 되는 곳.
팀장: 취소해. 부모휴가
나: 네? 그날, 부모님 병원 모시고 가야 하는데요.
팀장: 체육관 물 샌 거. 그거 보통일 아니야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래? 취.소.하.라.고.
나: 이미 과장님 결재까지 다 났는데요.
팀장: 결재 난 거 취소할 수 있어. "OO 씨, 결재 취소하는 법좀 가르쳐줘."
나: 아이들도 맡길 사람이 없어요.
팀장: 남편 없어?! 남편 보고 하라고 해.
나: (... 뭐야. 이 조직. 이 팀장. 확 뒤집어 버려?! 말어. 무례하기가 끝이 없네.)
순진하고 순~한 내가 열불이라는 게 났다.
#. 사기업 근성이 뼛속 깊이 박혀있는 나에게 공무원이란.
팀장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 다 해 놓고 걸어 놓은 부모휴가조차 내가 맡은 공사에서 문제가 생기니 휴가를 취소하라고 강요했고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개인의 권리에 따른 몇 안 되는 공무원의 복지를 그렇게 밟아버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렇게 강요하는 태도가 너무나 당연하고 당당하다는 점에서 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팀원이 사정이 있으면 커버해 주는 게 팀장의 역할 아닌가.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행하며 사기업에서 살았고 내 아래 있는 내 팀원을 보호해 줬다. 모든 팀장이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살았단 말이다. 그런데, 본인이 더 신경 쓰는 게 힘들어서 나 하나 커버 못해가지고 휴가 취소하라고 윽박지르는 팀장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좋게 생각하는 나도 열불이라는 게 났다.
나 같았으면 부탁을 했을 것이다.
본인이 맡은 공사에 문제가 생겼으니 미안하지만 이번 휴번 건은 취소해 준다면 좋을 것 같아. 수습하는데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보다는 직접적인 담당자가 있어야 하거든이라고 만 말해줬어도 나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어 휴가를 취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취소하지 않았다.)
그 후부터 팀장은 내가 올리는 결재 건마다 꼬투리를 잡으며 반려하고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다시 하라고 했다. 갑질 중에 갑질 신경질 중의 신경질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출장 가는 차 안에서도 타 팀장도 있는 자리에서 이거 했냐 저거 했냐. 왜 대답 못하냐며 갈구는데 내가 대응한 것은
질문하는 것에 답하지 않고 씹었다.
아작아작 잘근잘근 오독오독 씹어주었다.
아무 대꾸도, 대답도 하지 않아 버렸다.
(내 정신건강을 위하여)
그럴 가치가 없는 정도였다.
차 안에 같이 탄 사람들이 우리 둘의 모습에 아주 조용해지고 숙연해졌다.
자기가 혼잣말을 막 하는데 내가 대꾸를 하지 않으니 갈굼을 멈췄다.
그때 나는 말했다.
나: "이따가 차분히 말씀드릴게요"
팀장: (멋쩍어하며) "어, 그래"

(뭐야.. 이 조직, 이 팀장 새끼......................)
공공의 일에 문제가 생겼다. 담당 직원은 당연히 그 일을 수습함이 맞다. 사안이 급할수록 담당자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맡은 체육관 공사에 물이 새고 안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순간 임은 틀림없었다. 사기업에서 개인이 맡은 일에 문제가 생김은 사장의 손익과 직결되지만 공기업, 공공기관에서 개인이 맡은 일에 문제가 생김은 즉, 공공의 안전과 손익에 직결되는 사안이 되는 것이다.
팀장의 인격이 평소에도 저런 식은 아니다. 그랬으면 나도 적용하지 못하고 의원면직을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공공의 이익과 안전이 위협받자 돌변한 팀장의 모습은 확 쏘아붙이고 한판 하고 싶어 지다가도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팀장은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다.
공무원 근성이 뼛속 깊이 박혀있는 사람이고
나는 사기업에 있다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다.
공무원 근성이 뼛속 깊이 박힌 사람은 저 사람이 내 자리에 있었다면 자기 휴가 다 취소하고 일에 몰두할 사람이었을까?
내가 공공의 안전을 우선시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나는 당연히 내 빈자리는 팀장이 커버해 줄 것이라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안 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휴가를 취소한다는 것은 저 팀장에게 지는 것 같은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아니, 그렇고 아니고를 떠나가지고 저런 상황을 맞이하는다는 게 아 마음과 정신이 피곤해졌다
나름 씩씩하게, 용감하게 공무원 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런 팀장을 만나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생각. 또 생각"
나는 진짜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옆 팀의 나이는 어리지만 공무원 생활 오래 한 7급 여자애한테 넌지시 물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팀장이 휴가 취소하라고 하고 강요하는데 이거 내가 진짜 취소해야 하는 거야?
나는 정말 이해가 안 가서 그래. "주무관님 같으면 이거 취소해요? 안 해요?"
나이는 어리지만 공무원 생활 오래 한 7급 여자애 왈,
"저 같으면 취소해요."
와...................................... 박수!!!!!!!!!!!!!!!!!!!!!!!!!!!!!!!!!!!!!!!!!!!!!!
(이런 세계였구나.)
팀장의 지랄지랄 태도를 보았을 때 나는 휴가를 취소하지 않았지만 7급 여자애의 대답을 듣고 나도 취소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내가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 나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는 공무원 세상을 내가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휴가를 취소하는 건 무례한 팀장에 대한 순응이 아니고.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위한 나 개인의 희생이다.
그리고!!!
저 팀장에게 지는 것이 아니고
나는 공무원의 세계를 배워 나가는 것이다.
...

(박수!!!!!!!!!!!!! 나 스스로에게 박수!!!!!!!!!!)
그런데 힘이 들어가진 않는다.
뼛속 깊이 박혀있는 사기업 근성 있는 내가 공공기관에 와서
뼈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아프고 나를 생각하게 했다.
사실,
뼈가 녹는다는 고통의 표현보다는
나이에 맞지 않지만 "나이 40의 뼈 성장통"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이고 무릎이야
아이고 내 다리
뒤늦게 키 크느라 애쓴다.